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 외교 문서 “美인사들의 ‘DJ 안전귀국 요청 서한’ 발송 계획 반기문이 입수해 보고”

 

[트루스토리] 김종렬 기자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중이 전두환 정권과 싸우고 있을 때, 반기문 사무총장은 광주학살의 진짜 주범으로 전두환 정권이 전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을 때, 왜 ‘수상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

전두환 정권 시절인 지난 1985년 1월.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결정하자 미국 학계·법조계 유력인사 130여명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안전귀국 보장을 요청하는 연명서한을 보냈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 내 비밀스런 동향을 전두환 정권에게 ‘최초로’ 직접 보고한 사람은 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돼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당시 외무부 참사관으로 하버드대 연수 중이었다.
 
반기문 총장이 일종의 ‘정부 수집자’였던 셈인데,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 그러니까 반 총장의 ‘숨겨진 이력’은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12 총선이 열리기 전 귀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실상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귀국하면 재수감하겠다”고 협박을 하며 미국과 조율 중이었다.

당사자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외견상 ‘스파이’ 노릇을 했던 꼴이다. 외압을 받았던, 본인 스스로 했던 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관찰하고 이를 전두환 정권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건 누가 보더라도 ‘프락치’ 활동이다. 그리고 반 총장은 ‘대권 주자’ ‘잠룡’으로 떠올랐던 까닭에, 이런 역사적 오류와 한계점에 대해 사전에 사과하거나 반성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외교부가 30년 만에 비밀해제 문서 총 1602권, 25만여 쪽에 달하는 외교문서를 공개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외교문서를 공개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이번 외교문서에는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동향 관련 외교문서에 당시 하버드 대학에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과장급)'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게 한다.

반 총장의 입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는 그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확산됐고 여야 잠룡들 중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반기문 대망론’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권의 참패로 끝난 20대 총선은 자연스럽게 김무성 현 대표를 아웃시키고 반 총장을 여권 유력 후보군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에게 타격을 주는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연합뉴스> 등 보도 등 복수의 언론매체 등에 따르면 외교부가 지난 17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는 다소 충격적이다. 1985년 1월 7일 유병현 주미 한국대사는 이원경 외무장관에게 미국 학계·법조계 인사 130여 명으로 구성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campaign to assure a safe return for KIM DAE JUNG)이 김 전 대통령의 안전 귀국을 요청하는 연명 서한을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전문 보고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하버드 대학에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입수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렸다고 유 장관은 전문에 적었다. 전문에 언급된 ‘반 참사관’은 “당시 외무부 소속으로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하던 현재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언급한 것”이라고 언론들은 분석했다.

당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표면적으로 보면,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연수생 신분이 ‘고급 정보’를 직접 보고했다는 점에서 다소 의외다. 출세가도를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는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현재 ‘유엔 사무총장’이 됐고,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공작정치의 수혜자’로 평가받는 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번 보도에 대해서 누리꾼들은 “세월호와 국정원의 숨겨진 진실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걸 터뜨렸다” “총선에서 패배한 권력이 반기문 카드를 버렸다”는 다양한 주장과 해석과 관측을 쏟아내고 있다.

분명한 건, 반기문 총장은 당시 프락치가 아니었다면 정보원이었다는 것.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두환 정권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으로, 향후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여권의 총선 패배와 반기문 총장에게 흠집이 생기면서 여권의 대권가도에도 대변혁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 = 반기문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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