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사랑을 하고 아홉 개의 삶을 살아온 ‘미스터 노바디’

 

[트루스토리] 송은정 기자 = <토토의 천국>(1991), <제8요일>(1996)을 만든 거장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롭게 선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는 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임종을 앞둔 118세의 남자가 자신이 살아온 아홉 가지 인생을 들려주는 내용을 그린 인생과 선택에 대한 아름답고도 씁쓸한 드라마다.

소재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니모’의 이야기는 한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애 첫 선택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이혼하는 부모님 중 누구와 살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9살 소년 ‘니모’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세 명의 여인을 만나고 각기 다른 인생들을 살게 된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어린 소년은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상반되는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또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삶에 부딪히며 사랑에 빠지거나 슬픔에 잠기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한다.

이러한 ‘니모’의 이야기는 무심결에 했던 작은 선택들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또한 ‘어떤 선택이 옳고, 어떤 선택은 나쁘다’라는 명쾌한 해답 대신 ‘어떠한 선택이든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로 인생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선택에 대한 상상력을 여과 없이 발휘하며 소중한 메시지와 깊은 여운까지 선사하는 셈이다.

데뷔작 <토토의 천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세자르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칸영화제에서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는 등 데뷔를 하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또한 다운증후군 환자와 성공한 세일즈 강사와의 우정을 담아낸 작품 <제8요일>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거장의 반열에 오르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왔다. 그 후 무려 십여 년간의 기다림 끝에 완성된 <미스터 노바디>는 시나리오 작업에 7년, 편집 기간에만 1년을 쏟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선택을 할 때 두 가지 이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 생각한 감독은 <미스터 노바디>를 통해 선택이 가지고 있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기를 원했다. 인생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는 대신 삶의 모든 경험들이 가치 있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감독은 ‘니모’의 아홉 가지 인생들을 통해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명언처럼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을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니모’의 아홉 가지 인생을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극 중 다큐멘터리 진행자 ‘니모’가 설명해주는 물리학 이론들은 복잡하게 얽힌 9개의 인생을 매끄럽게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특히 나비효과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니모’ 부모님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장치로 이용하거나 9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이 공존한다고 주장하는 끈이론을 통해 ‘니모’가 겪게 될 아홉 가지 인생들을 암시하는 등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지적인 배우들의 만남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연출력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영화에 힘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연기, 노래, 작곡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내며 할리우드의 진정한 엄친아 배우로 알려진 자레드 레토는 아홉 개의 인생을 살아가는 34살의 '니모'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운명의 연인인 ‘안나’와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은 채 살아가는 '앨리스'와 결혼하는 등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감정변화를 디테일한 연기를 통해 완벽하게 표현했다.

또한 노인 분장을 하고 118살의 '니모' 연기도 직접 소화하며 영화 속에서 깜짝 놀랄만한 수많은 변신들을 시도한다. 118세로 분장한 니모와 성인 니모 역의 미국 배우 자레토는 커다란 푸른 눈동자를 뽐내며 다양한 삶을 부지런히 연기해낸다.

한편, 15세 니모 역의 영국배우 토비 레그보는 미소년의 발견이라 할 수 있고, 자레드 레토와 환상적인 연기 호흡을 자랑한 세 가지 사랑의 주인공인 ‘안나’ 역의 다이앤 크루거, ‘앨리스’ 역의 사라 폴리, ‘진’ 역의 린당 팜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샤넬의 뮤즈로 활동하고 있는 다이앤 크루거는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절실하게 표현하며 가을 로맨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라 폴리는 우울증에 걸린 '앨리스'를 맡아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였고, 린당 팜도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는 남편을 묵묵히 지켜주는 '진'으로 분하며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니모’와 ‘안나’의 15살 시절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15살 ‘니모’ 역의 토비 레그보와 ‘안나’ 역의 주노 템플은 성인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금기시되는 사랑에 빠져드는 아슬아슬한 10대 커플로 분한 두 배우는 폭발적이고 충동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실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인도차이나>(1992)로 인지도 높은 베트남 여배우 린당 팜(39)이 성인 진 역으로 오랜만에 국내 팬들에게 선보인다. 1993년 한국 드라마 <머나만 쏭바강>에서 박중훈(47)의 상대역을 맡아 청순가련한 외모로 남성팬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

반 도마엘 감독의 전작 ‘제8요일’에서 주연을 맡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한 실제 다운증후군 환자 파스칼 뒤켄이 잠시 얼굴을 비추는 것도 반갑다.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평균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의 건재는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 눈과 귀를 자극하는 초감각적인 작품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은 영상과 음악에도 공을 들이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니모'가 살아가는 9개의 인생들을 시각적 언어로 쉽게 전달하기 위해 빨강, 파랑, 노랑의 세 가지 색상을 선정하고, 이들을 각각의 삶을 상징하는 시각적 코드로 활용했다.

벤치에 앉아 소년 '니모'에게 인사를 하는 세 명의 소녀 '안나', '앨리스', '진'이 입고 있는 원피스 색상에서도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미래 도시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화성 도시와 2092년의 미래 세계는 수많은 연구와 사실적인 CG를 통해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환상적인 비주얼로 완성시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미스터 노바디>의 OST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나비의 날갯짓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인해 ‘니모’의 부모님이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흐르는 Chordettes의 ‘Mr. Sandman’은 귀에 쉽게 익는 경쾌한 멜로디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외에도 Buddy Holly의 'Everyday'와 Chordettes의 'Lollipop' 등 내용과 완벽히 어울리는 음악 선정으로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스터 노바디>에 사용된 대부분의 곡들은 감독의 친형 피에르 반 도마엘이 작곡했다는 것이다. 작업 당시 폐암을 앓고 있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도 40초마다 연주를 쉬어가며 음악 작업에 참여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심오하면서도 절제된 음악들로 영화의 깊이를 채워준 도마엘 형제의 노력은 영화에 대한 감동을 배가시킨다. 오는 16일 밤 12시 30분, KBS 1TV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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