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으로 입사해 국내 부엌가구·인테리어 업계 1위로 일군 최장수 CEO

한샘 최양하 회장. [사진제공=한샘]
한샘 최양하 회장. [사진제공=한샘]

【뉴스퀘스트=최인호 기자】 "올해로 딱 칠십이다. 이제는 떠날 나이가 됐다. (앞으로) 내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들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

샐러리맨의 신화, 최장수 전문경영인(CEO), 국내 부엌 가구의 산증인, 이케아를 물리친 가구·인테리어 업계의 거목.

이 모든 수식어는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한샘의 최양하 회장이다.

그가 이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한샘에 입사한지 40년, 대표이사(전무)에 오른지 25년 만이다. 

최 회장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목공소 수준이었던 한샘을 매출 2조원대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자리매김 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사원으로 입사한 샐러리맨 신분이었음에도 철저한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일군 성과여서 더 큰 평가를 받는다.

31일 한샘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29일 임기 1년여를 앞두고 용퇴 의사를 밝혔다.

◇ '한샘은 공간을 파는 회사'...사고의 틀을 깨다

최 회장은 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우중공업에서 3년간 일한 그는 1979년 평사원으로 한샘에 입사한다.

안정된 직장인 대기업을 뿌리치고 설립 9년 밖에 안 된 소규모 가구 기업으로 이직한 셈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어려울수록 기회가 더 많다"고 말한다.

그는 입사 4년 만에 한샘 공장장에 오른다. 그러면서 엔지니어답게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

먼저 수작업 중심의 가구 제작 방식에 자동화 시설을 도입했다.

가구 설계에서 연필을 버린 것도 그였다. 한샘은 89년 건축 등 일부에서만 사용하던 프로그램인 캐드(CAD)를 부엌가구 설계에도 도입했다.

한샘 디자인파크 고양스타필드점. [사진제공=한샘]
한샘 디자인파크 고양스타필드점. [사진제공=한샘]

한샘을 창업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이런 최 회장을 눈여겨봤고 뛰어난 실적을 보이자 경영 전권을 맡겼다.

1994년 대표이사에 오른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파는 회사”라며 기존의 틀을 깼다. '침대가 아닌 침실을, 책상이 아닌 자녀방을 판매한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한샘만의 독자적 사업모델인 '리하우스 사업'으로 발전했다.

경쟁사는 소파와 옷장을 구분해 상품을 팔았지만, 한샘은 안방과 거실 등 거주 공간 중심으로 전시장을 꾸렸다.

효율과 단순화라는 그의 엔지니어 중심적 사고는 시장에서 먹혔다. 상담-설계-시공-애프터서비스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 공사 기간을 한 달에서 일주일로 줄였다.

◇ 가구공룡 이케아를 물리치다

지난 2014년 다국적 가구공룡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올 때 시장에서는 '한국 브랜드는 다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를 통해 이케아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전략의 차별 마케팅에 들어간 것.

이런 소신으로 가구업계가 이케아와 같은 방식으로 온라인 판매와 원가·비용 절감에 매진 할 때 거꾸로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최 회장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 한샘은 이케아와의 경쟁 속에서 오히려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

지난 10월 6일 한샘이 부산 영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개최한 한부모가정 인식개선행사. [사진제공=한샘]
지난 10월 6일 한샘이 부산 영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개최한 한부모가정 인식개선행사. [사진제공=한샘]

◇ '사람'에 최우선 가치...후배들에 시행착오 전수해 줄 것

"한샘은 가구를 파는 기업이 아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라는 게 최 회장의 지론이다. 그가 직원에 대한 투자와 애정을 아끼지 않은 이유다.

소탈한 리더십으로 공장장 시절에는 직접 야학을 열어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일화는 지금도 직원들 사이에 회자된다.

최근에는 임직원의 회사, 가정의 양립을 위한 '가고 싶은 회사, 머물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쏟았다.

한샘은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모성보호 제도를 도입 하는 등 업계 최고 수준의 가정 친화적 복지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지난해 사내 성범죄 사건으로 최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사회와 가치관이 변화했는데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최 회장은 퇴임 후에는 후배들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데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샘은 사실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라며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 번쯤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샘은 조만간 이회를 열어 최 회장의 뒤를 이을 전문경영인으로 강승수 부회장(54)을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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