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베이징대 낙방과 질병도 극복

위민훙 베이징신둥팡그룹 회장. [사진=베이징신둥팡그룹 보도자료]

【뉴스퀘스트=전순기 통신원】 영어는 지구촌 거의 모든 국가들의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과목으로 손꼽힌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면 인생이 본인들이 원하는 것처럼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너 나 할 것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나 영어사교육 시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잠재적 적국인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영어를 잘 가르치는 인기강사들은 돈방석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몰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절대로 걱정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아예 학원을 차려 잘 운영할 경우 엄청나게 큰 내수 시장 덕에 재벌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지금은 유수의 영어사교육 기업으로 성장한 베이징신둥팡(北京新東方)그룹의 위민훙(兪敏洪. 55) 회장은 바로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베이징신둥팡그룹 전경
베이징신둥팡그룹 본사 전경. [사진=베이징신둥팡그룹 보도자료]

오로지 영어 사교육 사업 아이템 하나로 당대발복(當代發福. 자신의 대에서 성공함)의 성공을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떡이 아니다.

엄청난 시련과 장애물들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한다.

대륙 중동부인 장쑤(江蘇)성의 소도시 장인(江陰)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 컸다.

미국에 유학, 크게 성공한 다음 세계적 인물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에는 그의 영어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다.

별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한 후 1978년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치른 베이징대학 입시에서 처참한 실패를 한 것은 거의 필연이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성적이 100점 만점에 고작 33점이었다.

다음 해에 치른 입시 역시 영어로 인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성적이 조금 좋아졌으나 55점에 불과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에 거의 올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80년 입시에서 93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연히 베이징대학 스페인어과에도 무난히 합격했다.

하지만 대학에 합격해서도 고난은 끊이지 않았다.

2학년 때 폐결핵을 앓으면서 휴학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병을 이겨낸 후 85년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어 미국 유학에 도전했다.

위민훙 베이징신둥팡그룹 회장.
위민훙 베이징신둥팡그룹 회장. [사진=베이징신둥팡그룹 보도자료]

안타깝게 이번에도 운명의 여신은 다시 그에게 좌절을 맛보게 했다.

미국이 중국 유학생 쿼터를 줄인 탓에 계획에 미국 유학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모교에 남아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동시에 돈을 벌 요량으로 학교 밖에서 영어 과외 교사 일도 병행했다.

학교에서 이런 그를 좋게 볼 까닭이 없었다.

1990년에 감봉조치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이때에도 역시 그는 은인자중한 후 이듬해에 독립을 감행했다.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부인과 베이징대학 근처의 허름한 가정집에서 본격적으로 과외 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3년에는 정식으로 학원도 열고 기업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현재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연히 26년여 기업을 운영하는 동안 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체득한 특유의 돌파력으로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 업체들인 웨이보(韋博) 등이 무리한 투자로 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나 그의 기업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가 세운 신둥팡 학원은 예비 유학생,직장인,학생 등에게 기존 학원들과는 차별화된 영어학습법으로 영어 교육의 전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컴퓨터업체인 렌샹과 합작,정보기술을 활용한 교육 사업에도 진출,
'중국 교육 사업의 지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둥팡 그룹은은 2006년 미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으로서의 위용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그 역시 2019년을 기준으로 재산 200억 위안(元. 3조4000억 원)의 부호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학원을 넘어 영어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단과대학을 설립한다는 젊은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은 채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 재산을 투입할 계획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노력과 돌파력으로 미뤄볼 때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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