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참성단. [사진=김재준 시인]
마니산 참성단. [사진=김재준 시인]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이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祭天)지냈던 곳이다. 원래 머리를 뜻하는 마리, 마리(摩利)산이었는데 갈 마(摩), 산·비구니를 일컫는 니(尼)를 붙여 마니산(摩尼山)으로 고쳐진 것. 나는 차음(借音)으로 생각한다. 참성단(塹星(城)壇)은 별·하늘 구덩이니 성안을 메워 만든 제단, 도교적 의미다.

참성단 지키는 천연기념물 소사나무

바위 꼭대기에 돌을 차곡차곡 쌓았다. 백두산·한라산의 중간 명치지점, 기(氣)가 제일 센 곳으로 신라 원성왕 때 혈구(穴口)2)라 해서 진영(鎭營)을 두기도 했다.3) 그래서 강화약쑥이 명약으로 꼽힌 걸까?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단군왕검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국 체전 때 칠선녀를 뽑아 이곳에서 채화의식을 치른다.

저 멀리 남동쪽으로 이어진 산들이 한남정맥(漢南正脈)4)일 터. 김포·부평·인천……. 그러나 강 건너 길게 솟은 마니산, 이 영산의 참성단을 소사나무가 지키고 있다. 150살 천연기념물이다. 서나무보다 작아 소서목(小西木), 소서, 소사나무로 바뀌었다. 해안, 섬 지방에 잘 자라 서해안에 군락지가 많다. 자작나무과(科) 서어나무 속(屬). 오리나무도 같은 자작나무과지만 모양이 달라 헤어진 지 오래됐다. 민간에선 뿌리껍질5)을 과로하거나 오줌이 신통찮을 때 술과 달여 먹었고 타박상과 종기에도 술과 찧어 붙이기도 했다. 서나무와 다른 점은 잎자루에 털과 잔가지가 많고 맹아력(萌芽力)이 좋아 분재로 많이 쓴다. 한편, 서(서어)나무는 서쪽에 잘 커는 나무(西木)에서 유래됐다. 개서나무, 까치박달, 소사나무 등이 사촌 간, 20미터까지 자란다. 회색껍질은 뱀의 근육처럼 으스스하다. 잎은 어긋나 긴 달걀 모양으로 가장자리 톱니가 있다.

마니산의 천연기념물 소사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마니산의 천연기념물 소사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바위 능선 길 올라왔던 구간으로 되돌아가는데 산 아래 빨강·하양·파랑색 지붕들, 초록 들판, 그 너머 회색 서해 갯벌이 파도 무늬로 아득하고 곳곳에 물길은 나뭇가지처럼 길게 뻗었다. 안개는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저 멀리 섬들을 그렸다 지웠다 한다. 하늘엔 갈매기 대신 까마귀 울고 발밑으로 마을 개 짖는 소리 가까이 들린다.

오후 2시 10분, 갈림길(정수사0.7·함허동천1.8·참성단1킬로미터)에서 오른쪽 정수사로 내려선다. 잠시 숲길로 들어선 듯하더니 다시 암릉길. 땀에 젖은 옷 몇 번 말랐다 젖었다. 쪽동백·누리장·생강·산벚나무 이파리는 기세가 좋다. 신갈·팥배나무 지나서 오른쪽 바위길, 멀리 개펄 사이 물길은 그림처럼 선명한데 마치 나무뿌리 모양이다. 20분 정도 내려서니 산길을 막아선 바위는 거북을 닮았다. 정수사 0.7킬로 이정표가 잘못됐는지 내리막길 한참 가도 절집은 소식이 없다. 아마 1.6킬로일 것이다. 산수유 고목 여럿 만나고 분홍 꽃 좀작살나무를 보며 한참 내려오니 다시 정수사 0.5킬로미터 이정표다.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린 신갈나무들 바라보며 오후 2시 45분 정수사. 퇴락한 절은 어수선한데 비목나무, 오래된 느티나무 몇 그루 길옆에 섰다.

애틋한 사연 지닌 각시바위, 신미양요 아픔 지닌 광성보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었다. 조선시대 함허대사가 다시 지은 것으로 전한다. 서쪽에 맑은 물이 솟아 정수사(淨水寺)라 했다.

