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영 논설주간

Danger past, God forgotten. 위험이 지나가면 신은 잊혀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뒷간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정도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겠다. 요즘 박근혜 인수위의 걸음마를 보면 딱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 16일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그리고 노조파괴로 고통당하는 67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인수위원회 앞에서 박근혜 당선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을 맞이한 것은 경찰의 방패와 불법집회를 중단하라는 ‘경고방송’이었다.

이미 5명의 노동자들이 지탱하기 힘든 노조탄압에 절망하여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들은 그런 절망과 고통 속에서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었다. 박근혜 당선자는 도대체 언제까지 노동현안에 귀를 닫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가.

노동탄압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데 이르고 있다. 기업들은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동조합을 파괴한다. 그리고 규제받지 않는 권력을 이용해 용역깡패들을 동원,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회계조작으로 정리해고를 저지르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무려 1624명이다.

대법원에서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한 판결을 멋대로 어기며 ‘신규채용’ 운운하고, 노동조합의 쟁위행위에 대해 모두 1306억원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손해배상과 77억원의 가압류로 노동자들의 삶을 파탄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노동부와 언론과 사법부와 공권력이 노동자 탄압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과연 숨 쉬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선거 이후 노동탄압은 더 심해지고 작은 약속도 후퇴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다음 날,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에 대한 정규직 신규채용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며칠 후 법원은 철탑 농성자들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 선거 이후 공무원 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해고가 속출하고 있다. 선거 시기에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 차원에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선거 이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그렇게 약속한 적이 없다고 뒤집는다.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그것이 왜 인수위에서 관심 가져야 할 문제냐’고 되묻는 박근혜 당선인의 그런 태도가 기업들의 뻔뻔한 노동탄압을 부추기고 있다.

정답은 이미 나왔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를 철회하고 최강서 열사의 명예회복과 유족보상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쌍용자동차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 국가폭력과 회계조작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리해고자와 비정규직 해고자를 정규직으로 복직시켜야 한다. 아울러 현대자동차의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유성기업의 사용자노조를 해산하고 노조파괴를 중단하며, 폭력행위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 및 공공부문 해고자들도 즉각 복직시켜야 한다. 이 나라를 앞으로 ‘5년간’ 책임질 대통령 당선인이라면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신뢰와 약속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쌍용차 국정조사와 해직자복직,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당선인이 공약으로, 대선 전 ‘대국민 약속’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지금 당선자는 이러한 자신의 공약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정부가,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생존을 파괴하는 기업을 비호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데 앞장서는 한 그 어떤 국민도 행복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합을 얘기하면서 노동자들의 무덤을 짓밟는 취임식, 국민의 저항과 분노 속에서 취임식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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