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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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인간이 동물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중 인간은 축제를 즐긴다는 것도 색다른 차이점의 하나라 할 것이다.

축제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겠지만, 잔치도 규모가 작은 축제라 볼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축제 속에 사는 셈이다. 심지어는 한 사회의 문명화와 선진화 정도를 축제 수와 규모, 그리고 그것의 격조를 척도로 삼아 평가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원시 농경 사회에서 봄의 풍요 기원제나 가을의 추수 감사제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축제는 그 공동체의 단합, 종교, 문화 활동들과 밀접한 관계를 띄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고대 국가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전쟁에서의 승리나 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형태도 생겨났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예술이나 먹거리를 주제로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일부러 축제를 고안해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축제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페스티발(Festival)의 어원은 피스트(Feast)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피스트는 연회, 향연이라는 의미로 여러 이유로 다수가 모여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는 술은 필수였다.

따라서 가장 오랫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와인은 빠질 수 없는 축제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와인 그 자체 혹은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종교적 문화적 축제도 생겨났다. 때문에 디오니소스는는 축제의 신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가? 예수의 공생애 시작이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에서 시작하여, 최후의 만찬에는 포도주를 예수의 피로 기억하라고 하며 마신 것으로 마감된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와인을 마시는 것은 기독교에서 성찬 예식으로 남아 있다.

마침 축제의 계절 5월이니 축제의 기원과 그리스의 고대 와인 축제에 대해 알아보자.

축제의 기원

기록상으로 보면 BC 3000년 경 이집트에서 최초의 왕조가 시작될 때 풍요의 신, 그리고 사자(死者)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자 부활의 신으로서 이집트 최초의 왕이 된 오시리스(Osiris)를 기리는 축제가 가장 오래된 축제이고 이것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멀리는 BC 6,000년 경부터 오시리스의 신화와 그를 숭배하는 의식이 축제를 겸해서 내려오다가 정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BC 3,000년 경으로 추측한다.

이 축제는 이집트 최초의 왕조가 시작된 BC 3,150년 이전에 시작하여 로마에 의해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가 멸망하는 BC 323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하니 대략 3000년 가까이 지속된 축제인 셈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이집트의 오시리스 전설이 그리스로 넘어와서 그리스 문명과 융합되면서 디오니소스 신화가 탄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주류 이론이다. 사실상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즉 이집트의 오시리스 축제가 그리스로 전파되면서 그리스 아테네에는 풍요의 신이면서 축제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 네 가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연중 개최되는 시간 순서대로 보면 12월과 1월 사이에 개최되는 ‘시골 디오니시아 축제’, 1월과 2월 사이에 개최되는 ‘레나이아’, 2월과 3월 사이에 개최되는 ‘안테스테리아’, 3월과 4월 사이에 개최되는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는 ‘도시 디오니시아 축제’가 그것인데, 결국 한겨울부터 봄까지 4회의 축제가 거의 매월 한 달 간격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 네 축제를 좀 더 알아보자.

‘시골 디오니시아 축제(Rural Dionysia)’는 고대 아테네와 테베의 국경지대인 엘레우테라에(Eleutherae) 지역의 마을에서 동지를 전후한 12월부터 1월 사이에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 축제는 포도나무의 번성을 기원하는 것으로 시기적으로는 와인 양조가 다 끝나고 숙성 단계에 있을 때이다.

이 축제는 바구니, 빵 혹은 시리얼로 만든 죽, 기타 제물, 물 항아리, 와인 항아리를 가진 소녀들이 순서대로 서서 퍼레이드를 펼친 후 디오니소스에게 제사를 지내고, 12~50명의 합창단이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합창과 춤 공연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일부 마을에서는 나중에 생겨난 도시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행해졌던 연극 공연도 포함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레이트 디오니시아(the Great Dionysia)라고도 불리우는 도시 디오니시아 축제(City Dionysia)는 BC 6세기에 피시스트라투스(Pisistratus)라는 독재자 시절에 생겨났다. 시골 디오니시아 축제 3개월 후인 춘분을 전후한 3월과 4월 사이에 개최되었다.

이 축제는 겨울이 끝난 것을 기념하고 그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였는데 전체적인 진행은 시골 디오니시아 축제와 유사하였다.

이 축제는 모든 아테네 시민, 거주하는 외국인들, 각 도시에서 방문한 대표들과 방문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총 6일 동안 진행되었다.

첫날은 행진으로 시작하는데 디오니소스 상이 제일 앞에 서고 그 다음에 생식과 풍요의 상징으로 남근 상징을 한 장대와 남근들을 실은 카트가 뒤를 잇고 시골 축제와 마찬가지로 각종 공물을 든 소녀들과 화려한 의상의 합창단들이 이 뒤를 따라서 디오시소스 극장까지 행진한 후 거기서 황소를 제물 삼아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날부터 연극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축제에 술이 없을 수 없으니 첫 번째 행진 다음의 두 번째 행진은 와인을 맘껏 마신 사람들이 온 거리를 단체로 행진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퍼레이드 다음날부터 3일의 연극 경연과 2일의 합창 경연이 이어졌다.

