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인

[뉴스퀘스트=이철형(와인나라 대표)]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면 오렌지를 발효하여 만든 와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렌지로 만든 와인은 그다지 인기가 없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와인업계에서는 오히려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면 양조할 때 발효기간 동안 포도즙에 포도 껍질과 씨를 담가두어 포도껍질과 씨의 성분이 추출되게 하는 화이트 와인을 오렌지 와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화이트 와인을 만들면 포도씨의 리그닌에서 추출된 성분에 의해 일반 화이트 와인보다 진한 오렌지 색조를 띄게 된다. 이 색깔을 보고 영국의 한 와인 수입상이 사용한 용어를 와인 전문 잡지인 디캔터 기자가 활용하면서부터 오렌지 와인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졌다.

오렌지 와인의 다양한 색상들. [사진=아시아 와인 트로피 와인 컨퍼런스]
오렌지 와인의 다양한 색상들. [사진=아시아 와인 트로피 와인 컨퍼런스]

이런 오렌지 와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우리가 현재 마시는 거의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포도껍질과 씨를 포도즙에 담가두는 과정(이를 침용maceration이라고 한다)을 거치지 않았다.

포도를 수확해서 좋은 포도송이를 선별한 다음 이것의 줄기를 제거하고 포도알갱이를 압착하여 포도즙을 짜고 껍질과 씨는 분리해서 버리고 포도즙만을 효모로 발효시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 양조법이다. 

침용은 레드 와인 양조시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로제 와인도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블렌딩하여 만들지 않는 다음에야 침용 시간은 레드 와인보다 짧지만 필수 코스다.

침용을 하면 껍질의 색소와 껍질에 있는 몸에 좋다는 페놀 성분과 향 성분 등이 추출되기에 로제와 레드 와인의 붉은 색을 얻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침용하지 않은 와인(왼쪽)과 침용한 피노 그리지오(화이트 품종) 와인. [사진=플리커]
침용하지 않은 와인(왼쪽)과 침용한 피노 그리지오(화이트 품종) 와인. [사진=플리커]

레드 와인의 경우에 침용 기간은 통상 발효기간인 10일~14일 정도이고 길어야 3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렌지 와인의 경우에는 4일에서 1년 이상까지 양조가에 따라 침용 기간이 달라진다.

그리고 오렌지 와인의 경우에는 주석산을 첨가한다거나 이산화 황을 첨가한다든가 하는 것을 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일반 와인 양조와 다른 점이다. 심지어 인공배양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 껍질에 있는 천연 효모에 의해 발효가 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양조시에도 일반 화이트 와인처럼 온도를 15℃ 이하로 낮추어 발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온에서 발효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변형된 침용 방법으로 발효 전에 10~15℃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가 되지 않는 상태로 최대 24시간 정도 침용했다가 그 이후 발효를 진행하거나 반대로 상온인 18℃ 정도에서 4~8시간 침용했다가 그 이후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진행하기도 한다.

오렌지 와인은 일반 와인처럼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하지 않고 오크통을 사용하더라도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큰 오크통을 사용하거나 오히려 오크 성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포도 자체의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 스틸통이나 시멘트 발효조, 토기 용기 발효조를 사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렇게 만든 오렌지 와인은 일반 화이트 와인과 무엇이 달라질까? 

오렌지 와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면 단순히 색깔만 더 진하게 추출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화이트 와인이 주는 신선하고 상큼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한다.

산도가 높아 더 시고, 신맛의 종류도 사실은 산화 방지를 위해 침용을 오래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산화 현상이 생겨 상한 사과나 쉐리류의 신맛이 난다.

그리고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아도 헤이즐넛이나 브라질 너트 등의 너트류의 향과 꿀향, 말린 오렌지 껍질 향 등이 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껍질에서 탄닌이 우러나서 탄닌감도 있는 강건한 스타일의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된다.

