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박민수 편집국장】 전임 추천(鞦韆, 그네)왕의 국정농단 헛발질 덕분에 월(moon)왕이 보위에 올랐다.

천하의 성군임을 자처한 월왕은 ‘평등과 공정, 정의’를 외치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성들은 환호했고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기대했다.

월왕은 이어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온 나라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나라를 좀 먹어온 부조리와 폐단을 뿌리까지 뽑아내야 진정으로 깨끗한 나라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백성들까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적폐청산만이 살길인 양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월왕을 소리높여 칭송했다.

월왕이 천하를 통치한지 1년째 되는 어느 날, 백성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복을 입고 야간 잠행에 나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느 거리에서나 월왕에게 이 사자성어를 들려줬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백성들은 월왕이 새로이 천하를 다스리게 된 만큼 과거의 사악함이 척결되면 새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바로 이것이야’ 월왕은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야 말로 월왕이 목표하고 추구했던 이상적인 세상이었다.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상위 개념의 정치가 먹혀든 셈이었다.

월왕은 보위에 오른 지 2년만에 다시 민심을 살피러 야간잠행에 나섰다.

그런데 모든 백성들이 적폐청산의 과업 완수로 너도 나도 행복할 걸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백성들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입에 달고 있었다.

‘임중도원’, 어깨의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적폐청산까지는 좋았지만 먹고사는 게 갈수록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이었다.

월왕은 지금의 어려움은 전임자가 저질러놓은 실정으로 인한 것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며 백성들을 다독였다.

순하디 순한, 착한디 착한 백성들은 월왕의 이야기만 믿고 묵묵히 생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월왕이 천하를 다스린 지 3년째가 지난 어느 날, 월왕은 아예 공개적으로 백성들을 불러 모아 민심을 듣기로 했다.

이번에는 백성들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을까?

‘공명지조(共命之鳥)

공명조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상상 속의 새로 글자 그대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다.

이 공명조는 한 쪽 머리가 죽으면, 다른 머리도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 따르면 이 새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고 한다.

낮에 일어난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밤에 일어나는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가졌다.

밤에 일어나는 머리는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낮에 일어난 머리에게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였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됐다는 이야기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집단인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2001년부터 세밑마다 사자성어로 풀어내 한해를 정리한다.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우리 한국사회의 상황을 압축해 놓은 상징적인 말로 모든 매체가 다 이를 보도한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우리사회의 궤적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고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는 특히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격화되고 그것이 공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상황인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교수들의 눈에 비쳐진 우리 사회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난 2001년부터 2018년까지 교수신문이 선정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살펴봤다.

2001년 五里霧中(오리무중)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해 알 길이 없음.

2002년 離合集散(이합집산)

헤어진 무리가 다시 모이고, 모였던 무리가 다시 흩어지는 모습.

2003년 右往左往(우왕좌왕)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종잡지 못함.

2004년 黨同伐異(당동벌이)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배격하는 것.

2005년 上火下澤(상화하택)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 불이 위에 놓이고 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들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

2006년 密雲不雨(밀운불우)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

2007년 自欺欺人(자기기인)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임,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

2008년 護疾忌醫(호질기의)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음,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음

2009년 旁岐曲逕(방기곡경)

샛길과 굽은 길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

2010년 藏頭露尾(장두노미)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는 드러나 있음. 진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음.

2011년 掩耳盜鐘(엄이도종)

귀를 막고 종을 친다.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

2012년 擧世混濁(거세혼탁)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 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들다.

2013년 倒行逆施(도행역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꽤하는 것.

2014년 指鹿爲馬(지록위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일컫는다. 일부러 옳고 그름을 바꾼다.

2015년 昏庸無道(혼용무도)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

2016년 君舟民水(군주민수)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지난 20년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밝고 긍정적이기 보다는 한결 같이 부정적이고 걱정스러우며 우울한 우리의 사회상을 전달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하나가 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날카롭기만 한 정국 변화를 콕 찌르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 이래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과 같은 갈등과 반목은 늘 있어왔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갈등과 반목은 정치에 그 책임이 있다.

정치가 민주냐 공산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더니 이어 영호남으로 지역을 갈라놓고 이제는 보수냐 진보냐를 놓고 남녀노소 구분없이 국민들을 갈라놓았다.

정치인들이야 권불십년이 두려워 백년집권을 향해 무슨 짓이든 한다지만 국민들까지 이들과 함께 편싸움에 동조, 서로 삿대질에 여념이 없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작금의 정치는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 반목과 질시를 해결하려는 과정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고 심화함으로써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술에 불과하다.

월왕이 등극한지 3년차,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서 어느 것 하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경제기조는 구호에 머물러 있다.

백성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치와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한 상황이다.

‘무엇이 물고기 눈이고 무엇이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어목혼주 魚目混珠)’,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분간하기 힘든 혼돈의 시대다.

결국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백성의 힘이다.

그래서 내년 총선이 중요하다.

백성들이 배불리 잘먹고 잘 사는 일만큼 중요한 건 없다.

백성들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요원한 것인가?

부디 202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고복격양(鼓腹擊壤)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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