사티로스극.
사티로스극.

연극 경연은 BC 534년경에 이 도시 축제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비극만이 도입되었는데 3명의 시인에 의한 3개의 비극이 공연되고 같은 작가에 의해 풍자와 익살풍의 사티로스극(Satyr Play)이 공연되었다.

비극 공연 후에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익살과 풍자극으로 웃기면서 마무리 짓는 것이었으니 병 주고 약주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감정의 균형을 이루어주는 식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이 비극 경연은 추첨으로 선발된 심사관들이 평가하여 최우수 작가에게는 디오니소스의 상징인 염소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비극(tradg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바로 이 염소의 노래(goat song)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니 연극과 디오니소스 축제는 인연이 깊다. 그리고 BC 486년에 도입된 희극은 5명의 작가가 경연을 했다.

합창 경연은 연극 공연 다음 날부터 이루어졌는데 합창은 주신인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노래들로 구성되었고 춤과 노래가 함께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레나이아 축제 장면의 화병 그림.
레나이아 축제 장면의 화병 그림.

이보다 규모가 작게 두 디오니시아 축제 사이인 1월과 2월 사이에 개최된 레나이아(Lenaia)라는 축제가 있었는데 이 축제는 지역민과 거주 외국인들만이 참여하는, 소규모 행사로 횃불을 든 사람들이 앞서고 그 뒤를 와인을 마시면서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행진하는 것과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제사, 그리고 5개의 희극과 2개의 비극 경연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레나이아는 앞에서 이야기한 디오니시아와는 달리 BC 442년에 희극이 먼저 도입되고 10년 후인 BC 432년에 비극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는 2월과 3월 대보름 이전에 3일 동안 개최되었다. 이것은 봄의 시작과 전년도에 만든 와인이 잘 숙성된 것을 축하하는 축제였다고 한다. 이 축제 기간 동안에는 겨울 동안 먹는 것이 금지되었던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첫째 날에는 새로운 와인을 담고 있는 항아리를 열어서 디오니소스에게 헌주하고 노예들까지 참여한 가운데 함께 마셨고 온 집안을 봄의 꽃들로 장식하였다.

둘째 날은 와인 마시는 날로 무리를 지어 지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마시기도 하고 조상들의 무덤에 헌주하기도 했다.

또한 이 날에는 와인 빨리 마시기 대회가 열렸는데 우승자에게는 담쟁이 덩굴로 만든 화관과 와인을 가득 담은 와인 가죽백를 상으로 주었다. 이 대회 참가자가 3살 이상의 아이부터 성인 남성까지였다고 하니 놀랍다.

3살짜리 아이도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은 포도나무를 심고 3년째부터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성인용의 경우 대회의 토기 항아리(주전자)의 용량이 약 2.8리터이었는데 오늘날 750ml 기준으로 와인 약 3.7병에 해당되니 대략 더블 매그넘(3리터) 병 사이즈가 되는 셈이다.

오늘날로 보면 와인 4병 빨리 마시기 대회였던 셈이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디오니소스와 아테네의 고대 여왕인 바실린나(Basilinna)와의 합방을 상징화하여 축제 최고 집정관(Archon basileus)과 그의 부인(basilinna)이 디오니소스의 성소에서 합방을 했다고 한다. 그 취지는 그 해 풍작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일 째는 항아리(단지:pot)의 날이자 사자(死者)들을 추모하는 날로 온 가족이 몇 가지 곡물로 만든 죽을 해가 지기 전에 함께 먹고 사후 영혼들을 지하세계로 인도한다는 에르메스 신과 사자들에게 과일이나 콩요리로 제사를 드리며 악령을 쫓는 의식도 거행했다.

축제 기간 동안에 죽은 영혼들이 지하세계에서 나와서 사람들과 함께 다닌다고 믿었던 당시 아테네인들은 이런 의식을 통해 죽은 영혼들과 작별을 고했다고 한다.

이 축제기간 동안에는 공식적인 연극 공연은 없었지만 다음 달의 축제를 위한 리허설 공연이 열렸고 동시에 그 공연을 위한 배우를 선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 퍼레이드나 비극과 희극, 그리고 익살 풍자극이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축제 발달사에서 비극이 먼저 공연되고 한참 뒤에야 희극이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슬픔이나 고통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더 성숙시키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생존이나 발전을 위해, 통상 평온한 시기에나 가능한 웃음보다는 고난의 시기를 기억하라는 의미였을까? 흔히들 말하는 잘 나갈 때 어려운 때를 대비하라는 범사회적 의식 교육의 일환이었을까?

어쨌거나 한 개인에게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깊은 자기 성찰과 사유를 바탕으로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로 삶을 이어가야 그 공동체 사회도 밝고 발전으로 될 수 있을 테니 비극에서 시작하여 풍자극을 거쳐 희극으로 마무리되는 축제의 과정은 오늘날 우리의 개인의 삶과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축제의 계절이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면서 좋아하는 와인 한 잔 음미하는 것도 찬란한 5월을 보내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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