법당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맞배지붕으로 앞뒤가 다른데 나중에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에 마루흔적이 있고 꽃 문살이 돋보인다.

함허대사(涵虛大師)가 누구던가? 여말선초 무학대사 제자로 수행 중에 찾아온 부인이 돌아가자고 애걸하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친 부인은 그만 절벽에 몸을 던져 정수사 앞바다에 바위가 솟았으니, 사람들은 각시바위라 불렀다. 길상면 선두리 갯가에 가면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지금부터 아스팔트다. 귀룽나무 그늘 아래 걸으니 까치박달·쪽동백나무는 어느새 굵은 열매를 달았다. 정수사에서 함허동천 가는 길을 두고 큰길로 잘못 내려섰으니 땡볕을 맞으며 걸어도 할 말은 없게 됐다.

“이 산은 바닷가 해발표고 제로지점부터 시작해서 내륙 7~800미터 수준으로 보면 얼추 비슷해요.”

“…….”

“다른 산보다 힘이 더 듭니다.”

오후 3시 20분 함허동천 입구. 뒤에 오는 이들 기다리느라 거의 1시간 보냈다. 날은 더운데 모두 지친 표정 역력하다. 투덜거리는 일행들…….

마니산 정수사. [사진=김재준 시인]
마니산 정수사. [사진=김재준 시인]

분위기 반전을 위해 차로 5분 거리 고려 때 지은 전등사로 들어갔지만 걷기에 이골이 난 것 같다. 매표소에서 바로 되돌아 나와 광성보에서도 다들 지쳐 늘어졌다. 이번 강화여행 일정은 만사휴의(萬事休矣)6). 손돌 돈대만 겨우 보고 남은 여정은 포기하기로 했다.

“돈대(墩臺)는 평지보다 조금 높게 만든 진지인데…….”

“이후부턴 여러분들 가고 싶은 데로 갑시다.”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쌓은 성(城)이 광성보(廣城堡)다. 미국과 신미양요 전투를 벌인 곳.

동막해수욕장 지나 길상면 선두리 갯밭마을 근처 횟집에서 목을 축이니 한결 나은 분위기다. 방파제에 어느덧 시원한 바람이 스쳐 서산에 걸린 해는 기세가 많이 꺾였다. 저녁 해는 낮게 드리워졌는데 갯벌은 온통 붉은 색. 빨간 풀, 그렇지! 나문재 풀이다.

“이쪽으로 모이십시오.”

방파제에 쪼르르 앉았는데 서산낙조 저마다의 얼굴에 비쳐 모두 붉어졌다.

나는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때는 병자호란으로 거슬러 갑니다. 1636년 겨울, 청나라 대군이 쳐들어오자 무능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고 강화도에 들어오려는 피난민이 김포 나루터 길게 뻗쳐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이때 수십 척 배가 나타나 발버둥 치는 피난민은 버려두고 몇몇 여자들과 재물 궤짝만 싣고 갔죠. 누구였겠어요?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 일족입니다. 곧 오랑캐가 들이닥쳐 채이고 밟혀 끌려가고 바닷물에 빠져 죽은 아낙의 머리 수건이 물위에 둥둥 떠 다녔으니 참혹함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울부짖으며 ‘경징이, 경징이.’ 하며 저주를 했대요. 이때 흘린 원한의 피가 붉은 개펄 꽃으로 피었는데 ‘경징이풀, 갱징이’로 부릅니다. 물에 쓸리면 핏물이 흐르는 듯……. 저주받을 김경징은 강화도 수비 책임자였습니다.”

“…….”

“오랑캐는 왜 겨울에 쳐들어 왔죠? 추운데.”

“압록강이 얼었으니까요.”

“…….”

(주)

2)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을 혈(穴), 그 혈이 있거나 드나드는 곳. 뒷산에서 내려온 지맥(地氣)은 혈구 앞에 뭉쳐 있다.

3) 신증동국여지승람(강화도호부).

4) 한강 남쪽의 분수령. 속리산에서 가른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금북으로 갈라져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에 이르는 산줄기. 백운·석성·광교·청계·관악·문수산 등으로 이어진다.

5) 한방에서 대과천금(大果千金)이라 했다.

6) 모든 것이 헛수고.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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