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박민수 편집국장】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한국 사람들이 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소주다.

소주는 누가 뭐래도 필부필부 장삼이사, 서민을 대변하는 술이다.

또 우리들 고단한 삶을 달래주며 동고동락해 온 친구나 다름없다.

소주는 또 단순히 술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쏘주 한잔 하자’는 말은 곧 ‘너와 내가 소통과 이해의 시간’을 갖자는 뜻이다.

‘오해와 갈등을 풀고 싶다’는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걸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 소주는 여전히 서민들 삶에 녹아 있다.

소주는 홀짝이기보다 한 입에 탁 털어 넣어야 맛이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함과 쓴 맛은 소주 애호가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매력이다.

괴롭거나 고민을 상담할 때 소주를 마시는 경우가 절반에 가깝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맥주는 시원한 맛에 기분이 업(UP)돼 있을 때 마시기 적합하지만 소주는 조금 묵직한 주제를 논할 때 마시기 제격이다.

원래 소주는 오래전에 부자들만이 즐기던 값비싼 술이였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 고려 말 몽고족에 의해 한반도에 들어온 소주는 당시 곡식이 주원료였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일반 서민들로서는 곡식으로 만든 소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당연히 사회 지배계층이나 부자들만이 소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1965년 양곡 관리법 시행으로 소주 제조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면서 소주는 대중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고유의 맛과 향기를 지닌 증류식 순곡주 대신 희석식 소주가 등장한 것이다.

희석식 소주는 곡식 대신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의 원료로 만든 주정을 사용한다.

이때부터 소주는 서민들의 대표 술이자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소주는 설탕과 밀가루 등과 함께 전시동원품목으로도 지정돼 있을 만큼 중요한 전시동원 물자에 속한다.

국내 소주 산업은 2조원대 초반으로 추산된다.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듯 소주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대체재가 없어 지속가능 한 술이라는 점에서 다른 술과 차별화된다.

맥주는 외국산 수입 맥주와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주는 경우가 다르다.

주기적인 가격 인상에도 소비자들의 소비감소와 물량 저항은 통상 일시적인 현상에 머문다.

가격 인상 후 3-4개월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판매량이 제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매년 증가추세다.

여기에 소주 제조업체의 도수인하 노력도 소주의 지속가능성에 한몫하고 있다

사회는 갈수록 독해지고 삶은 해마다 팍팍해지는데 소주는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순해졌다.

이는 주류업체가 20~30대는 물론 여성고객 확대를 노린 전략의 일환이다.

아직도 일부 주당들은 ‘아줌마 여기 빨간 뚜껑 한병’을 찾지만 국내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참이슬은 도수가 17.2도에 불과하다.

과거 진로소주 25도에 비하면 소주라고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도수다.

최근 흥행몰이에 나선 진로이즈백은 16.9도까지 내려왔다.

주류제조업체의 알콜 도수 인하는 원가율 개선과 판매량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신한금융투자의 홍세종 연구원은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2번의 도수인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무작정 소주의 알콜 도수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소주라고 부르기엔 소주로서의 맛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도수를 낮춰 가뜩이나 약해빠진 소주를 상대로 최근 정부가 ‘소주병 연예인 사진 부착 금지’라는 생뚱맞은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관련 규정을 개정, 소주병에 연예인 사진을 부착하는 주류업체의 마케팅 활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연예인을 내세운 주류업체의 마케팅 활동이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1급 발암 물질로 분류돼 있는 담배와 술이 심각한 사회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사실이다.

현재 담뱃갑에는 혐오스런 사진을 부착해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반면에 같은 1급 발암물질인 소주병에는 금주 사진은 커녕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붙이는 것은 음주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담배와 술 모두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질병을 유발함에도 이들 둘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는 이유도 작동한다.

그러나 미모의 여자 연예인 사진이 붙어 있다고 해서 소주를 더 많이 마신다는 근거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당연히 일각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기 마련이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기업의 마케팅 활동을 이처럼 규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술을 마시게 되는 또 마실 수밖에 없는 사회 경제적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변죽만 울린다는 것이다.

속에 천불이 나는 서민들은 이제 수지와 효린이 아이린이 얼굴을 보면서 맘 편히 소주도 못 마시는 세상이 됐다.

그래도 서민들은 수지와 효린이 아이린의 사진이 소주병에 붙어 있지 않아도 여전히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삶을 이야기 할 것이다.

천원짜리 지폐 몇장이면 충분한 소주 만큼 가성비 좋은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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