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찻물을 찾다

문징명의 '혜산다회도', 명대, 지본채색, 21.9X67.0cm, 북경고궁박물원.
문징명의 '혜산다회도', 명대, 지본채색, 21.9X67.0cm, 북경고궁박물원.

[뉴스퀘스트=함은혜(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명나라의 대표적인 차인이다.

그가 남긴 차 그림들 중에 독특한 작품인 <혜산다회도(惠山茶會圖)>는 1518년 작으로 문징명의 나이 49세에 그린 작품이다.

채우(蔡羽)의 기록에 따르면, 1518년 2월 19일에 문징명과 그의 친한 벗들인 채우(蔡羽), 왕수(王守), 왕총(王寵), 탕진(湯珍)은 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 무석현(無錫縣)의 혜산(惠山)에 유람을 갔다.

그 곳에서 차를 마시며 품다(品茶)를 하고 시도 읊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 이후에 바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혜산다회도>는 ‘혜산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주제로 삼고 확대하여 그렸다. 혜산의 소나무 숲 속에는 초가지붕의 정자와 그 정자 안에 우물이 있고, 그 왼편에는 차를 위해 준비된 빨간 탁자와 각진 풍로가 위치하고 있

다. 문징명과 그의 네 친구들로 보이는 고사(高士)들이 소나무 사이에서 거닐면서, 우물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경치를 감상하며 다동들이 차를 준비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고사들과 다동들의 모습을 동적으로 표현하여 생기가 돈다. 동시에 산수의 정취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표현하여, 청록산수화임에도 불구하고 문기(文氣)가 있는 문인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정자 아래 우물 옆에 두 고사가 앉아 있는 장면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차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는 한 고사가 우물물을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그 맞은편에 앉은 고사는 종이를 펼쳐들고서 함께 진지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다회의 장면으로 보기에 독특해 보인다. 혜산과 물의 조합은 문징명의 차와 찻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낸 것이다.

실제 찻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샘물을 찾은 것은 당나라의 육우(陸羽, 733~804)였다.

그는 천하를 주유하며 천하 명천(名泉)을 지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십이명천(十二名泉)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명천으로는 ‘혜산천(惠山泉)’을 지목했으며, 이 때문에 육자천(陸子泉)이라고도 부른다. 이로써 혜산천은 ‘명천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듯 당나라에 이르면 이미 찻물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로 차를 즐기던 문인들은 품다(品茶) 뿐 아니라 어떤 물이 찻물로 적합한지, 어떤 물이 차의 맛과 기운을 온전히 품고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품천(品泉, 찻물에 대한 품평)’을 하곤 했던 것이다.

물은 차의 색, 향, 맛과 기(氣)를 드러내는 근본이다. 앞서 육우는 <다경>에서 산수 중 유천(乳泉)과 석간수를 최고로 쳤다. 당나라 장우신(張又新)의 『전다수기(煎茶水記)』에 “대개 자란 곳에서 나는 것으로 차를 달이는 것이 가장 좋다.

대체로 물의 화합된 기운은 그곳을 떠나면 수공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차를 잘 달이고 용기(用器)를 정갈히 하면 물의 고유한 본성이 다 드러나게 된다(未茶烹於所産處 無下佳也 蓋水土之宜 離其處 水功其半然 善烹潔器 全其功也).”고 하였다.

또한 명나라 전예형(田藝衡)이 쓴 『자천소품(煮泉小品)』에 “산이 맑아야 물이 맑다. 산에서 나는 샘물은 땅의 기운[地氣]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

산 속의 흐르는 샘물이 좋은 품등의 찻물로 평가되면서 품천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차의 체(體)는 물이기 때문이다.

차를 안다는 것은 물맛을 보고 차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이미 아는 것이다. 물과 차를 따로 떼어내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도록 해야 온전한 차 한 잔이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차일지라도 제대로 된 물이 있어야 그 차의 맛과 기운을 잘 드러낼 수 있다.

이렇듯 혜산의 샘물[혜산천]에 대한 명성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략) … 스님의 격조 높음은

오직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 때문.

몽정의 새싹을 따서

혜산의 물로 달인 것이 제일일세.

차 한 잔 마시고 한마디씩 나누며

점점 심오한 경지에 들어가네.

이 즐거움 참으로 청담하니

굳이 술에 취할 필요가 있겠나.

위 시는 「엄 스님을 찾다」라는 제목으로, 『동국이상국전집』후집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혜산의 물로 달인 것이 제일일세”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시대 문인들 사이에서 좋은 찻물의 기준은 혜산의 물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점필재문집』권2에서 “동쪽 섬돌 아래에 영계(靈溪)가 있고, 서쪽 섬돌 아래에 옥천(玉泉)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것으로 차를 달인다면 중령(中泠), 혜산(惠山)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듯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이준(李埈, 1560~1635)의『창석집』권3에서 “풍로에 눈 녹인 물 끓이니 푸른 연기 일어나고, 한 사발 제호 마시니 환골하여 신선이 될 듯. 지난 날 육우의 품평은 잘못되었나니, 맑고 단 샘물이 어찌 혜산천(惠山泉) 뿐이랴.”라고 하였듯이, 조선시대 문인들에게도 혜산의 물은 좋은 찻물의 상징이라는 명성이 계속해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의 차 문화는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498, 재위1368~1398)에 의해 개창된 산차(散茶), 즉 잎차 문화이다. 이로 인해 차를 마시는 방법은 잎차를 물에 우려서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명나라 주고기(周高起)가 『양선명호계(陽羨茗壺系)』에 “주전자에 차를 넣어 뜨겁게 끓인 신선한 물을 부어서 마신다. 뜨거운 물에 차를 담갔다가 차를 마신다. 이렇게 마시면 색, 향, 맛을 음미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포다법은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시는 방법이다. 이 포다법은 특히 물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차 문화 속에서 문징명은 명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차인으로, 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찻물에 대한 중요성도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함은혜(동아시아차문화연구원).
함은혜(동아시아차문화연구원).

육우가 혜산을 유람했던 것처럼, 문징명도 그의 친한 다우(茶友)들과 혜산을 유람하면서 명천을 찾아 품천하고, 그 찻물로 끓인 차를 마시며 품다하면서 그의 차에 대한 탐구를 확장시켜 나갔을 것이다.

또한 찻물에 대한 관심을 그림으로 남겨, 명나라 문인들의 차 인식의 수준과 차 생활을 짐작하게 했다. 가장 좋은 찻물로 가장 좋은 차를 마시고자 했던 당시 문인들의 모습도 유추해볼 수 있다.

문징명이 <혜산다회도>를 그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와 함께 차를 즐겼던 다우들도 있었다.

아마도『유혜산사기(遊惠山寺記)』를 썼던 육우의 발자취를 따라 혜산의 좋은 찻물이라는 주제로 유람을 떠났던 것 같다. 차로 이어진 그들의 우정이 명대 문인들의 탐구하는 차 생활을 대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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