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초파일 3일 연휴가 되어선지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밀려 주차장이다.

성산 나들목에서 내려 국도길 합천 묘산쪽을 달리면서 낯선 절집으로 올라간다.

나지막한 산 아래 보상사(普祥寺), 평범한 사람들이 가기 좋은 곳, 절 입구에 정말 보통스러울 정도로 아늑하다.

칠성각에 기와를 얹었을 뿐, 슬레이트집에 부처를 모셨는데 대웅전이다.

연등 아래 촌부(村婦)들이 연신 굽실거리며 합장 한다. 공양간에는 사람들 몇 안 되지만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 무침을 곁들인 비빔밥이 시골 맛이다.

절 입구 난전.
절 입구 난전.
천연기념물 송악.
천연기념물 송악.

입구에 자리잡은 천연기념물 송악

절집을 나선 일행은 국도보다 못한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 장성, 고창으로 향한다.

두 시간쯤 왔으니 해는 서산에 걸렸고 고인돌휴게소다. 선운사 입구에 연등이 주렁주렁 달렸고 초파일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복분자, 산나물 파는 노점상이 줄줄이 난전1)을 폈는데 사투리가 정겹다.

“고창 복분자네요~.”

“머시(머위) 따서 솎은 것이여~”

“…….”

개울 건너 왼쪽으로 안내판이 선명한 천연기념물 송악이다.

상록활엽수 두릅나무과로 아무데나 잘 자라는 아이비, 사철나무 잎처럼 두껍다. 생육한계 지역이다. 소가 잘 먹는대서 소밥나무라 하고 줄기와 잎을 찧어 먹으면 각혈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절벽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뿌리를 내렸는데 신기한 듯 구경꾼들이 서 있다. 어떻게 바위꼭대기까지 바짝 올라갔을까?

구경하는 민망스런 치마들도 허벅지 위로 한껏 올라갔다. 골짜기를 끼고 층층나무 꽃들이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나그네는 더 이상 짧은 치마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천박한 하의실종은 무색해야 한다.

으스름 내리면서 초파일 연등이 물빛에 비쳐 일렁이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연등처럼 환하다.

애초에 부처는 자비를 베풀라 했거늘 너나없이 현세의 복을 구하고 있으니, 도대체 복이 얼마나 있어야 채워줄 수 있을까?

대웅전 아래 붉은 연등이 자비와 광명의 빛을 밝히고 절집은 더욱 경이롭다. 미끈한 배롱나무 가지에 걸린 붉은색 사각 등도 잘 어울린다.

사방으로 에워싼 산속에 검은 듯 붉은 색 물감이 번져가는 산사의 저녁은 한 폭의 동양화다. 합장한 그대들은 천 길을 달려온 고달픈 사슴들…….

저녁 공양간으로 따라가니 관광객 출입금지라 씌어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세속을 불문하고 마당에 나물밥을 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베푸는 것이 자비 아닌가?

“어따 겁나게 맛있어 버러~ 잉.”

“…….”

넉살좋은 일행이다.

배를 잡고 웃는데 한술 더 떠 김과 간장을 시켰다. 음식이 싱거운 이유는 간장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黔丹禪師)2)가 세웠다 전한다.

절터는 원래 큰 못이었는데 연못을 메우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숯을 부으면 씻은 듯 나았다. 너도나도 숯을 넣어 못을 메우고 절을 세우니, 절에서 소금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보답하기 위해 사람들은 소금을 바쳤는데 이때부터 보은염(報恩鹽)이라 했다.

소금이 좋아선지 오늘 먹는 간장 맛이 제일 좋다. 산사에 어둠이 더할수록 물빛에 연등은 아롱아롱 비친다.

저녁 8시경 심원면 소재지 갯가로 차를 몰고 나갔지만 잘 곳이 없다. 고창읍내까지 이리저리 헤매다 밤 10시 흥복마을 한적한 시골에 겨우 방을 잡았다.

길옆에서 만난 소나무.
길옆에서 만난 소나무.
선운사 숲길.
선운사 숲길.

아침 8시 산사를 비껴 숲 향기 따라 왼쪽으로 올라간다.

추사가 썼다는 부도 밭 백파선사의 비문을 뒤로하고 층층나무, 참나무 평평한 아름다운 숲길 따라 걷는다.

도솔 휴게소까지 20분, 도솔암이 여기서 2.3킬로미터. 벌레 한 마리 팔에 떨어져서 꿈틀거린다. 물소리와 목탁소리 어울려 좋은데 하필 차 다니는 길과 사람 다니는 길을 구분해서 보행자에게 빙글빙글 돌도록 했을까?

뒤에 따라오는 노신사 한 분이 “입장료 받으면서 도립공원 지정만 해 놓고 길 잘못 만들어 불편하게 한다.”고 투덜댄다.

지명 이름을 가진 600살 장사송(長沙松) 소나무가 보기 좋게 서 있는데 뒤로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하얀 바위굴(진흥굴)이다.

여기서부터 약간 오르막, 도솔암까지 뜨거운 햇빛이다.

한쪽으로 물러선 잘생긴 절 마당에 재(齋)3)를 올리려는지 행상과 만장 등 불구(佛具)4)를 옮기는 승려, 보살 모두 부산하게 움직인다.

암자 마당에서 물통을 채운다. 철원 심원사와 함께 이곳은 기도발 잘 받는 곳으로 지장기도5)를 하는 천도재(薦度齋)6)로 유명한 곳이다.

도솔암 옆으로 고려시대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붉은색 마애불을 만난다. 우람하고 도발적인 지방호족의 인상을 닮은 불상 명치에 검단이 쓴 비결을 넣었다는 감실이 보인다.

조선말 전라 관찰사 이서구가 감실을 여는 순간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는 글이 씌었다고 전한다.

비결은 동학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는데, 비결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 했다.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얼마나 시대가 혼란했으면 대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고창은 동학혁명의 시발지로 전봉준 장군과 손화중 대접주의 활동무대였다. 마애불 위쪽에 닫집7)인 보호누각 흔적을 볼 수 있다.

도발적인 마애불.
도발적인 마애불.
초파일 불구(佛具)
초파일 불구(佛具)
도솔천 오르는 길.
도솔천 오르는 길.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주석>

1) 난전(亂廛) : 임시로 벌여놓은 가게.

2) 백제 위덕왕(威德王 서기577년) 때 승려, 심산유곡 동굴에서 초근목피와 계곡물로 허기 달래며 수도에 정진. 검은 얼굴을 빗대(검을 검黔) 검단선사로 불렀다.

3) 명복을 비는 불공.

4) 부처 앞에 쓰는 온갖 제사 도구.

5)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에게 하는 기도.

6)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 49재, 100일재·소상·대상 등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7일째 되는 날부터 49일째까지 매 7일마다, 그리고 100일째, 1년째, 2년째 되는 날 모두 합해 10번 명부시왕에게 한 번씩 심판 받는다고 함. 특히 49재를 중요시하는 것은 명부시왕 중 지하 왕으로 알려진 염라대왕이 심판하는 날. 그래서 49재만큼은 꼭 치렀다.

7) 집의 처마 같은 구조물(고구려 벽화 머리 위 양산을 산개(傘蓋), 불교·힌두교 사원의 머리에 천으로 된 화려한 장식을 보개(寶蓋). 산개·보개가 건축화 되어 닫집으로 나타났다. 양산이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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