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보다 수요 충격 때문에 물가하락...'일시적 현상'이라는 정부의견도 동의 못해

[사진=뉴스퀘스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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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박민석 기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동안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이 물가 변동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며, 통화 정책의 운용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실상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목표가 상충하는 한은의 통화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또 지난달 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 등 최근 발생한 물가 하락 현상은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연구위원)은 28일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 저물가 만성화 주요 원인은 기준금리 정책 때문

KDI는 보고서에서 2013년 이후 연간 물가상승률은 1%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한은이 저물가 현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가 지속적으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와 괴리되는 현상이 지속된 점은 통화정책이 물가변동에 충분히 대응하여 수행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며 "기준금리 결정을 통해 운용되는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이나 경기안정에 집중해서 운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질금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반대 방향으로 조정된 것이 통화정책이 물가와 경기 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2017년 이후 근원물가 상승률이 상당 기간 1% 내외로 정체되고 경기가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통화 당국은 되레 가계 부채 급증에 대응해 2018년 11월 말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금융안정을 명시적으로 삼고 있는 현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물가 상승률 하락을 기준금리 인하로 대처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다"며 "물가안정은 통화정책 이외의 정책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 낮은 물가 상승률은 공급보다 수요 충격 때문

정 연구위원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한 것은 공급 충격보다는 수요 충격이 더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저물가는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의 반영"이라는 한은의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 낮은 물가 상승률에 대해 일시적인 공급 측 요인도 있지만 수요 충격이 더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최근 저물가 현상에 대해 농산물 가격 하락과 석유류 가격 안정세 지속 등 공급 충격과 정책적 요인이 주로 작용했다고 밝힌 정부의 설명과 배치되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공급 충격이 주도한 경우는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반대 방향으로, 수요 충격이 주도한 경우에는 같은 방향으로 각각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올해 1~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4%)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0%)보다 큰 폭으로 낮아진 데 대해서는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특정 품목에 의해 주도됐다기보다 다수 품목에서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아졌던 물가 상승률 추세가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반등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낮은 물가 상승률을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의 반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정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가 급락하면서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에서 물가상승률 추세가 하락했으나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 상승률 추세도 점진적으로 반등해 각국의 물가안정목표 수준을 회복했다"며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었던 일본에서도 2013년부터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주요 정책인 적극적인 통화정책 운용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일부 반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 9월 사상 첫 공식 마이너스 물가 기록 등 최근의 물가 하락에 대해선 "일시적인 공급 충격이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고 물가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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