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노인들의 모임

김홍도作 '장조평도', 십로도상첩, 1790, 지본수묵, 33.5X38.7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김홍도作 '장조평도', 십로도상첩, 1790, 지본수묵, 33.5X38.7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한 노인이 소나무 아래에 앉아 그의 앞 쪽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두 여인을 보고 있다.

이 두 여인 중 한 명은 그릇을 들고 서 있고, 다른 한 명은 찻물이 끓길 기다리며 앉아 있다. 이 여인들을 보고 있는 그는 누구인가.

그는 1790년에 그린 김홍도(金弘道)의 《십로도상첩(十老圖像帖)》의 마지막 장면인 <장조평도(張肇平圖)>의 장조평이다. 장조평(張肇平, 1429~1501)의 본관은 흥성(興城), 자(字)는 자형(子衡), 호(號)는 돈암(遯菴)이다.

전라도 남원에서 출생하고 나주에서 살았으며, 단종(端宗, 재위 1452~1455) 폐위 후 은거하다가 순창의 추산에서 별세하였다. 장조평은 신말주가 주재한 모임의 노인들 중 한 명이다.

이 화첩은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여암유고(旅菴遺稿)』 권5의 「십로계축후서(十老契軸後敍)」에 나타난다. 내용에 따르면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동생이자 조선 초기의 문인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은퇴하고서 전라도 순창에 귀래정(歸來亭)을 지었다.

그곳에서 그의 나이 71세인 1499년에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와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의 고사(故事)를 따라 근방의 9명의 노인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다.

그럼 이 향산구로회와 낙양기영회를 알아보자. 향산구로회는 당대(唐代) 백거이(白居易)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향산(香山)으로 귀거래하여 친분이 있는 노인들과 결성한 기로회(耆老會)이다.

당시 연호(845년)인 회창(會昌)을 따서 “회창구로(會昌九老)”나, 장소에 따라 “향산구로(香山九老)”, “낙중구로(洛中九老)”라고 불렀으며 단순히 “구로(九老)”라고도 하였다. 이 모임은 사회적 지위와 성공에서 벗어나 순수한 친교를 목적으로 한 최초의 기로회로, 이후 모든 기로회와 많은 모임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는 송대(宋代) 문언박(文彦博)이 백거이의 향산구로회를 모방하여 당시 늙고 명망 있는 사대부 11명과 함께 술을 즐기고 나이를 숭상하기 위해 결성한 기영회(耆英會)이다. 이 두 모임을 모범으로 삼아 만든 것이 바로 신말주의 노인들의 모임이다.

전 신말주, 십로계축 부분, 15세기, 지본설색, 38.9X208.0cm(전체), 삼성미술관 리움.
전 신말주, 십로계축 부분, 15세기, 지본설색, 38.9X208.0cm(전체), 삼성미술관 리움.

신말주의 전칭작으로 알려진 <십로계축(十老契軸)>은 신말주를 포함한 10명의 기로들이 모임을 갖게 된 이유와 모임의 특성, 그림을 남기게 된 배경 등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했다.

이 노인들은 자신들의 모임과 그 뜻을 기념하고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어 축(軸)으로 만들었고, 각 집에 한 본씩 나누어 가졌다. 그들의 모임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어서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모범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후 이 화축은 임진왜란을 거쳐 대부분 없어졌으나, 축 한 벌이 신말주의 10대손인 신상렴(申尙濂)에게 전해졌다. 그의 아들인 신경준은 이 <십로계축>의 종이와 색이 바래서 그림을 후대에 전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에게 글을, 당시 찰방(察訪)이었던 김홍도에게 그림을 부탁하여 화첩을 제작하였다.

이 화첩이 바로 《십로도상첩》이다.

이 《십로도상첩》은 사제지간인 두 사람의 마지막 합작품이므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강세황이 쓴 서문을 살펴보자.

