[경주 = 트루스토리] 정석호 기자 =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조선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천문대였음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통 과학의 견지에서 보면 첨성대는 매우 훌륭한 천문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 과학과 단절된 뒤부터 그 이해도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종교적인 상징물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도시 계획의 기점이라는 설이 제기되고도 했고, 무덤이라는 주장, 별을 보고 점을 치던 ‘망루’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외계인의 로켓 발사 기지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첨성대가 과학적인 천문 관측대였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첨성대는 신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려와 조선에도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실제로 그 곳에 올라가 천문을 관측한 기록이 수없이 남아 있다. 고려와 조선의 첨성대는 신라 첨성대보다 예술적인 면이 뒤떨어지고 지극히 실용적으로 고안된 차이가 있지만, 그 사용 방법은 전혀 차이가 없다.

첨성대의 모양은 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형태는 매우 우아하고 안정돼 있는 뛰어난 건축물이다. 구조를 살펴보면, 이중으로 된 정사각형 기단 위에 병 모양의 원통이 올려져 있는 형태다. 그런 첨성대는 1500년을 비바람 속에서 견뎌 낸 대단한 건축물이다. 함께 지어졌던 숱한 구조물들이 사그라졌지만 첨성대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주 안정된 모습을 버텨왔다. 이는 첨성대가 얼마나 견고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단의 정사면체석 바로 아래에는 공간의 절반이 넓은 판석으로 덮여 있다. 또 12단째에 있는 창과 판석 사이에는 19단과 25단 두 군데에 장석 4개씩이 비녀처럼 원통부를 꿰뚫고 걸쳐 있다. 이것은 창구 상단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첨성대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 당시 찬란한 문화유산의 중심에 서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일이나 1400년 전에 신라인들이 첨성대를 세워 우주를 관찰한 일이나 과학사적인 측면에선 크게 차이가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모른 채 그저 ‘웅장하고 놀랍다’는 생각을 했지만 분명한 것은 ‘원시적인 수준’이 아닌 서구인들보다 과학을 늦게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과학이 모두 집대성 돼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첨성대를 찾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첨성대를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이유는 최근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석축도 벌어지는 현상이 가속화돼 ‘붕괴 위험’까지 우려된다는 언론보도 때문이었다. ‘구조안전 문화재위원 긴급 현지조사’를 실시한 문화재청은 “기울어진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사실 첨성대의 부실 보존 및 훼손 논란은 지속적으로 반복돼 왔다. 그 속에서 결국 첨성대가 북쪽으로 205㎜ 기울어지고, 이로 인해 서쪽 석축 일부가 최대 131㎜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과거에도 그렇듯 이번에도 전문가들은 “붕괴가 우려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첨성대의 기울기가 처음 측정된 때는 2009년 10월이다. 첨성대가 기울어진 이유는 기반을 받치는 호박돌이 남쪽보다 적은 것과 일제 강점기 때 이쪽 방향으로 도로가 조성된 것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부터, 1400년 세월 동안 풍상을 겪은 자연현상이라는 관측까지 다양하다.

첨성대가 당장 무너질 일은 없다. 첨성대에 대한 논쟁은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논쟁이 아니라 심리적인 논쟁이며, 문화 가치적인 논쟁일 수 있다. 우리는 특히 우리의 전통 과학에 대해 그저 일차원적이고 원시적인 수준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솔직히 우리가 첨성대를 과학에 대한 접근으로 이해하기 보다 예술적, 문화적 접근만으로 일관해 왔던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현상은 결국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과학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숭례문 부실 복원과 석굴암 균열 논란에서 보듯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과거의 전통 문화는 결코 신비주의의영역이 아니다. 첨성대를 그저 별점을 치는 망루로 인식하게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근본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첨성대 속에는 현대 과학이 간과한 대단한 과학적 원리가 있다고 분명히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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