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에 올라온 이재용 관련 기사 이미지들 캡쳐
[트루스토리] 여기저기서 ‘한국 언론이 망가졌다’고 질타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그 출발점은 어디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너무 먼 길을 달려온 바람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얘기마저 나온다. 언론은 앞다투어 이정재와 임세령 이야기를 보도한다. 이정재와 임세령의 만남이 마치 국정원 대선개입, 정윤회 비선실세, 이명박 4대강,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체 등의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다뤄지며 이정재와 임세령 만남의 A부터 Z까지를 파헤치며 그들의 과거를 쑤시고 꼬집고, 연예와 경제가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기업을 툭툭치며 뭔가를 요구하고 마치 언론계의 혁명아처럼 포장해 매섭게 좌우로 돌진하고 있다.

문제는 그 기사 그 기사이고, 더 나은 눈부실 만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는 없다는 점이다. 포털 검색어의 ‘좋은 위치’를 노려 ‘클릭수’ 장사를 하기 위한 혁명적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 이정재 임세령 기사는 1분, 2분 간격으로 대한민국 모든 매체를 통해 생산된다. 이정재와 임세령이 언론사들의 허전한 뱃속을 채워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언론들이 대박 장사를 노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워낙 수많은 매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으니 ‘클릭 장사’의 시대도 이미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24시간 동안 언론들은 살아 움직인다. 4대강에 대한 기사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사도, 기업인 가석방 문제도, 세월호 문제도 24시간 기사가 올라오는 법은 없다. 오직 자극적 흥미 위주의 ‘검색어 뉴스’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만 불쾌하게 됐다. 전처 이야기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야기가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매달려 있으니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굉장히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 당사자 뿐 아니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언론의 이 같은 보도 태도를 꾸짖거나, 질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백번 양보해서 뉴스가 많이 만들어지더라도 ‘읽을꺼리’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관련 뉴스를 보면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독자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관련 검색어가 포털에 뜨면, 뉴스를 위한 검색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검색어에 위한 검색어를 위한 뉴스 작성이 시작된다. 검색어가 많이 들어갈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황당한 상황이 작금의 실상이다보니, 언론사들은 문장이 파괴되더라도 의도적으로 검색어를 삽입한다. ‘누리꾼들에 따르면~’ 이라는 한국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5차원적 기사작성법은 쓸데없는 뉴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될 당사자들의 심정과 초상권은 안중에도 없는 선정적인 낚시성 기사를 만드는 첫 번째 요소다.

이런 기사들은 당연히 ‘클릭’을 유발시키지만 뉴스 소비자들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뉴스 컨텐츠가 무슨 용역 보고서마냥 복사(Ctrl + C)해 붙이기(Ctrl +V)를 통해 하루에도 수천 수만개씩 생산되다보니, 최초로 뉴스를 발굴한 기사는 저 뒷전으로 밀리고, 포털에선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과 조롱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포털들도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솔직히 ‘외면’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런 글쓰기는 과거 ‘중소언론’들이 ‘단 몇 푼이라고 벌기 위해’ 앞장섰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이 앞장서 포털을 도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기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리를 들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한국 언론이 망가져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을 ‘막가파’라고 욕하기 전에, 국정원 댓글부대를 욕하기 전에, 언론들이 이처럼 포털뉴스를 더럽히고 있는 이 상황을 뭐라고 진단하고 질책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똑같이 ‘막가파 언론’이라고 부르면 크게 격노해 반발할까. 내가 하면 로멘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어구가 딱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다. 흔히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한다. 언론이 비정상적인 글쓰기에 앞장설수록 사회가 삐딱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부실한 사회는 또 그런 언론과 손을 잡는다. 기생하고 공생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건 딱 한가지로 요약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잃게 하는 것이다. H신문사처럼 검색어 어뷰징을 절대 안하는 주요 언론들이 몇몇 있다. 그들은 언론으로서 정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라고 유혹을 느끼지 않을까.

네이버의 경우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포털 노출이 쫓기는 언론들은 자극적 뉴스가 터지면 참을성이 사라진다. 차라리 과도한 취재에 나서서 과도한 기사가 쏟아지면 그나마 박수를 칠 일이다. 한국 언론들은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추측 보도를 통해 클릭질 사냥에 나선다. 보도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자제력도 없다. 기자들도 부끄러운지 자신들의 이름을 달지 않는다. 온라인뉴스팀이 대부분이다.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알면서 왜 할까. 정답은 하나다. ‘갑’질을 욕하는 그들이 또 다른 ‘갑’이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우리 사회에 다양한 직업군에서 발생하는 직업윤리를 비난하지만 언론도 얼마나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되볼아 볼일이다.

언론의 핵심은 진실 보도다. 어뷰징 기사를 통해 클릭질을 하는 게 언론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언론이야 말로 진짜 사이비 언론이고 나쁜 언론이고 사라져야 할 언론이다. 하지만 그런 언론들이 포털 사이트와 뉴스 계약을 맺고 주요 뉴스로 배치돼 있는 게 한국사회의 현 주소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서 수많은 오보를 양산했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다가 임세령이 이정재를 만나자 이때다 싶어 이재용을 툭툭 건드는 쓰레기 기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혼란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정 그렇게 궁금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등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나 취재하시라. 요즘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지 않는가. 그런 자신이 없어 혹여나 낚시질을 하고 싶다면 장비를 챙겨서 가까운 곳으로 얼음낚시나 떠나시길. 붕어빵 기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조정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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