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
상가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에 올 때 가장 쉬운 베트남어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책에는 ‘베트남 문화는 한국 문화와 비슷하다.’ 그래서 ‘베트남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나온다.

베트남 문화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말이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리적 차이뿐 아니라, 기후와 환경 등 눈에 보이는 차별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과 베트남이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와 베트남은, 위치는 다르지만 각각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이어서 두 나라의 언어에는 유사한 어휘가 매우 많다. 당연히 중국의 유교문화도 두 나라에 깊숙이 녹아 있다.

여기에 더하여 20세기의 뼈아픈 역사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두 나라의 문화·역사의 공유를 바탕으로 하여 최근에는 경제 협력은 물론, 박항서 감독을 필두로 한 스포츠에서도 든든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길을 지나면서 가끔 베트남의 장례 의식을 볼 때가 있다. 바깥에서 상갓집 안이 다 들여다보이지는 않지만 잠시만 보아도 우리와 닮아 있고, 이방인으로서 신기하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장례는 동양과 서양이 다르고, 같은 나라라도 지역과 인종에 따라 다르다.

남북으로 1700km의 긴 국토를 가진 베트남의 장례 문화도 지역별로, 54개 민족별로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장례 문화는 어떤 공통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장례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입관을 마친후 고인에게 예를 표하는 가족들.
입관을 마친후 고인에게 예를 표하는 가족들.

베트남의 장례 문화와 절차

베트남의 장례 문화를 한번 살펴보면, 우리와 유사한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 일반 가정집이나 가게의 문 앞에 대형 텐트가 설치된 경우, 십중팔구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장면이 연출된다.

최근에는 아이의 돌잔치나 어르신들의 생일잔치도 대형 텐트 행사에 포함된다.

필자의 어릴 때를 기억해 보면, 한국에서도 마을에 혼사나 상가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흰색의 대형 천막이 쳐졌다. 이것도 부족하여 겨울철에는 잠시 비워둔 빈 돼지우리까지 방문객들이 차지하곤 했다.

한편, 베트남의 장례식 복장은 흰색과 검은 색의 두 개 색상이다. 붉은 혼례의 색은 번영과 행운을 나타낸다.

반면 흰색은 상실과 삶의 흐름을 표현한다. 슬픔에 싸인 가족은 흰색 옷과 흰색 두건을 쓴다. 친척들은 두건만 착용해도 된다. 문상객들은 가급적 검은 색 의상을 권하므로 가족과 문상객의 구분이 확연하다.

베트남에서 장례식에 사용하는 음식과 술, 음악은 고인에 대한 존경심에 비례한다고 믿는다. 부자일수록 장례식 절차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진다.

장례 의식에 더 많은 재물을 투입하여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부,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장례비 지출은 당연하게 여겼다.

묘지는 동양사회에서 신성을 표현하는 극상체로 생각되어 왔다. 남의 묘소를 비방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성시 된 묘소를 훼손하는 일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분노시키고, 훼손한 자는 성난 영혼의 보복을 당한다고 믿었다.

집안에서 나이 드신 분이 병으로 곧 돌아가실 것이라 예상하면 자식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통상적 상황이라면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병원에서 치료 중인 환자라도 운명을 예감하게 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집으로 가기를 원한다. 병원이나 집 바깥에서 운명하는 것을 객사(客死)라고 생각했다. 객사한 고인은 객귀(客鬼)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객귀는 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객사하기 전에 환자를 집으로 모시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병원 장례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2000년대 이전 우리의 사정과 흡사하다.

다민족 국가 베트남은 장례식 절차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편적인 절차는 다음의 여섯 가지로 구성된다.

장례 주관자가 고인을 문상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장례 주관자가 고인을 문상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킨다. 전문 장의사 주관으로 고인을 씻기는 행위가 이루어지는데, 그 후에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한다. 고인의 가슴 부위에 영혼을 지키는 작은 칼을 얹거나 바나나 송이를 올려놓기도 한다. 망자의 입에 쌀과 동전 3개를 넣어 저 세상에서 잘 살기를 염원한다.

