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아리랑(십이령아리랑) 공연 장면.
울진아리랑(십이령아리랑) 공연 장면.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국은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연이어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전국 곳곳에 개통되면서 이제 우리나라 어디에도 서울에서 출발해 하루에 다녀오지 못할 곳은 없다.

전라남도 해남이나 진도, 경상남도 거제, 경상북도 울진, 영덕 등 모두 차로 5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만큼 교통이 편리해진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나라에는 교통이 불편해 등짐장수, 이른바 보부상들이 교역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들도 많다.

특히 강원도 영동과 영서는 태백산맥으로 인해 거리는 가깝지만 왕래는 매우 불편했다. 때문에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고갯길은 삶의 한 마루이자 아득한 거리감으로 인해 문학작품 혹은 민요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진부령, 대관령 등등의 고개는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경북 봉화와 경북 울진을 연결하는 도로도 지금은 자동차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아예 번듯한 길조차 없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의 물산이 이동하는 교역로는 반드시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이진 길이 바로 십이령 고갯길이다.

봉화의 춘양장에서 울진장까지 약 80km에 이어지는 작은 길로 열두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십이령길이라 한다. 약 200리에 해당하는 이 길을 넘나들던 단골은 역시 보부상이었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무거운 물건을 져 날랐던 것이다.

울진 쪽에서의 중요 생산품은 소금, 미역, 문어, 고등어 등 주로 바다에서 나는 산물이었다. 보부상들은 소금 미역 등을 지고 봉화의 춘양장에 팔고, 울진장으로 갈 때는 콩과 같은 곡식과 담배와 같은 육지의 생필품을 지고 날랐던 것이다.

경북 안동 지방의 간고등어가 특산물로 자리잡은 것도 이들 보부상이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에 간을 하여 안동 쪽으로 날랐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고갯길을 오르니 어찌 노래 한 자락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발생한 노래가 바로 <십이령길 바지게꾼 노래>다. 이는 <십이령 아리랑>, <울진 아리랑>이라 이름 해도 된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은 언제 가노

(후렴: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내륙의 춘양장에 갈 때는 어물을 지고 가고 반대로 울진으로 갈 때는 곡식 등을 지고 간다.

반평생을 열두 고개를 가는 것이니 얼마나 처량하고 한탄스러웠을까. 그래서 조물주에게 원망을 한다(시그라기는 억새의 경상도 사투리, 바지게는 짐을 많이 올릴 수 있게 뒷받침대가 없게 개조한 등짐장수용 지게를 말한다). 이 노래는 아주 쉬운 4.4조이다.

가락은 <정선아리랑>과 비슷하다. 즉 <정선아리랑>의 보부상 버전인 것이다. 지금이야 울진이 경상북도지만 과거에는 강원도였으니,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자연스럽게 보부상에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한강을 이용해 서울로 목재를 나르던 정선이나 영월의 뗏꾼들도 <정선아리랑>을 자연스럽게 불렀던 것으로 보아 <정선아리랑>은 이동하는 사람들(보부상이나 뗏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보부상에 의해 울진 지역으로 퍼져 나간 것이 바로 <십이령 아리랑>인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로 널리 퍼진 <아리랑>은 1926년에 나온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였던 <아리랑>이다. 이를 다른 <아리랑>과 구분하기 위해 「본조(本調)아리랑」이라 한다. 본조란 본바탕이란 의미보다는 서울 본바닥이라는 의미다.

수많은 <아리랑>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아리랑>은 강원도 지방의 토속민요인 <정선아리랑(정선아라리)>이다. <정선아리랑>은 <정선긴아리랑>과 <정선엮음아리랑>으로 구분된다.

조선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강원도 지방의 인부들이 부른 <정선아리랑(정선아라리)>이 영향을 미쳐 서울·경기제의 <긴아리랑(서울긴아리랑)>과 <서울자진아리랑>이 나타난다.

이 <서울자진아리랑>을 변주한 새로운 아리랑이 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나운규의 <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라 부르기로 함에 따라 <서울자진아리랑>은 <구조(舅調)아리랑(구아리랑)>이라 부른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정선아리랑>을 변주한 신민요풍의 새로운 <아리랑>이 나타나는데 이를 <강원도아리랑>이라 부른다. 또한 <정선엮음아리랑>을 서울 · 경기제로 부른 <정선엮음아리랑(서울 · 경기제)>도 있다.

이밖에도 수많은 <아리랑>이 새롭게 형성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다. ☞ 참조 (링크)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로 여러 지방에서 수많은 <아리랑>이 있고, 새로운 <아리랑>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본조아리랑>은 영화라는 매체의 힘에 의해 전국적으로 전파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민초들이 입으로 퍼 날랐던 노래가 세계적인 노래가 된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정선아리랑>다. <십이령 아리랑> 역시 <정선아리랑>의 경상도 북부지방 보부상 버전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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