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장, 파업하는 노동자

코리안드림을 이룬 베트남 근로자 출신이 운영하는 한식당. [사진=석태문 위원]
코리안드림을 이룬 베트남 근로자 출신이 운영하는 한식당. [사진=석태문 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똑똑한 사람은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 티엣 씨가 그런 경우이다.

한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거주 비자까지 받은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에 사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버는 돈도 많지만 지출도 많아서 한국에서는 저축도 어렵고 상류층 도약도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경제의 미래가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하였다.

또한 그는, 베트남 경제가 언제까지 순항하리란 보장도 없다고 보았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베트남 경제가 지금처럼 성장하겠지만, 그 이후는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에 돌아가서 빠른 성장의 기류에 편성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베트남 경제도 속으로는 조금씩 곪고 있다. 북부 하이퐁 시, ‘카이야 베트남 의료회사’의 사장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만인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종업원 수가 2천5백 여 명이나 되는 큰 기업이다. 체불액이 약 463억 원(미화 3930만 달러)으로 엄청나다. 종업원들은 체금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지난 8월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실패한 외투기업에는 한국기업들도 많다. 남부 동나이성의 섬유업체들, 호치민의 의류업체, 다낭에도 섬유업을 하는 한국업체들이 임금 및 사회 보험료 체불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다낭 시는 2018년 10월말까지 기업체 1432개를 조사하였다.

사회보험, 건강보험, 실업 보험료 등 3개월 이상 미납 업체에서 총 86억7천6백만 원의 체납 사실을 확인했다.

경쟁력이 떨어진 외투기업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기업주, 관리자들이 모국으로 야반도주하는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남은 종업원들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파업을 전개하고 있다. 외투기업 중심의 임금 체불, 파업 등이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베트남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베트남 정부는 FDI를 촉진하기 위해 ‘외국인투자기업 유치 지원법’을 시행하고 있다. FDI로 베트남 경제가 고속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가 승인해준 외투기업에서 실패 사례가 나오면서 외투법의 맹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4일, 베트남노동조합총연맹(VGCL)과 국제노동기구(ILO)는 “사업자의 폐업, 파산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 보호에 관한 경험 공유”를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VGCL은 사회보험, 실업보험, 임금 체납 등 다양한 문제가 외투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10월 기준, 외투기업의 사회보험 체납액은 2.9억 달러, 체불임금 노동자 수는 6만 명이다. FDI 기업의 문제가 이 두 수치에 집약되어 있다. 워크숍에서는 FDI를 촉진・유치하는 기관인 기획투자청, 기업 활동 기간의 세무당국, 사회보험기관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기관간의 약한 연결고리 때문에 외투기업의 부정이나 실패사례가 정부 기관 간에 전혀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외투기업이 탈법적 상황을 저지르고, 기업경영에 실패하더라도 가벼운 처벌만 받고 끝나게 되어있다. 모든 불이익은 베트남 노동자가 받게 된다는 것이다. FDI의 긍정성 이면의 그림자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적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환경문제도 앞으로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환경친화적 외투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물간 낮은 수준의 기술과 장비를 투자하는 외투기업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 기업은 베트남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베트남을 기술적 쓰레기 매립장화하여 대외 이미지를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공정한 노동을 위한 제도 장치

베트남 경제가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주류화해야 한다. 중산층의 긍정적 파급효과는 이들의 높은 소비 선호도에서 확인되었다.

경제발전의 과실을 어떻게 하면 중산층이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할 것인가에 정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제시한 네 가지는 공정 노동을 위한 제도적 보완 장치라고 생각된다.

첫째, 부패와의 전쟁 선포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해 10월 권력서열 1, 2위인 응우엔 푸 쭝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취임하면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기업 탈세, 공무원 비리 단죄를 위한 부패 청산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다. 벌써 60여명의 고위 공직자가 징계를 받았다. 공공분야 부패, 권력-부의 유착, 빈부격차 확산, 중산층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척결하고 있다.

둘째, 외국인 투자기업 관리의 대폭 강화이다. VGCL은 외투 기업주의 야반도주 방지를 위해 ‘외국인의 출국·입국 관리법’ 개정을 요구하였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주의 베트남 출국을 금지하는 조항 추가는 공정 노동 관행을 가져올 것이다.

셋째, 지방정부에 의해 경영 위기를 맞은 기업을 조기 확인하고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다낭시가 2018년 12월 수립한 ‘기업주들의 사회보험료 미납방지 대책’이 핵심내용이다. 외투기업이 사회보험료를 3개월 체납하면 주무부서인 노동원호사회국은 자동적으로 해당기업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노동법 준수 여부, 사회 보험료 체납 사유 등을 조사한 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사법기관(경찰, 검찰)에 의뢰한다. 중앙정부 정책으로 확대 추진하면 공정 노동 관행이 단기에 정착될 것이다.

넷째, 노동시간 균등화를 위한 법제화이다. 베트남의 노동시간은 공공부문 주 40시간(월~금, 8시간), 민간부문 주 48시간(월~토, 8시간)이다. 한국인의 감각으론 이러한 차이가 이해가 안 되지만 베트남에서는 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노동시간 불균등을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 국회가 나섰다.

지난 10월에 시작된 국회의 노동시간 개혁 작업은 민간부문 노동시간을 4시간 줄이는 선에서 검토되고 있다. 입법화가 되어도 민간은 공공부문 보다 여전히 4시간이 많다. 민간부문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속도조절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노동시간 균형화가 실현될 것이다.

마무리–노동과 기업의 공존을 위하여

노임전쟁에서 패한 기업들은 시장을 옮겨 다닌다. 노임을 쫓는 기업은 단기이익에만 매몰되어 장기이익은 등한시한다. 저임금 선호 기업들은 과연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우문현답과 같은 Q&A를 보자. ‘자본주의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란 터무니없는 질문에 현명한 답은 이렇다. “아프리카 시장까지 한국과 같은 임금수준이 되면 자본주의는 끝난다.” 간명하지만 시사점이 있다.

인건비가 경쟁력의 원천인 기업은 더 싼 시장으로 이동한다. 기업규모가 작든 크든, 노임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은 낮은 인건비가 기업의 존립 조건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동할 곳이 없는 아프리카까지 갔다면, 그리고 그곳의 인건비가 한국시장과 같아진다면 그 기업은 이동을 멈추고, 사라질 것이다. 모든 기업이 이런 행태라면 자본주의는 쇠퇴하거나 다른 경제시스템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상당수 외투기업은 낮은 인건비가 첫 유인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환경적, 사회적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시민도, 노동자도 기업과의 공존을 요구한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지원과 더불어 노동자와 기업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투기업도 베트남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기업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터를 잡은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기업경영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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