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석태문 위원]
베트남에서 3월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화려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석태문 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여성은 베트남의 사회발전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여성의 권위가 높다면 그것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총원은 48명인데, 여직원이 31명이다.

여직원 비율이 전체 직원의 64.6%로 압도적이다. 다낭시청 공무원도 여성이 더 많다. 베트남 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여성 친화적 근무처인 것 같다. 한국의 유사 공공기관과 비교하더라도 베트남의 여성 비율은 압도적이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경제력도 높다.

베트남 여성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여성은 마음만 먹으면 일할 곳을 찾을 수 있다. 직장에 취직하거나 개인 가게도 낼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중 한 끼만 하는 이동식당을 개설하기도 한다.

아침식당은 보통 집의 1층 공간에서 연다. 점심과 저녁은 길거리 식당이 많다. 가져온 식재료를 다 팔고나면 가게를 접는다. 길거리 식당을 하는데 특별한 허가가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워낙 길거리 음식이 발달하다보니,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 되면 여성은 쉽게 거리창업을 한다.

당연히 여성들의 식사준비 부담도 적다. 동료 여직원은 시부모 집에서 같이 산다. 아침은 온 가족이 바깥에서 사먹는다. 점심은 시모가 준비하고, 저녁은 여직원이 준비한다. 부부공무원을 하는 여직원은 하루 세 끼를 다 바깥에서 사먹는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였으니, 가정식은 상대적으로 퇴보한 것일까. 가정식을 꼭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적다. 집밥을 중시하는 우리와 비해하면 베트남 여성의 식사준비 부담은 매우 적은 것이다.

물론, 베트남 여성들의 지위가 다 높은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볼 때 성평등(gender equality) 관점에서 여성은 여전히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 정년 차이, 여성이 가사의 중심이란 뿌리 깊은 관습 등은 대표적 차별이다.

베트남의 역사에는 고난과 핍박, 전쟁이 많았다. 남자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여성도 직접 참전하였고, 집안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워 냈다. 나라가 전쟁터였으니 여성도 남성 못잖은 수난을 겪었다. 베트남 여성은 고난기에 사회와 가족에게 존중받았다.

평화기에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이 떨어졌다. 베트남 여성의 자존감, 특별한 힘은 지금도 여전한가? 이런 의문들이 베트남 여성을 주목한 이유이다.

베트남 정부에서 지정한 여성의 날(10월20일)에 놓여진 축하 꽃다발. [사진=석태문 위원]
베트남 정부에서 지정한 여성의 날(10월20일)에 놓여진 축하 꽃다발. [사진=석태문 위원]

여성의 날이 두 번 있는 나라

다낭 생활 8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집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낭에 도착한 3월초를 생각해 본다. 살림에 요긴한 물품을 장만하려고 공유차량 그랩(grab)의 앱을 깔았다.

행선지만 기입하면 그랩을 이용해 시내 어디든 갈수 있다. 베트남 친구들과 한국인들은 롯데마트를 소개해 주었다. 가장 규모가 크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마침 그날이 여성의 날이었다. 마트 1층 로비에서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2개를 연결하고 그 위에 음식, 케이크, 꽃들을 차려 놓았다.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행사제목을 붙여 놓았지만 베트남에 도착한지 겨우 며칠이니, 베트남어가 까막눈이었다. ‘여성과 관련되는 행사를 하는구나.’ 하며 지나치려 하다가 호기심에 한번 물어보았다.

“혹, 이게 무슨 행사입니까?”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대답을 해준다. “네, 오늘은 국제 여성의 날입니다.”

국제 여성의 날이니, 한국에서도 이 날을 기념할 터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국제 여성의 날을 이날 처음 알았다. 관심이 없었던 탓이겠지만,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한국은 베트남처럼 거창하게 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국제 여성의 날은 여성이 존중받는 날이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는 날이다. 남편, 동료, 아들, 남친 등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수고와 활동에 감사를 표한다.

그랩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올 때, 시내 곳곳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꽃들이 보였다. 꽃다발을 파는 가게도 많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사에서는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하는 듯 여성에게 꽃다발을 주는 모습이 보였다.

베트남에는 여성의 날이 하나 더 있다. “아니, 한 나라에 뭔 여성의 날이 두 개나?” 10월 20일은 베트남 정부가 정한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무게로 보면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보다 이 날이 더 가치 있는 날이다. 다낭에 와서 1주일도 안된 시점에 맞은 국제 여성의 날이라서 잘 알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이 규모가 큰 축제였다.

‘베트남 여성의 날’은 ‘국제 여성의 날’보다 훨씬 꽃 선물을 많이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들은 엄마와 누나・여동생에게, 여친은 남친에게, 회사에서는 동료 여성에게 축하 꽃을 선물한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는 오찬과 음악이 곁들인 기념행사도 연다.

여성의 날에는 남자가 상대 여성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큰 이벤트이다. 만약 이날 남친이 여친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남친이 아니다.

베트남 친구도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선생님, 내일 꼭 사모님께 꽃 선물을 해 드리세요.” 한국에서 결혼초기 결혼기념일에 두 번 연속 꽃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받았으나, 두 번째는 아내가 화를 냈다.

“이 비싼 걸 왜, 쓸데없이.” 그렇게 공격 받은 후 아내에게 꽃 선물을 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 다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라니... 물론 아내의 성격을 아는지라 나는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 일로 화를 내지도 않았고, 농담으로라도 “당신, 꽃 안 사줘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내가 정말 꽃을 살지도 모르니.

[사진=석태문 위원]
야외에서 쌍쌍춤을 즐기는 베트남 부부들. [사진=석태문 위원]

역사에서도 여성은 힘이 강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인연이 많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들이 겪는 숙명이기도 했다. 베트남은 기원전이래로 천년 이상(기원전 111~서기 939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 역사에서 중국에 대한 베트남 여성들의 무력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베트남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윌리엄 털리(William S. Turley)는 “전통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부분적으로는 모계의 흔적”을 지녔다고 보았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가 베트남을 침공, 지배한 이래 베트남 최초의 저항운동은 서기 40년 쩡 쩌억(Trung Troc) 자매와 쩡 니(Trung Nhi) 세 여인이 주도한 독립투쟁이었다.

“적이 문 앞에 나타나면 여자는 싸우러 나갑니다.”

오래된 이 속담은 베트남 역사에서 침략한 적병에 대한 여성의 저항, 투쟁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가를 말한다.

쩡 쩌억 자매는 한나라에 항거할 때 8만 명의 병사들을 직접 양성했다. 비록 쩡 쩌억 자매의 대 중국 투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벗는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하였다.

중국의 베트남 지배기에 도입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제도는 베트남 사회에 가부장 질서를 확립하였다.

귀족 학교에는 남성만이 입학할 수 있었고, 과거시험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베트남 전통의 모계적 전통은 거의 해체되고, 부계 질서가 자리 잡았다.

돌아보면 고대 베트남 사회에서 애국심의 원천은 모계적 전통, 여성의 힘이었다. 여성이 공동체의 주체였고, 외적에게는 무력투쟁의 지휘자가 되었다.

고대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은 강했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현대 베트남 여성의 당당함, 강인한 생활력은 어쩌면 베트남 역사에서 강고하게 뿌리내렸던 모계적 전통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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