둘째, 마을에 부고를 알린다. 장례는 가족, 친지의 의례이면서 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의례이다. 고인의 집과 가까운 거리에 깃발을 50~100m 간격으로 매달아 이웃에게 ‘우리 집에 사람이 죽었습니다.’라고 알린다.

셋째, 집으로 관을 들여온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를 냅콴(nhap quan)이라고 한다. 가족들도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흰 두건을 쓴다. 시신이 관에 안치되면 가족들은 원형으로 둘러서서 각 종교에 맞는 의식을 행한다.

넷째, 문상객을 맞는다. 문상객은 관속에 안치된 고인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문상객은 검은 옷을 입고, 꽃과 향초를 사들고 오기도 한다. 가족에게는 따로 부의금을 전한다. 문상을 마친 문상객은 상가에서 내온 음식과 차를 마시고, 가까운 친구들은 상가에 머물며 자기들이 도울 수 있는 일들을 돕는다.

다섯째, 장례 행렬이다. 3일째 되는 날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장례 행렬을 진행한다. 10명 중 4명은 관을 운구한다. 농촌에는 아직도 마을 주민들이 장례 도우미를 자청한다. 도시에는 장례대행사에 소속된 직원들이 통일된 복장을 입고 장례 도우미 활동을 한다.

운구차의 관이 놓인 곳은 대형 유리창으로 되어 사람들은 관을 볼 수 있다. 앞 선도 차량에는 가족 2명이 타고 그 뒤로 운구차가 따른다. 산소에 도착하여 매장 절차를 모두 마치면 망자와 관련된 옷, 화환 등은 모두 불태운다.

여섯째, 고인을 애도한다. 가족 위계상 고인의 위치에 따라 애도기간은 짧게는 며칠, 49일, 길게는 100일, 1년, 최대 3년 상을 치르기도 한다. 애도기간에는 가족의 결혼은 물론, 장례기간 중 결혼식 참석도 금기시된다. 애도기간이 끝나면 가족들이 입었던 상복도 모두 불태운다.

집에서 가족들이 고인에게 드리는 제의.
집에서 가족들이 고인에게 드리는 제의.

베트남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죽음의 의미

베트남 사회에서 죽음은 ‘이승에서의 자연스런 이별’과 ‘다음 세계에의 환생’으로 이해된다.

우선 임종을 앞둔 사람은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특별히 불교신자이거나, 특정한 종교가 없다면 대부분 불교식 예법을 따른다.

승려나 마을의 어른을 집으로 모셔 와서 기도를 해 줌으로써 환자가 평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환자 스스로도 곧 맞이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베트남 사람들은 뇌(육신)가 사망해도, 마음(영혼)은 얼마간 더 살아있다고 믿는다. 의학적 사망선고 이후라도 영혼은 좀 더 살아있으므로 고인이 승려나 장로의 기도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력자의 기도는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좋은 곳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rebirth) 도와주는 시간이다. 환자가 불교 신자라면 ‘영혼의 재생’(reincarnation)이 아니라, ‘윤회를 통한 육신의 환생’(rebirth)을 믿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에게 죽음이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삶이니 이 땅에서의 죽음이 두려운 것도, 안타까운 것도, 슬픈 일도 아니다.

장례 도우미를 선두로 장례 행렬 출발하고 있다.
장례 도우미를 선두로 장례 행렬 출발하고 있다.

남은 가족은 떠나는 이가 다른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최대한의 성의를 갖추어 예를 표하는 것은 남은 가족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장례 예법으로 굳어졌다.

죽음은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죽음 이후에 맞게 되는 새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고인은 ‘먼저 가신 분’이고 ‘가족들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분’이었다.

이렇듯 베트남 사람들에게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있었고, 다음 삶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죽음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이해는 우리 전통의 의식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불교와 유교의 오랜 문화적 기반을 공유한 때문일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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