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거위를 바라보다

'왕희지애아도(王羲之愛鵝圖)',작자미상,  17세기 후반, 견본채색, 73x33cm,  개인소장
'왕희지애아도(王羲之愛鵝圖)', 작자미상, 17세기 후반, 견본채색, 73x33cm, 개인소장

[뉴스퀘스트=최혜인(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소나무 아래에 붉은 평상이 놓여 있고, 그곳에 고사(高士)가 홀로 앉아있다.

고사 옆으로 서책과 다양한 기물들이 보이고, 차를 준비하는 다동이 있다. 저 멀리 솟아오른 주산과 겹겹이 싸인 산봉우리들은 이곳이 인적 드문 곳임을 나타내고 있다.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고사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거위 한 마리가 보인다.

이 작품은 17세기 후반에 그려진〈왕희지애아도〉(〈왕희지환아도(王羲之換鵝圖)〉또는〈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라고도 불림)이다.

그림 속 인물이 왕희지(王羲之, 307~365)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거위 때문이다.

왕희지는 동진(東晉)시기의 서예가로, 당나라 태종이 서성(書聖)으로 칭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물이다.

『진서(晉書)』「왕희지전(王羲之傳)」에 의하면 그는 거위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거위의 긴 목과 물에서 헤엄치는 몸놀림에서 변화무쌍한 운필(運筆)의 묘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산 속에 사는 도사를 만났는데, 거위 여러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왕희지가 흰 거위를 얻고 싶다고 하자 그의 명성을 들은 도사는 『황정경(黃庭經)』(『도덕경(道德經)』이라는 기록도 있음)을 써주면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희지는 흔쾌히 승낙하고 흰 거위를 얻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일화를 통해서도 왕희지가 거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왕희지를 그린 그림에는 거위 한 두 마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거위의 움직임에서 붓놀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후대에도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원대 전선(錢選)의 <왕희지관아도>(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나무 숲 속에 지어진 누각에 왕희지와 동자가 서서 한가롭게 노니는 두 마리의 거위를 바라보고 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을 보면 왕희지 홀로 거위를 보고 있거나, 도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고 그 주변에 거위가 있는 모습이 정형화 된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흥미롭게도 차를 준비하는 모습을 추가적으로 그렸다. 이것은 17세기 후반 문예적 상황이 반영되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선 중기에 제작된 다화들은 완전히 초월한 소은(小隱; 도시를 벗어나 산 속에서 은거)의 성격이 강한 반면, 조선 후기로 갈수록 도심 속에서 은일하는 대은(大隱)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원림과 연관된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왕희지애아도〉를 보면 전체적으로 심산유곡 분위기가 두드러지지만, 원림 문화의 유행이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인물 주변을 에워싼 울타리, 조성된 듯한 소나무와 대나무, 탁상에 놓인 각종 고기물(古器物)들, 그리고 찻물 끓이는 동자를 통해서 원림을 만들고 그곳을 가꾸며 지내는 은거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를 미루어보면, 문인들이 추앙한 왕희지의 인격과 삶을 모티브를 삼으면서 그들이 향유하거나 추구한 문화가 여실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허균(許筠, 1569~1618)이 편찬한 『한정록(閑情錄)』내용에는 “옛 초가집을 보수하면서 도랑을 터서 샘물을 끌어들이고 빙 둘러 꽃과 나무를 심어놓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시가를 읊조리며, 친구와 만나 차를 달여 마시고, 바둑을 두며 잔술이 방안에 가득 널려 있으니, 그 즐거움은 자못 속세에 있을 바가 아니다. …… ”라고 하였는데, 이 글은 『옥호빙(玉壺氷)』에서 선별해 옮겨놓은 내용으로서 17세기 문인들이 지향한 삶을 대변해준다.

원림을 꾸며서 한적한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삶의 모습은〈왕희지애아도〉속 인물과 같다.

이와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고결한 인품을 가진 역사적 인물에 자신을 빗대어 풍류를 즐기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전란과 당쟁으로 인해 혼란한 사회에서 벗어나 자아를 닦고 기르며 즐기고자 하는 현상이 대두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그 시대 문인들에게 차는 탈속과 은거 생활에서 고사가 영위하는 음료로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희지애아도〉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왕희지와 거위를 소재로 한 17세기와 19세기 작품에서 차를 달이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홍도의〈황정환아도〉《중국고사도8첩병풍》(간송미술관)가 있다. 이는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는데, 앞서 소개한 “『황정경』을 써주고 거위를 얻어왔다.”는 일화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된다. 『황정경』은 도가 경전으로 양생과 수련의 원리를 담고 있다.

최혜인(동아시아차문화연구원)
최혜인(동아시아차문화연구원)

그리고 차는 예부터 마음을 맑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해주는 음료여서, “첫 잔은 입술과 목을 적셔주고 …… 여섯째 잔은 신선과 통하게 하고 일곱째 잔은 마실 것이 없으니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솔솔 일고 있음을 느껴서이네. 봉래산은 어디에 있는 가 ……”라는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碗茶歌)」에서도 보듯이 차는 신선과 관련한 문헌이 많다. 이러한 차에 대한 인식이 그림에도 반영되어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왕희지애아도〉는 당시 문예풍조와 더불어 문인들이 차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천천히 그림을 감상해보자. 잘 꾸며진 원림 속에 앉아 찻물 끓는 소리와 함께 거위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바라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허균 著, 민족문화추진위원회 編, 『한정록』권1, 솔,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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