“귀래 신말주 선생이 홍치 기미년인 1499년에 같은 고향 노인 아홉 명과 모이기로 약속하고서는 향산(香山)과 낙사(洛社)의 일을 모방하기로 하였다. 서문을 짓고 또 아홉 노인과 자신의 화상을 그려 한 축을 만들었다. 선생의 후선인 상렴(尙濂)이 직접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홍치 기미년은 지금부터 292년 전이다. 그 글을 읽고 그 그림을 펼치니 눈앞에 선하게도 어제 일 같았다. 이는 태평한 시대의 아름다운 일이며 노인 세계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후손이 지금까지 보관하여 대대로 완상하는 것 또한 드물고 기이한 일이다.…(하략) - 1790년 8월 24일. 진산(晉山) 강세황(姜世晃) 삼가 씀.”

“申歸來亭先生 於弘治己未 約會洞鄕九老人 倣香山洛社之遺事. 作序文 且圖繪九老與 自己之像 爲一軸. 先生之後孫尙濂氏 袖以示余. 盖弘治己未 距今爲二百九十二矣. 讀其 文 披其畵 宛然若昨日事. 此乃昇平之美事 壽城之佳話. 其後孫之尙今保有傳玩 亦是稀 異之事.…”

강세황과 그의 제자 김홍도는 ‘10명의 노인이 추구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구현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이 그림 속의 모임을 주재한 신말주는 같은 마을의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설산옥(薛山玉), 장조평(張肇平) 등 9명의 노인을 초청해 함께 계회를 열었고, 이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총 10명의 노인들은 각각 단독으로 풍류를 즐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십로도상첩》의 마지막 장면인 <장조평도>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차를 준비하는 장면’ 때문이다. 이 장면은 김홍도만의 재해석이 드러나 있다.

전 신말주의 <십로계축>의 장조평 부분과 비교해보자. 두 작품 모두 좌측에 소나무와 기물들이 놓여있는 상, 두 명의 여인들과 중심인물인 장조평의 배치와 구도는 유사하다.

여기서 두 작품의 차이점은, 상 위의 기물들과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전 신말주의 작품에는 소나무 아래 상 위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기물들이 빽빽하게 놓여있고, 화면의 아랫부분에 있는 여인은 술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김홍도의 작품에는 백자인 듯 보이는 기물들이 소슬하게 놓여있고, 앉아있는 여인은 찻물을 끓이고 있다.

위와 같은 점들은 김홍도가 원본을 훼손시키지 않되 그만의 시대적인 해석으로 표현하였다. 김홍도의 여러 차 그림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찻물을 준비하는 장면은 조선 후기 당시 차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인식의 확대와 함께 그의 취향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신말주 주재의 모임의 가치와 분위기를 한층 향상시키기 위해서 차를 등장시킨 것이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실물상이 아닌 고전상이다. 이는 모임의 지향점이 향산구로회와 낙양기영회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김홍도의 《십로도상첩》 <장조평도>는 고사(故事)의 모임들을 모범으로 삼고 ‘차를 준비하는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고아한 모임’이라는 상징성을 강조하려는 김홍도의 재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다.

함은혜 연구원

아마도 김홍도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풍경이 아니었을까. 덕분에 우리는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10명의 노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김홍도가 <장조평도>의 소나무 옆에 ‘금릉(金陵)의 김홍도가 공경하는 자세로 그리다’라고 쓴 것에서 그가 선인(先人)의 뜻을 귀히 여기면서 정성껏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김홍도는 이 노인들의 모임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정성스럽게 표현했으니, 신말주와 9명 노인들의 뜻과 의도가 잘 전해진 것이다.

요즘 나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차를 함께 즐기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역사 속의 모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지속적인 모임들을 통해서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차와 함께 만들어 가보는 건 어떨까.

* 참고문헌

변영섭, 『표암 강세황 회화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

오민주, 「朝鮮時代 耆老會圖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협동과정 석사학위논문, 2009)

임재환 譯註, 삼성미술관 Leeum 고미술 학예연구실 편,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古書畵 題跋 解說集』 (삼성미술관 리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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