아르만테스 마카베오 (오렌지 와인인데도 꽃향과 과일향이 일품이고 신선 상큼하다.)
아르만테스 마카베오 (오렌지 와인인데도 꽃향과 과일향이 일품이고 신선 상큼하다.)

따라서 오렌지 와인 양조가들의 숙제는 기존의 화이트 와인처럼 꽃향과 과일향을 간직한 채 독특한 다른 향과 맛을 더하게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오렌지 와인의 소비자층은 소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의 상큼 신선한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는 다수인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묵은지가 맛있기는 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고 묵은지 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와 같다.
 
 그럼 이런 오렌지 와인은 21세기에 들어 새로이 발명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오렌지 와인의 양조방식은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에서는 우리의 장독같은 케브리(Qvevri)라는 토기 용기를 땅에 묻어두고 여기에 포도즙과 껍질 등을 함께 넣고 돌로 입구를 막고 밀랍으로 밀봉하여 와인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곳이 많다.

과거에는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와이너리들도 포도껍질과 씨를 침용하는 방식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196,70년대 들어 냉각 기술 등의 과학 기술을 도입하여 신선하고 상쾌하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위해 침용을 하지 않는 현재 스타일의 화이트 양조 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초반 조지아를 방문했던 서유럽의 양조가들 중 누군가가 귀국하여 오렌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다른 양조가들에게도 권유하기 시작했다.

조지아의 각종 케브리(왼쪽)과 케브리를 땅에 묻은 와이너리. [사진=플리커]
조지아의 각종 케브리(왼쪽)과 케브리를 땅에 묻은 와이너리. [사진=플리커]

여기에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양조가들이 동참하면서 과거 방식의 부활을 넘어 하나의 운동(Movement)차원으로 전개되었고 이들이 각종 페스티벌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21세기 들어 세인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맥주에서 라거 방식이 과학 기술 발전으로 저온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보다 부드럽고 상큼 신선한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 생산 방식이고 에일 방식이 상온발효를 하면서 변질을 막기 위해 홉을 많이 넣어 강하고 거친, 역사적으로는 라거보다 오래된 과거 스타일 맥주 생산 방식으로 만든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에일 맥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처럼 오렌지 와인도 과거 방식인데 오히려 와인 세계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과일 오렌지로 만든 와인과 혼동이 생길까봐 양조가들은 오히려 포도 껍질 및 씨와 접촉한 와인이라는 의미의 스킨 컨택트 와인(Skin Contact Wine)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다.

엄밀히는 ‘스킨 컨택트 화이트 와인’이다.

하지만 레드 와인은 껍질에서 색깔을 우려내기 위해 이 과정이 필수코스이기 때문에 굳이 이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통상은 화이트란 단어를 빼고 스킨 컨택트 와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과일 오렌지 와인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냥 색깔만을 나타내는, 보석인 호박 또는 호박색을 의미하는 앰버(Amber)라는 단어를 넣어서 ‘앰버 와인’이라고도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피노 그리지오로 만든 오렌지 와인을 적갈색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어인 라마토(ramato)를 사용하여 라마토 와인이라고도 한다.

오렌지 와인 페스티벌 (매년 봄에 슬로베니아의 이졸라(Izola)에서, 가을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
오렌지 와인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은 매년 봄에 슬로베니아의 이졸라(Izola)에서, 가을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다.

화이트 와인의 세계에 침용한 와인과 침용하지 않은 와인이 등장하여 공존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늘 새롭거나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서 부활시키려는 일부 생산자들의 노력도 숨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좋고 그동안 별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양조가들은 이를 계기로 새롭게 각광을 받을 기회가 생겨서 좋고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은 양조가들에게는 고민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새로운 도전이 자극이 되어 기존 와인을 보다 잘 만들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에 모두에게 좋은 것 같다.

오렌지 와인 트렌드가 얼마나 확산될 지 그리고 전체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 비중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모르지만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이 와인 덕분에 와인에도 적용이 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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