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빈컴플라자 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석태문 위원]
베트남 빈컴플라자 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석태문 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의 인구는 2018년 7월 기준으로 9704만 명을 넘어섰다.

14세 이하 어린이 인구는 전체의 23.3%로 2258만 명이다. 베트남은 어디를 가든 어린이가 넘쳐난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어린이를 위한 부모와 사회의 관심도 흘러넘친다.

오랜 두 자녀정책으로 여성 한 명이 낳는 출생아의 수는 많이 줄었다. 그러다가 최근 두 자녀 이상 낳기를 권장하는 새 출산정책이 시작되었다. 출산율이 다시 증가할지는 알 수 없으나, 낳은 자녀를 잘 키우겠다는 부모의 생각은 확고하다.

도시의 골목과 거리에는 크고 작은 개인 학원이 많다. 10~20명이 들어갈 정도의 건물 1층에 꾸민 작은 사설 학원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부한다.

영어와 수학,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 태권도, 가라테 등 운동을 배우는 학생도 다수다. 중산층 가정은 영어, 수학, 음악 세 과목을 사설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일상이다.

운동까지 추가된 ‘4과목’ 과외는 베트남 중산층 자녀들의 방과 후 과외 량이고, 부모가 부담하는 경제비용이다.

사무실은 임신한 여성들이 많다.

여직원들이 청년층 연령대라 대부분이 가임여성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팀원 수는 6명이다. 4명이 여성인데, 한명은 2주 전에 출산을 했다.

다른 한명은 한 달 뒤 출산을 앞두고 있다. 출산 휴가는 우리보다 2배가 많은 6개월이다. 유급의 장기 출산휴가는 출산 장려 정책이자, 오랫동안 지켜온 베트남의 젠더정책이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두 자녀정책을 시행해왔으나, 2017년 이 정책을 공식 포기하였다. 이제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여성은 ‘최소한’ 두 자녀 출산을 권장 받고 있다.

감소세로 접어든 인구구조를 다시 증가시키기 위해 정책을 전환해도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

어린이가 행복한 사회, 지역과 젠더별 차이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 정책은 사회・경제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급속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베트남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행복한 아이들, 어디서 온 행복일까?

크리스마스이브. 빈컴 플라자(VinCom plaza)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과 청춘남녀들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젊은 엄마들은 3~4살 자녀에게 각종 포즈를 취하게 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는 국경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술의 크기로는 지금껏 본 베트남의 어떤 국경일보다 큰 축제이다.

크리스마스는 상인이 만든 국경일이자, 가족의 축제일이다. 기상이변이 잦지만 다낭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있을 리가 없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쉬운 듯 사람들은 레스토랑의 트리 장식에 흰 솜을 구름처럼 촘촘 붙여 눈 없는 크리스마스를 대신했다.

이브 날 기온은 20~29도로 적당했다. 이런 날씨를 예상한 듯 다낭어린이과학도서관 주변 공간에 마련한 크리스마스이브의 작은 축제는 타이틀도 포근했다.

‘따뜻하고 아늑한 크리스마스이브 축제’(warm cozy christmas eve festival).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고 아늑하게 열리는 한마당 잔칫날이었다.

베트남은 아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다. 식당이나 백화점, 가게, 시장, 거리 등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대접받는다. 칭얼대고 작은 사고를 쳐도 누구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저지르는 그런 사고가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나 가게 주인 그리고 직원들조차 아무도 아이들의 장난에 눈찌푸리는 사람이 없으니, 이방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

베트남에서의 생활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름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 ‘아이들은 남의 집 아이가 아니라 모두 함께 키우는 존재’였다. 남의 아이라면 화가 났을 일도 내 아이라면 이해가 되는 법이다.

물론 경제적, 환경적인 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1700km의 긴 국토를 가진 나라이고 아직 모든 지역이 골고루 발전하지 않았다.

아직 경제성장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농촌이나 산골 마을이 적지 않다.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삶은 도시아이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다. 부모들 세대에서 겪었을 많은 고난을 뒤로 하고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 보살핌을 받으며 해맑게 자라고 있었다. 경쟁이 일상이 되어가는 그런 사회가 되면 이러한 분위기가 또 달라질까?

비로소 가족이 되는 날, 돌잔치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평소 다니던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사각형의 천막을 가운데 두고, 그 안팎에서 사람들은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낭에 온지 겨우 두 달 무렵, 모든 것이 신기하던 때였다. 우선 사진 한 장을 찍고, 물어보니 돌잔치 행사였다.

나중에 보니 그 장소는 가정집이 아니었다.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 등 각종 행사를 대행해 주는 행사전문회사였다. ‘아, 이런 회사도 성업하고 있구나?’ 베트남에서 돌잔치는 이미 기업이 챙기는 비즈니스 영역이었다.

돌잔치는 집에서 열기도 하고, 행사기획사 앞, 도로 옆 인도에서 작은 규모로 여는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는 일반 식당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다. 2주 전 사무실 동료의 둘째아이 돌잔치에 참석했다. 아주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다.

가족친지, 친구, 동료들이 참석하여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주인공 아기에게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하고, 사진도 같이 찍는다. 동료와 차려진 음식을 나눠 먹는다.

분위기가 조금 오르면 한국식 노래방 시스템도 작동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서 노래를 부른다. 부모와 함께 온 꼬마 녀석들도 무대에 올라가서 춤추고 장난치며 논다.

아이들도 잔치를 함께 즐기도록 어른들이 배려한 것이다.

동료의 둘째아기 돌잔치 행사. [사진=석태문 위원]
동료의 둘째아기 돌잔치 행사. [사진=석태문 위원]

돌잔치에 특별한 격식은 없다. 자녀 돌잔치에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고, 축하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는 오래된 문화였다.

돌잔치를 연 동료 아기아빠는 레스토랑에 오기 전 가족들과 집에서 간단하게 돌잔치를 먼저 하고 왔다고 했다.

돌잔치 상을 집에서 차린 것이다. 잔칫상에는 찐 찹쌀, 달콤한 수프, 삶은 오리·돼지고기, 과일과 술, 차, 허브 향, 꽃이 오른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잔칫상에 오르는 음식들은 대개 비슷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기가 쟁반에 담긴 물건을 집는 것으로 아기의 미래직업을 예상하며 즐거워한다. 가위를 선택하면 의사가 되고, 돈을 선택하면 부자가 된단다. 책이나 연필을 선택하면 관료나 학자가 되고, 거울을 선택하면 예술가가 된다는 식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돌잔치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날의 하나이다. 첫 생일을 맞으면서 아기는 진정한 가족 구성원이 된다.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전통사회에서 아이가 첫돌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이다.

돌잔치를 통해 아기는 가족 구성원이 되고,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런 아기를 행복하게 키우는 것, 그것은 베트남에서 어린이가 무조건 행복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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