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세기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심지어 북한보다 훨씬 못 살았다.

그러나 1978년 말 본격 추진한 개혁, 개방 정책은 이 세계 최대 빈국을 40여 년 만에 G2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과거 상상도 못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엄청나게 많이 탄생했다.

이른바 당대발복(當代發福. 자신의 대에서 크게 성공함)에 성공한 기업인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바닷가의 모래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떻게 성공을 하게 됐을까?

성공 스토리는 어느 정도로 드라마틱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뉴스퀘스트는 이 의문을 명쾌하게 해소시켜드리기 위해 대륙의 유명 기업인 성공 스토리 코너를 진행한다.

독자들이 이 코너를 통해 중국 기업인들의 성공을 향한 집념과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 등을 보고 배우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편집자 주>

중국 자동차 기업 비야디의
중국 배터리 업계 대부 비야디의 왕천푸 회장. [사진=중국 비야디그룹 보도자료]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은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자동차 산업에서는 변방의 후진국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완전히 변신에 성공했다.

가성비 끝판왕 국산 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형 자동차인 전기차 부문에서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당연히 기세를 올리고 있다.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본사를 둔 비야디(比亞迪. BYD)를 중심으로 하는 업체들이 그야말로 맹렬한 기염을 토하고 있다.

특히 비야디는 명성에서는 테슬라에 미치지 못하나 규모 면에서는 단연 세계 1위 기업에 해당한다.

불과 설립 24년 만에 비야디를 글로벌 기업으로 견인한 주역은 단연 창업자이자 회장인 왕천푸(王傳福. 53)라고 해야 한다.

지금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 필적할 정도로 유명인이 됐으나 그의 사회생활 초창기는 사실 별 볼일이 없었다.

안후이(安徽)성 푸후(蕪湖)현의 벽촌에서 태어나 자란 흑수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의 중난(中南)대학 야금물리화학과를 졸업한 21세 때인 1987년 베이징이 배터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만 해도 그에게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진=중국 비야디그룹 보도자료]

안정적인 삶도 보장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29세 때인 사촌동생에게 빌린 250만 위안(元. 4억2500만 원)을 밑천으로 1995년 선전에서 비야디를 설립, 미래가 불투명한 창업의 길로 과감히 들어선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동차 산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야디가 휴대폰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였던 것이다.

그는 창업 이후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 약품도 직접 마셔보는 만용도 서슴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지금까지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다.

성공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창업 7년 만인 2002년 배터리 분야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왕 회장에게는 ‘배터리 대왕’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그는 이 성공에 고무돼 2003년 산시(陝西시)성 시안(西安)의 친촨자동차(秦川)자동차 지분 77%를 사들이면서 더 큰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연히 주주와 투자자들은 전혀 경험이 없는 자동차 사업 투신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2006년 10월에는 F3로 이름 붙여진 세단 승용차를 일본의 도요타와 폭스바겐 제타 등의 세계적 브랜드 차량보다 더 많이 팔면서 파란도 일으켰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 비야디의 왕천푸 회장.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비야디의 왕천푸 회장. [사진=중국 비야디그룹 보도자료]

2008년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투자를 이끌어낸 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이후 비야디의 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지금은 2008년 본격적으로 투신한 전기차 시장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서 급성장의 쾌속 질주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제주에까지 진출, “제주도를 세계 전기차 시장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호언장담까지 하고 있다.

이로 보면 그가 입만 열면 “2030년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100% 전기차 시장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밝히는 것은 절대 허언이 아닌 듯하다.

아직 50대 중반이 채 되지 않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한 CEO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업에서는 계속 혁신과 파격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결정적 순간마다 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나 목숨을 걸고 화학 약품까지 마시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비야디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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