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어느 해 5월, 사람들이 많아 일행은 두 갈래로 나눠 우리는 평지인 상림 숲을 두고 최치원 길을 따라 오른다.

뙤약볕에 날은 덥다. 읍내가 잘 보이는 곳,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 뚜렷한 한남군 묘다. 그냥 지날 수 없어 한 잔 올리고 간다.

엄천강 새우섬에서 죽은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조와 절개를 기려 휴천면 강기슭의 동네를 한남마을로 부른다. 햇볕이 내리쬐는 산길 찔레·아카시아·개망초 꽃이 하얗고 40여 분 만에 산불감시 초소, 읍내가 한눈에 들어 찔레향기도 코를 찌른다.

한남군 묘 앞에서 한 잔 올리고

산길은 어느덧 소나무 사이 파란 대병 연못을 보여준다.

참 시원하다.

1시간 넘게 걸려 물레방앗간에 이르니 그야말로 사람의 공교로움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이다. 물레방아는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소개했는데 안의현감 시절 안심마을에 처음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점필재 차밭.
점필재 차밭.

초록을 한껏 자랑하는 상림 숲은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것.

당시 위천은 홍수피해가 심해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려 나무를 심었는데, 예전에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렀으며 아래쪽에 있던 하림은 없어지고 상림만 남아 천연기념물이 됐다.

20헥타르 규모에 수백여 종 식물이 자라서 마치 계곡의 천연자연을 연상시킨다. 때죽·이팝·노린재·층층나무 꽃이 만발하고 숲을 따르는 걸음이 가볍다.

약수터에서 물을 채워 최치원 신도비 앞에 잠시 한숨 돌린다. 사람주·개서어·나도밤·윤노리·병꽃나무…….

광장 주차장에서 큰 식당 중간 길을 올라 최치원 길, 상림 숲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2시간쯤 걸렸다.

상림 숲의 뱀을 보고 마음이 상한 어머니를 위해 최치원이 도술을 부려 이 숲에는 뱀이 없다고 전한다. 공원입구 생초 댁을 만나려다 함양초등학교 앞으로 간다. 학사루에는 역광이 비쳐 눈이 부신다.

여기는 당시 군수였던 김종직이 누각에 걸린 남원출신 유자광 편액을 내리면서 무오사화(戊午史禍)1)의 발단이 된 곳이다. 김종직 문하 사관(史官)으로 죽음을 당한 김일손이 나의 27대조다.

최치원이 누각에 자주 올랐다 하여 학사루라 불리었고 통일신라 때 지은 것이라 한다. 지방관들이 시를 짓고 심신을 달래던 곳으로 숙종 때 증축을 거쳐 70년대 후반 현재 위치로 옮겨지었다.

상림숲.
상림숲.
학사루.
학사루.
한남군 묘.
한남군 묘.

치원·김종직·김일손·정여창·박지원 등 선비들의 자취가 산천마다 햇볕처럼 내리쬐었던 함양. 경상우도 사림의 중심지였기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남은 영광이었던가?

그래서 권력은 늘 불안하다. 영원할 것 같지만 비참하게 사라지는 것. 복종과 지배를 위해 살아가는 도시의 전쟁터를 향해 달린다.

<주석>

1) 1498년(연산군 4)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禍)를 입은 사건. 사초(史草)가 발단이 된 첫 번째 사화이다.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탐방길

● 전체 6.5킬로미터, 5시간 30분 정도

문상마을 → (20분)임도길 → (40분)능선길 → (20분)법화산 정상 → (1시간*점심휴식포함) 오도재 조망지점 → (30분)전망바위 → (30분)임도 → (30분)백연동 → (30분)문상마을

* 함양 상림숲(최치원길 연계) 2시간 정도 걸음(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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