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자본측이 IMF경제위기에 편승하여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던 그 시기부터 뒤늦은 산별노조건설 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악조건 하에서나마 2011년 현재 전 조합원의 56.0%인 96만4천명이 산별노조로 조직되는 외형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다수 산별노조들은 조직규율이나 단체교섭의 측면에서 산별적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산별노조운동은 여전히 한국 노조운동의 우선적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역노조운동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있다.

첫째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고용정책이 지방으로 이관되어 지역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둘째로 유연생산 확대로 비정규직 사용과 아웃소싱이 보편적이어서 기존의 조직화방식이 잘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산별노조들은 규모가 있는 기업의 정규직들을 조직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나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공장을 자주 옮겨다니고 그런 만큼 산별 소속성도 약하기 마련이다. 이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지역조직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셋째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조합의 경제적 힘이 약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조운동은 파업이라는 경제적 무기를 휘둘러 요구를 관철했다. 그러나 고용위기가 커지면서 노조운동은 파업에 호소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노조 조합원수는 북구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곳이나 상당정도 낮아지고 있고 신자유주의 인사노무정책으로 인해 조합원의 결속력도 약화되어 노조운동의 경제적 위력은 과거같지 않다. 그래서 노조운동은 세계 어느 곳이나 정치적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 정치적 힘은 1인1표제를 근간으로 한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비조합원과 지역주민까지를 끌어들여야 정치적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지역주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노조운동이 지역주민을 위한 활동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은 조합원의 이익에 치중하는 전통적인 노조활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만 조합원의 이익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활동은 결국은 직장인이 아닌 지역주민으로서의 조합원을 돕는 활동이고, 특히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일반화는 현재의 정규직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 주택, 의료, 교육 등의 활동은 결국 조합원을 생애에 걸쳐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도 지역노동운동 강화

미국노총 AFL-CIO는 1995년에 개혁적인 스위니 후보가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조직화에 올인하는데 스위니 지도부는 조직화전략의 일환으로 지역지부(CLC)를 강화시킨다. Union City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지부들이 조직화와 동원, 그리고 지역연대에 적극 나서도록 하였다. 미국노총의 지역지부들은 600여개가 되는데 다수가 사무실이나 상근자가 없었고, 사무실이나 상근자가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이 강했다. 미국노총은 지역지부가 Union City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3명의 상근자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도시지역의 지역지부들을 통합하는 조치도 취한다. 일부 지역지부는 대지자체활동이나 지역연대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소를 설치한다.

일본노총 렌고는 1989년에 기존의 4개 노총을 통합하여 창립되는데 그들 4개 노총의 지방조직들이 렌고 지방조직인 지방연합회(한국의 지역본부에 해당되는 조직)로 통합되게 된다. 렌고는 지역조직간 재정이나 상근자 격차가 크기 때문에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부금 제도를 활용한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나은 지방연합회에는 교부금을 덜 주고 재정상태가 취약한 지방연합회에는 더 많이 교부한다. 그러나 렌고는 2003년부터 한국의 지역지부에 해당하는 지역협의회를 강화하기 시작한다. 지역에서 렌고의 운동을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조직은 지역협의회이기 때문이다. 렌고는 2005년 당시 471개이던 지역협의회를 300개로 줄여 모두 지역협의회에 상근자를 배치한다는 방침을 수립하였다. 지역협의회에 상근자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지방연합회 상근자를 지역협의회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방연합회 상근자수도 아주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역협의회마다 상근자를 배치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블록사무소라는 것을 두어 블록사무소 상근자들이 몇 개의 지역협의회를 지원하도록 하는 지방연합회들도 있었다. 이 외에도 상설위원회를 통해 산하노조의 상근자를 활용한다거나 은퇴한 선배들을 활용하는 사례들도 보이고 있다.

