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솽후이그룹을 이끌고 있는 완룽 회장의 최근 모습.
35년 동안 솽후이그룹을 이끌고 있는 완룽 회장의 최근 모습. [사진=솽후이그룹 보도자료]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흔히 한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아직도 일반적으로 꺼려지는 직업이 없지는 않다.

돈 좋아하는 중국에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중국인들이 돈만 많이 벌면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절대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직업이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속된 말로 백정으로 불리는 도부(屠夫)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베이징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돼지고기 장사를 하는 용감한 인재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선택하지 않고 싶어 하는 직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꺼려하는 이 업계에 들어서면 최소한 밥을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진입 장벽이 낮을 뿐 아니라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 불황이 드문 업종인 탓이다.

최근 열린 직원 대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는 완룽 회장.
최근 열린 직원 대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는 완룽 회장. [사진=솽후이그룹 보도자료]

때문에 본인이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편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즐겁게 일할 경우 의외의 성공도 할 수 있다.

중국의 최대 육류가공업체인 솽후이(雙匯)그룹의 완룽(萬隆. 79) 회장은 바로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비교적 오지에 속하는 허난(河南)성 뤄허(漯河) 출신인 그는 동시대의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가방끈이 짧았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않았다. 좋은 직업을 구하는 것이 쉬울 턱이 없었다. 5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친 후인 나이 28세에 솽후이그룹의 전신인 뤄허육연창(肉聯廠)에 입사한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이왕 몸을 담게 된 회사이니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소, 돼지, 닭 등을 도축하는 일부터 배우는 고생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는 좋았다. 곧 도축 현장을 떠나 사무를 보게 되면서 회사의 판공실 부주임과 주임을 거쳐 부사장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984년에는 선거에 의해 사장에까지 선출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지휘 하에 솽후이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뤄허육연창은 폭풍 성장의 길로 내달렸다.

연 매출액이 1000만 위안(元. 17억 원)에 불과한 회사가 500억 위안 대의 기업으로 몸집을 불린 것이다.

무려 5000배나 성장하는 기적을 일궈냈다는 계산은 바로 나온다.

시장에 출하하는 제품도 없는 육가공 제품을 골라야 할 정도가 됐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장 경영을 고수하는 완룽 회장. 허난성의 한 공장 시찰에 나서고 있는 모습.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장 경영을 고수하는 완룽 회장. 허난성의 한 공장 시찰에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솽후이그룹 보도자료]

그는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수년 내에 1000억 위안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것이 80세를 바라보는 그의 마지막 야심이라고 한다.

그는 대단한 스펙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재능 면에서도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이다.

그러나 자신이 최고로 자신이 잘 하는 일에 매진해 크게 성공했다.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 한 매체의 기자가 “회장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지체 없이 토해낸 대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몰라서 묻는 것인가? 돼지 도축이다. 도축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거운 때이다. 다른 취미는 없다.”라는 답이었다.

그는 진짜 자신의 말대로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담배, 술 마작, 춤 등에도 평생 단 한 번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기야 하루 세끼 식사도 회사에서 하고 있다면 더 이상 설명은 사족이 아닐까 보인다.

그가 ‘중국의 도부왕’, ‘육류가공업의 대부’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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