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속았다”

박근혜 정부와 함께 시작한 구태 국회의 ‘협잡’

[트루스토리] 정치개혁과 특권포기는 그들이 줄기차게 내뱉었던 말이다. 듣기 싫을 정도로 거리 곳곳에서 되돌이표처럼 국민에게 ‘들어달라’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국민은 진짜로 믿었다.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며 믿었다. 총선과 대선을 통해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약속했으니 ‘설마 지키지 않을까’ 하고 믿고 또 믿었다.

The danger past and God forgotten, 결과는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속담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의민주제도의 맹점을 이토록 명료하게 부각시키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 표를 구걸하던 사람들은 모든 선거가 끝나자 우리 국민을 ‘대변’으로 보기 시작했다. 온갖 추악한 구태를 본격화하면서 국민을 이그노어(ignore)하고 있다. 혹시나 했다가 또 속은 셈이다. 아뿔싸.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신들의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을 끼워 넣기 위해 140여개의 쪽지에 1200건의 ‘밥그릇 챙기기 예산’이 난무했다.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소속의원들에게 여야 실세들의 쪽지가 미친듯 폭주했고, 이것도 부족한 듯 ‘종이비행기 쪽지’까지 등장했다. 우주비행기까지 등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렇게 앞도 안보고 뒤도 안보고 부랴부랴 증액된 예산은 무려 4조원에 해당됐다.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또 어디 있을까. 합법적 도둑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이런 추잡한 공작(?)을 벌이기 위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밀실’을 찾았다. 여기가 북한인가. 북한을 그렇게 증오하고 욕하는 그들도, 정작 하는 짓은 밀실을 좋아하는 ‘빨갱이’에 가깝다. 보도에 따르면 예결특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과 간사이 김학용(새누리당), 최재성(민주당) 의원 등 ‘쪽지예산’의 주역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과 여의도 렉싱턴 호텔을 오가며 ‘밀실 계수조정’을 통해 342조원의 예산을 확정했다.

‘쪽지예산’과 ‘호텔예산’으로 여야의 실세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철두철미하게 챙겼다. 지역구가 자신들의 생명줄인 까닭에 능력 좀 있는, 다선의, 힘 좀 쓴다는 의원들은 항목에 없던 예산까지 새롭게 만들어 반영했다. 정말 그들은 신비스런 능력자다. 어떻게 국민에게 욕만 먹는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화려한 주인공들은 다 아는 이들이다.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김학용 예결위 새누리당 간사 뿐 아니라 우리의 차기 대통령, 박근혜님도 ‘밥통 행렬’에 앞장섰다. 민주당도 박기춘 원내대표를 비롯해 최재성 예결위 간사,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였다. 그들의 지역구, 그들의 고향 사랑에 뜨거운 박수를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보낸다. 짝짝짝.

그렇다면 예산심의는 제대로 해냈을까. 하지만 이런 상상은 ‘욕심’에 불과했다. 국민 세금이 더 커질 수 있는 예산 증액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여러 보도 결과 드러났다. 그들은 ‘밀실’에서 쿵짝쿵짝 모든 걸 다 해치워버렸다. 회사 회식 때 미친듯 흥청망청 쓰는 것처럼. 더러운 밀실정치,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뭐가 다를까.

이 정도면 좀 과장해서, 좀 극악스럽게 표현한다면 ‘사기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국민 세금을 의원 몇 명들이 꼴리는대로 해결했으니 사기꾼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할까. 지역구를 살리는 영웅이라고 불러줘야 미소를 보여줘야 흐뭇해할까.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국회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계수조정소위가 의원들 사이에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물 좋은 소위’에 측근들을 심기 위한 실세들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국회의원 정원은 그대로인데, 소위의 위원수는 10년 전에 비해 무려 50%나 늘어 15명에 이른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철밥통 의원연금’ 128억원은 그대로 통과시켰다.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철밥통’만큼은 철저히 지키고 싶어했다.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직 놀이를 하면 비리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해도 매달 120만원씩을 받는 황당한 연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니 국회에 들어가고 싶어서 너도나도 ‘환장들’ 하는 것이다.

쥐도 새로 모르는 밀실에서 쪽지로 예산을 주무르고 국민과의 성스러운 약속을 저 하수구로 내던진 것도 부족했던가.

예산안이 전광석화처럼 처리되자마자 예결특위 소속 의원 9명이 시간을 잽싸게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장윤석, 김재경, 권성동, 안규백, 민홍철 의원들로, 이들은 10박11일 일정으로 미국을 거쳐 코스타리카와 멕시코 등 중남미로 떠났고 김학용, 최재경, 김성태, 홍영표 의원 등은 케냐ㆍ짐바브웨ㆍ남아공 등을 둘러보러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이들에게 소요되는 여행경비는 무려 1500만원도 아니고 1억5000만원. 모두 우리 국민이 죽어라고 일해서 번 돈으로 낸 세금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아니라 개한민국으로 전락했다는 누리꾼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구태 국회’가 박근혜 정부가 시작도 하기 전에 국민 앞에 멋진 1막을 보여줬다.

앞으로 그들은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 늘상 그랬듯 싸우고 다투고 넘어지고 망치로 문을 두드리고, 소화기로 뿌려내고, 신바람나게 싸우며 정치의 2막, 3막, 4막, 5막을, 집권 5년 내내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되면 그들은 또다시 ‘정치개혁’과 ‘특권포기’를 외치며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민중은 그 달콤한 발언에 속아 넘어가고, 그들이 만들어 낸 더럽고 치사한 지역감정과 함께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높은 득표율로 지지하며 정체된 대한민국의 모순된 현실을 그려낼 것이다.

안철수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이 정도로 설명이 될까.
 
최봉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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