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모임을 그림으로 남기다

심사정作 '와룡암소집도', 1744년, 지본수묵담채, 28.7x42.0cm, 간송미술관 소장.
심사정作 '와룡암소집도', 1744년, 지본수묵담채, 28.7x42.0cm, 간송미술관 소장.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원림을 뒤덮는 웅장한 소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서로 모여 앉아 한창 모임을 열고 있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와룡암소집도〉이다. 여기서 ‘와룡암(臥龍庵)’은 모임 참석자이자 장소를 제공해준 김광수(金光遂, 1699~1770)의 서재이름이고, ‘소집(小集)’은 작고 소소한 모임을 일컫는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룡암소집도〉는 김광수의 서재에서 친한 이들끼리 소소하게 있었던 실제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인물들을 세어보니 총 3명인데, 이들은 와룡암 주인 김광수, 김광국(金光國, 1727~1788)과 이 모임을 그린 심사정이다.

와룡암의 주인인 김광수는 조선 후기 고동서화(古董書畵) 수장가이자 감식가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옛것을 숭상하다’는 의미인 상고당(尙古堂)이라는 호를 사용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옛 서화나 옛 기물 등이 있으면 돈을 다 털어서라도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박제가가 “…차 끓임은 오직 김성중(김광수의 字)을 허락하니, 송풍성 회우성을 알아듣기 때문이지(磨墨淸晨萬慮輕, 爐烟不斷一簾橫, 煎茶獨許金成仲, 解聽松風檜雨聲)”라고 칭송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차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여기서 송풍성와 회우성은 찻물을 끓일 때 나는 소리를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와 전나무 사이로 내리는 빗물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이전시기까지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금기시 되어왔던 고동서화 감상이 새로운 문예사조로 떠오르고 경화사족들 사이에서 유행되었다.

더불어 청나라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진귀한 문물들의 유입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고동서화의 종류도 폭 넓어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차 마시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조선 사회에선 차를 마시는 일이 사회적으로 널리 유행되지 못하였으나, 청나라 문물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이들의 기록에서 ‘차를 마시면서 시화를 논한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라는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청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차 문화를 직접 경험하거나 문헌으로 접하게 되면서 차 마시는 것이 그들에게 점차 스며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광수는 명문 경화사족으로 청나라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고, 그와 친하게 지냈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유득공(柳得恭, 1748~1807), 이광사(李匡師, 1705~1777)등도 연행(燕行)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 사이에서 고동서화, 차, 향 등은 교유의 매개체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김광수는 가까운 지인들과 모여 차를 마시며 자신이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그가 즐겼던 모임들 중 하나를 순간 포착하여 그린 것이〈와룡암소집도〉다. 흥미롭게도 10여년이 지나서 김광국은 우연히 이 그림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감회가 새로워져 당시 그림을 그려지게 된 경위를 남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갑자년(甲子年, 1744) 여름 내가 와룡암에 있는 상고자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차를 다려 마시면서 서화를 논하던 중 하늘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소나기가 퍼붓는 것이었다.

그때 현재가 문 밖에서 낭창거리며 들어왔는데, 옷이 흠뻑 젖어 있어 서로 쳐다보고 아연실색했다.

이윽고 비가 그치자 정원에 가득 피어오르는 경관이 마치 미가(米家)의 수묵화와도 같았다.

현재가 무릎을 안고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급히 종이를 찾더니, 심주의 화의를 빌려 〈와룡암소집도〉를 그렸는데, 필법이 창윤하면서도 임리하여 나와 상고자는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이에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지고 참으로 기쁘게 놀다가 마쳤다. …

김광수는 무더운 여름날, 친한 벗인 김광국과 함께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품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때마침 도착한 심사정은 비가 그치자 눈앞에 펼쳐진 산수화처럼 펼쳐진 원림의 모습에 감탄하여 그들의 모임을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비온 뒤 촉촉하게 젖은 정경을 윤필(潤筆, 짙은 먹이 가득 묻은 붓으로 그린 필치)로 잘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최혜인 연구원

멋들어지게 펼쳐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그들이 보이는데, 관모를 쓰고 있는 이가 김광수이고, 나머지 갓을 쓴 이가 김광국와 심사정이다.

그리고 두 명의 시동이 있는데, 두 명 중 한 명은 차를 달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어떤 차를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맑고 기품이 있는 차였을 것이다.

피어오르는 차향이 코끝을 찌르는 듯하다. 당시 차를 즐겼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 소식이 자주 들리는 때에 〈와룡암소집도〉를 감상하고 있으니, 그들의 고아한 모임을 함께 하는 것 같아 설렌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그들의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을 어떨까.

*원문·번역 참고문헌

이예성, 『현재 심사정』, 돌베개, 2014

박제가 著, 정민 외2譯, 『貞蕤閣集』上, 돌베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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