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의원 주최 국회 ‘대통령 풍자그림’ 논란에 너도 나도 ‘유식한 척’

 

[트루스토리]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풍자그림’인 ‘더러운 잠’ 등을 국회에 걸어 전시회가 가능하도록 작가들에게 도와줬다가 ‘봉변’을 당하고 있다.

사진 속 대상이 ‘공범’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표였어도 이토록 ‘난리를 쳤을까’ 싶을 정도로 소란스럽고 유난스럽다. 그냥 전투적이다. 그래야만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절박감이 보인다.

논란의 핵심은 풍자다. 비극적 시대의 풍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다. 풍자 그 이상의 뭔가가 나와야 할 정도로 작금의 상황은 연일 충격적이다. 풍자는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패러디 됐다. 그 누구도 원본 사진에 대해 ‘외설스럽다’ ‘낯 뜨겁다’ ‘혐오스럽다’ ‘자극적이다’라는 표현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얼굴 사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작금의 상황은 일본의 AV 영화 수준으로 그 의미가 전락했다.

그런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딱 그런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해방구’를 찾아가듯이 위기의 박근혜를 구원하기 위해서 목표물이 필요했고, 그 목표물이 손쉽게 포획된 것이다. 바로 표창원이다.

온라인 댓글로만 따지면 상당수 사람들은 이번 대통령 풍자그림 논란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세상만사를 모두 ‘여성 비하’ ‘여성 조롱’ ‘여성 혐오’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은 당연히 ‘박근혜의 권위’에도 반영돼 ‘점잖은 척’하고 있는 우리 사회 ‘뒤틀진’ 어른들의 목소리와 연결이 돼 있다. 그들은 마치 단 한 번도 옷벗고 성을 상품화하는 단란주점에 가보지 않았고, 룸에 가보지 않았고, 안마방에 가보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한 척, 유식한 척, 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당과 시민단체 등이 쏟아내는 ‘논평’과 ‘브리핑’을 보면,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수컷들은 여성들의 몸을 ‘도구’나 ‘상품’으로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다보니, 표창원을 비판하는 모양새부터 ‘수컷’에 대한 모멸이다. 늘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인 ‘여성 비하’를 삽입시킨다. 우스꽝스럽다. 그들이 언제부터 여성의 가치와 인격과 성의 존엄성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술이 지닌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점잖은 척 전제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이번 사태를 규정해 버린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고 있다”고 늘상 어디서 많이 듣던 교과서 같은 멘트로 대통령 풍자그림 사태를 비아냥거린다. 이는 역으로 국정농단 등 헌정질서를 파괴한 박 대통령에 대해 점잖게 접근하라는 말투로 들린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풍자그림  사진의 제목은 ‘더러운 잠’이다.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을 때, 비선실세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생활했던 박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어디서 무엇을 했더라는 ‘가장 팩트에 가까운’ 내용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몇 가지는 이미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퍼즐도 거의 맞춰지고 있다.

한국 작가들은 이 부분에 충실했다. ‘대통령 풍자그림’ 속 더러운 잠을 자고 있는 박 대통령 옆에서 최순실이 ‘주사기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구역질나는 장면이 아니라 분통이 터지는 장면일 뿐이다. 그 어떤 관점으로 보더라도 여성 비하로, 여성 조롱으로 여성 혐오로 읽히지 않는다. 그저 유명 시사지에서 볼 수 있는 만평으로 보인다. 외신이 박근혜 머리의 뚜겅을 열어 박 대통령을 로봇로 묘사했던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옷을 벗고 있기 때문에? 이미 각종 인터넷 등을 통해 이보다 더한 권력들에 대해, 이 보다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풍자들이 쏟아지고 있고, 선진국들은 이런 비판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두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삶을 추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풍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설전이 필요한 이유도, 만평이 필요한 이유도, 행위 예술이 필요한 이유도, 코미디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도, 풍자가 있어야 작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풍자란 그렇다. 간단하기도 하고 명료하기도 하다. 짧을 때도 있다. 표절이 있을 수도 있다. 딱히 어렵게 고민하고 딱히 정도를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풍자가 아니다. 자기검열이고, 그건 권력이 바라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열한 권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필자는 온종일 대통령 풍자그림을 보고 또 봤지만, 결코 창피하지도 않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에 비하면, 이 정도의 비판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범죄집단이었다. 막가파 정부였다. 참사 7시간 동안 아이들은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그때 그들은 정유라를 생각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폭력은 있을 수 없다. 재판을 받고 쇠고랑을 차더라도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만일 누군가 박 대통령을 겨냥해 테러를 저지른다면 단호히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폭언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고, 대통령에게 말조심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박정희 시대가 만들어 놓은 엄하고 까다로운 그들의 지배방식에서 허우적거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풍자는 풍자일 뿐이다. 정치권이 표창원을 비판하고 대통령 풍자그림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저 대선이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만약 대선이 3년 정도 남았어도 모두가 통일된 움직임을 보였을까.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너도 나도 여성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논평은 모름지기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자칭 보수단체가 국회에 난입해 사진을 파괴하는 행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는 결코 ‘어버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명예로운 어른들이 되고 싶지 않은가.

국민 모두로부터 존칭이 필요하다면, 국정농단부터 사과하고 세월호 7시간의 진실부터 밝히는 게 옳다. 진보단체도 보수단체도 이쪽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더 자극적인 풍자가 나올 수 있다.

작가들은 단순히 ‘용기를 냈을’ 뿐이다. 그리고 표창원 의원도 소란스러움을 각오하고 용기를 냈을 뿐이다. ‘감히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해?’라고 일부 단체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일까?

작가들은 어른들의 명령에 꼼짝 못하는 초등학생들이 아니다. 작가도 성숙한 어른이다. 그저, 그들의 기괴한 논리와 반박에 고개를 끄덕일 때 박 대통령은 어느 순간 무죄가 되는 것이다. 지금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지 않나. 수많은 태극기는 시도 때도 없이 거리에 버려지고 있다. 쥐들의 서식처 인근에서. 표창원 의원 역시.

최봉석 대표기자 겸 발행인

 

사진 출처 = 하태경 의원 SNS / 네이버 인물 정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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