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노니는 곳

이인문作 '선동전다도', 18세기후반, 지본채색, 31.0X41.2cm, 간송미술관.
이인문作 '선동전다도', 18세기후반, 지본채색, 31.0X41.2cm, 간송미술관.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조선 후기 다화에서는 오로지 차 달이는 장면만을 주요 제재로 삼아 묘사한 작품이 등장한다. 이러한 유형은 조선 후기 이전의 시기에서도,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조선 후기 이인문(李寅文)의 <선동전다도(仙童煎茶圖)>이다. 이 작품은 《한중청상첩(閒中淸賞帖)》에 장첩되어 있다.

<선동전다도>는 바위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배경으로 장송(長松) 아래에서 더벅머리를 한 선동(仙童), 즉 다동이 있다.

그가 다로(茶爐) 앞에 앉아 찻물을 끓이며 부채질하고 있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 것이다. 다로 위에는 탕관이 얹혀 있고 다동의 바로 옆에는 선경(仙經)으로 보이는 두루마리 뭉치와 사슴 한 마리가 함께 있다.

소나무 아래에 있는 영지와 사슴의 도상을 통해서 신선세계[仙界]를 표현했다. 또한 장수의 상징성을 가지는 소나무는 신선사상과 적합한 소재였으므로, 소나무가 신선세계임을 강조하는 제재로써의 역할을 했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다동과 풍로, 탕관은 이인문의 다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양식이다. 풍로의 전체 표면은 가로 줄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입구는 C형이며, 탕관은 주구가 위로 높이 솟은 제량호이다. 더벅머리인 다동은 단선을 들고 풍로 앞에 앉아 있다.

같은 화첩에 장첩된 <서원아집도>의 풍로 및 다동과도 같다. 그 밖의 그의 다른 다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신선과 차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작품의 제목이 <선동전다도>인 이유를 살펴보자. 화면의 좌측에는 홍의영이 쓴 제시가 있다.

“너와 사슴이 다함께 잠들면, 약 달이는 불길이 시간을 넘기리라(汝與鹿俱眠 缿藥之火候過時).”

이 제시는 선약(仙藥)을 달인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약(藥)’은 ‘차(茶)’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부터 도교에서 지향하는 불로장생의 단약(丹藥)을 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차를 마심으로써 불로장생을 꿈꾸는 신선사상이 이 그림에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제시에 써진 ‘약’은 ‘차’를 달이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약을 차로 해석할 수 있는 문헌적인 근거는 차가 약리적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수문제(隋文帝, 581~600)는 태자 때, 꿈에 귀신이 그의 뇌를 바꾸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팠는데, 그 때 한 승려가 말하기를 산 속에 차나무를 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한 후에 차를 복용하고 병을 고쳤다(意恂, 『東茶頌』, “隋文帝微時夢神易其腦骨自爾而病忽遇一僧云 山中茗草可治帝服之可治於時天下始知飮茶”)고 한다.

수문제의 아픈 머리를 낫게 한 승려의 처방은 차가 머리를 맑게 한다는 약리를 응용했던 당시의 차의 활용법이었다.

약리적인 효능이 도교의 신선사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도홍경(陶弘景, 456~536)의 『잡록(雜錄)』 에는 “차는 몸을 가볍게 하고, 뼈마저 바꾼 느낌을 주며 옛날에 단구자 · 황산군 등 선인(仙人)들이 이를 즐겨마셨다.(陸羽, 『茶經』 「七之事」, 陶弘景雜錄 苦茶輕身換骨 昔丹丘子黃山君服之)”고 하여 차는 오래전부터 신선[仙人]들이 즐겨 마신 음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육체적인 시원함은 결국 정신적인 시원함으로 이어진다. 육우(陸羽, 733~804)는 『다경(茶經)』에서 “차의 효용은 … 만약 열이 나고 갈증이 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침침하거나 팔다리에 기운이 없고 관절 마디마디가 잘 펴지지 않을 때, 4~5번만 마시면 (그 효능이) 제호나 감로와 가히 견줄만하다.(陸羽, 『茶經』 「一之源」, 茶之爲用, … 若熱渴凝悶腦疼目澀四支煩百節不舒, 聊四五啜, 與醍醐甘露抗衡也)”라고 하여, 차의 효용이란 해갈을 시켜주고 응체된 가슴을 풀어주고 아픈 머리를 상쾌하게 해주며 침침한 눈을 맑게 해주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함은혜 연구원
함은혜 연구원

위의 기록들에서 볼 수 있듯이, 차를 통해서 속진(俗塵)을 떨쳐내고 신선세계의 자유로움과 담박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차를 일종의 선약(仙藥)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선동전다도>에서 비록 신선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선동, 소나무, 사슴, 선경 등의 소재들을 통해서 신선이 함께 있는 듯한 장소를 조성하였고 신선이 노니는 곳의 분위기를 선동이 찻물을 끓이는 장면을 통해 더욱 심화시켜주고 있다. 차를 마심으로써 신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당시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차를 마시면서 세상의 근심은 잠시 내려놓고 깊은 산속 신선이 되어 정신이 자유롭게 노니는 것을 느껴보자.

참고문헌

박동춘, 「草衣禪師의 茶文化觀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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