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불완전 판매' 책임 물어...6개 은행에 "15~41% 배상하라" 결정

지난해 4월 키코공동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키코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퀘스트DB]
지난해 4월 키코공동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키코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퀘스트DB]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금융당국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를 판매한 은행들에게 가입한 기업들의 손실액 15~41%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08년 키코(KIKO) 사태가 발생한 지 11년 만에 사실상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배상 결정은 강제성이 없는데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난 상태여서 은행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이를 수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 '불완전 판매'에 따른 배상책임 인정

금융감독원은 13일 전일 열린 키코 상품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결과 발표 브리핑을 열고 배상 비율 등을 발표했다.

이번에 조정대상은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기업 4곳과 이들이 가입한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 6곳이다.

기업별 배상 비율은 2곳에 각각 15%, 나머지 2곳은 20%와 41%로 평균 23%다.

분조위는 은행들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판매 은행들이 계약 체결 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 헤지 계약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를 권유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특히 환율 기준 이상으로 오르면 무제한 손실 가능성이 예상되는데도 이런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설명 의무'도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이에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위반에 적용되는 30%를 기준으로 당사자 간 계약 개별 사정을 감안해 최종 배상 비율이 정해졌다.

4개 업체는 그동안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이번 분쟁조정 대상이 됐다. 이들 업체의 피해액은 모두 1500억원가량이다.

분조위 결정에 따른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이다.

[자료=금감원]
[자료=금감원]

◇ 키코 사태란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을 정해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한다면 미리 정한 약정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반면 환율이 상한 이상으로 오르게 되면 약정액의 1~2배를 같은 고정환율에 매도해야 한다는 옵션이 붙고,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해지되어 환 손실을 입는 상품이다.

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위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의 환율이 급등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이에 당시 100여 개 기업으로 구성된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키코 공대위)가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이어졌다.

이후 5년간의 법적 다툼은 2013년 대법원은 키코가 환 헤지 목적의 정상상품이라며 피해 책임은 원칙적으로 가입자가 져야 한다고 확정 판결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다만 대법원은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인정했다.

[자료=금감원]
[자료=금감원]

◇ '강제성 없는 결정'...은행 수용 놓고 딜레마

그러나 이번 분조위의 배상 결정이 이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분조위의 배상 결정은 강제성이 없어 양측이 모두 받아들여야 효력을 갖는데다, 이미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인 10년이 지난 상태여서 은행의 배상안 수용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이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상황에서 배상하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어 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대해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 정성웅 부원장보는 "대법원판결 이후 은행들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유사 피해기업들의 구제에서 고객보호 의무를 다하는 데 미흡했다"며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가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금융소비자 보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이번 배상 결정을 이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배상 결정을 받은 4개 업체 외에 분쟁조정을 기다리는 기업도 150곳에 이른다.

금감원은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선 이번 분쟁조정 결과를 토대로 은행에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의뢰하겠다는 방침이다. 키코 공대위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는 상태다.

한편 이번 분쟁조정 결정은 지난해 7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취임과 동시에 금감원이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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