양국 모두 지역사회단체와 연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되어 있다. 우선 퇴직자조직이 있다. 미국노총은 ‘은퇴미국인연합’(Alliance for Retired Americans)과 연대한다. 노조원 출신 은퇴자뿐만 아니라 비노조원 출신 은퇴자도 가입할 수 있다. 현재 회원은 400만 명이다. AFL-CIO 등 미국의 많은 노조가 기관회원으로 가맹하고 있다. 이 단체는 고령자 및 은퇴자에게 영향을 주는 의료, 소득, 고용, 주택 등 광범한 문제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는 퇴직자 연합이 있고 조합원 출신 퇴직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한다. 회원수는 66만 명 정도가 되며 노동관련 정책.제도요구활동, 보험?공제활동, 교육활동 등을 수행한다. 이 외에도 전국적인 망을 가지고 있는 지역사회연대체들이 노조의 지역사회 연대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복지협의회, 공제회, 노동금고 등이 전국적 조직망을 가지고서 렌고의 지역조직들의 지역사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지역노동운동은 걸음마 단계

한국은 양대 노총 모두 특별시와 광역시, 그리고 도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고 시군지역에 지역지부를 두고 있다. 양대노총 모두 지역본부는 그런 대로 상근인력이 있으나 지역지부는 다수가 상근자수가 적거나 없다. 도 단위에는 지역지부가 비교적 활성화된 곳들이 있으나 특별시나 광역시 단위에는 지역지부가 덜 발전되어 있다. 도 단위는 지역이 광활하여 이동거리상 아무래도 지역지부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데 비해 특별시나 광역시 단위는 지역본부가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지부의 역할이 축소되기 쉽다.

양대노총의 몇몇 지역본부와 지역지부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연대투쟁과 신규조직화에 주력하고 있고 한국노총의 지역조직들은 노사민정협의회를 통해 대지자체 정책?제도 요구활동을 한다거나 직업훈련이나 시민교육강좌, 유아보호시설 운영 등 미조직노동자 및 대시민 서비스활동을 발전시키고 있다. 경기지역의 ‘노동조례연대’는 양대노총과 정당, 시민단체들이 연대하는 정책?제도요구활동의 모범적 사례이다. 지역조직을 위한 상근자 배치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가령 지역본부 상근자가 지역지부를 담당하도록 배정한다거나 상설위원회제도를 통해 가맹 단사노조들의 상근자를 활용하는 사례를 보이고 있다. 경기노동조례연대의 경우 동 연대체에 노무사들을 참가시킴으로써 그들의 전문역량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퇴직자조합 등 지역연대 인프라가 잘 발전되어 있지 않은 문제도 있다.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연대체들이 다수 있기는 하나 주민생활과 관련된 연대체들은 발전이 잘 안되어 있는 실정이다.

지역노동운동 강화 위한 과제

지역노동운동을 발전시키려면 첫째로 지역노동운동의 발전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해가면서 지역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로 지역조직들의 상근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 문제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한국의 일부 지역조직이나 일본처럼 지역본부 상근자를 지역지부 담당자로 배치하거나 상설위원회 등을 두어 지역 단사노조들의 상근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사회 연대에 전문가가 결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전문역량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일본처럼 퇴직한 선배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셋째로 대지자체 정책, 제도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방의회와 노사민정협의회 활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노총은 이들 참여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개선하고 관련 네트워크를 만들어 우수사례들을 상호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조직들에게 정책활동 지침과 표준 정책요구안을 제시해 줌으로써 각 지역의 정책, 제도요구활동이 통일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견인할 필요도 있다.

넷째로 지역연대 인프라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주민의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대체를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대활동은 대지자체 정책과 제도요구활동을 중심으로 조직해내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연대활동과 관련해서는 퇴직자 조직화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인구의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가운데 유권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2020년대에는 30%대, 2030년대에는 40%대, 2045년부터는 50%대로 증대하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 50대 이상 고령자가 큰 영향을 주었지만 앞으로 고령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다.

 
지역노동운동 발전의 문제는 결국은 리더십의 문제일 것이다. 상당 정도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몇몇 지역조직들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재정이나 상근자 부족만 탓하고 앉아 있는 일은 노동운동가의 몫이라 할 수 없다.

노진귀 한국노총 상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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