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향기 가득한 일곱 현인들의 모임

조석진, 죽림칠현도, 조선말기, 견본담채, 147x41cm, 개인
조석진作 '죽림칠현도', 조선말기, 견본담채, 147x41cm, 개인 소장.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울창한 대나무 숲 속에서 모임이 한창이다.

홀로 피리를 부는 이와 그 곁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술 마시는 이, 이제는 그만 마시려는 듯 시동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는 이, 좋은 시를 감상하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보인다.

그들 주변에는 붓과 벼루, 그리고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또 다른 이는 거문고를 안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이렇게 7명의 은사(隱士)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한편, 그들 사이에서 부채질하는 손길이 바쁜 한 아이가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풍로와 그 위에 차 주전자가 보인다.

찻물 끓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찻물을 오래 끓이거나 덜 끓이게 되면 차의 색·향·미를 온전히 담을 수가 없다고 하여, 예부터 찻물 끓이는 것은 차를 다루는데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다동의 노력일까. 벌써 대나무 숲에 차 향기가 가득 퍼진 듯하다. 이 평화로운 장면은 조선 말기 화원화가 조석진(趙錫晋, 1853~1920)이 그린 <죽림칠현도>이다.

화면 전체를 메운 대나무는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임의 특징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림 상단 우측에 ‘竹林七賢’이라는 화제(畵題)가 있다. 이는 대나무 숲에 7명의 현인(賢人)이란 의미다.

죽림칠현은 위진(魏晉) 왕조 교체기에 살았던 대표적인 은일집단으로, 산도(山濤, 205~283), 완적(阮籍, 210~283), 혜강(嵇康, 223~262), 유령(劉伶, 221~300?), 왕융(王戎, 234~305), 향수(向秀, 221~281?), 완함(阮咸, ?~?)까지 7인을 일컫는다.

이 모임에 대해서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드물어서, 오늘날 연구에서도 모임의 실존여부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다만,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죽림칠현’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세설신어』는 남북조 시대의 송나라 사람 유의경(劉義慶, 403~444)이 편찬한 책으로,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실존했던 인물들의 일화들이 주제별로 엮어져 있는데, 그 중 「임탄(任誕)」편에 죽림칠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 7인은 늘 죽림에 모여 마음껏 즐기며 술을 마셨다.

이를 세상에서는 죽림칠현이라 칭하였다.

… 七人常集于竹林之下, 肆意酣暢, 故世謂竹林七賢.

대숲에 모여 술을 마시며 노닐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정권이 바뀌면서 많은 갈등과 투쟁이 일어났던 사회· 정치적인 혼란기였다.

이때 7인의 인물들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죽림에 들어가 청담(淸談)하며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대나무 숲에서 이루어진 7인들의 모임은 상징적으로 관념화되어, 고려시대에도 이들의 속되지 않은 모임을 지향하며 이인로(李仁老, 1152~1220), 임춘(林椿, ?~?), 오세재(吳世才, 1133~?), 조통(趙通, ?~?), 황보항(黃甫沆, ?~?), 함순(咸淳, ?~?), 이담지(李湛之, ?~?)이 죽고칠현(竹高七賢)이란 모임을 형성하였다.

죽림은 어지러운 속세와 멀리 떨어진 장소로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어졌다. 여기서 대나무는 곧게 뻗어서 자라는 생태적 특성상 고결하고 굳건한 의지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은일지사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인격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거처하는 곳 주변에 대나무를 심거나, 대나무 숲에서 초옥을 짓고 은거하는 것은 내면을 늘 단련하고,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고자 한 결심에 따른 행동이었다.

최혜인 연구원.
최혜인 연구원.

보통 죽림칠현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7인이 각자 유유자적하는 모습과 주변에 술잔, 술동이가 그려진다. 이것이 공통적인 양식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조석진의 <죽림칠현도>에서는 술을 준비하는 시동과 함께 차를 준비하는 다동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곱 현인들의 모임에 차를 추가하였다는 것은 화가(혹은 주문자)가 맑은 세계를 지향하는 차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차 달이는 다동은 죽림칠현이 구현하고자 한“정신적 맑음과 청정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역할”로서 그려진 것이다. 대나무 숲에 퍼진 차 향기를 맡으며 이 <죽림칠현도>를 감상해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馬華·陳正宏 著, 강경범·천현경 譯, 『中國隱士文化』, 東文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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