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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8-04 18:08 (화)
[China 석세스 스토리⑲] 부동산 그룹 완커 제국을 일군 '괴물 기업인' 왕스
[China 석세스 스토리⑲] 부동산 그룹 완커 제국을 일군 '괴물 기업인' 왕스
  • 전순기 통신원
  • 승인 2020.01.1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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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도 일가견이 있는 완커의 창업자 왕스. [사진=완커그룹]
조정에도 일가견이 있는 완커의 창업자 왕스. [사진=완커그룹]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하늘은 대체로 공평하다.

하지만 간혹 불공평하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 온갖 재주를 다 몰아주는 경우가 전혀 없지도 않다.

중국의 부동산 그룹으로 유명한 완커(萬科)의 왕스(王石. 69) 창업자는 바로 이 재주들을 다발로 안은 채 태어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해도 좋지 않나 싶다.

정말 그렇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재주들을 열거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문학에 조예가 대단히 깊다.

젊은 시절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즈의 장편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 번역본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전공은 문학 애호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공학이었다.

1977년 대륙 서북 지역인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철도학원을 졸업한 다음 이듬해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철로국에 배치돼 배수 담당 기술자로 일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운동에도 만능이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다.

가장 즐기는 등산의 경우 거의 프로 산악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나이 70대를 바라보는 지금도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것은 결코 괜한 게 아니다.

지난 2014년 9월 임기 5년의 아시아조정협회 회장에 당선된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완커의 창업자 왕스. [사진=완커그룹]
스마트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완커의 창업자 왕스. [사진=완커그룹]

그는 연예인은 아니나 모델 일도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를 비롯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모델로 나선 바 있다.

그의 재능은 이성교제에서도 활짝 꽃피고 있다.

딸보다 어린 유명 배우 톈푸쥔(田朴珺. 39)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거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해도 좋을 그는 29세 되던 해인 1980년 광저우 철로국을 떠나 광둥성 대외무역경제위원회로 전근을 가게 된다.

이곳에서 외자유치 분야를 담당하면서 사업에도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당연히 공무원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표를 낸 후에는 사료 중개상, 일본의 전자제품 수입상을 거쳐 인쇄 및 음료공장 경영에까지 손을 대게 됐다.

사업은 하는 것마다 성공이었다.

84년에는 현대과학교육기기판매회사라는 작은 회사도 차릴 수 있었다.

4년 후에는 마침내 회사 이름을 완커로 바꾼 다음 건설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이어 다시 97년 다른 업종을 모두 매각한 후 전문 건설업체로 떠올랐다.

그는 경영에서도 다재다능한 괴물 기업인다웠다.

무엇보다 역발상의 경영이 빛났다.

88년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시키면서 지분 모두를 무상으로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직원들이 지분 없는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로 사심 없이 일하고자 하는 그를 따라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공무원들에게 만연했던 뇌물 수수 관행에도 정면으로 도전했다.

왕스 완커 창업자가 은퇴하기 전 현장을 찾아 직원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 [사진=완커그룹]
왕스 완커 창업자가 은퇴하기 전 현장을 찾아 직원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 [사진=완커그룹]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투명 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이 결과 91년에 완커는 광둥성의 경제특구 선전(深圳)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두 번째의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2007년 말에는 역발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겠다는 듯 아파트 분양가를 대폭 할인하는 행보에도 나섰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분양가를 최대 30%까지 낮추기까지 했다.

비구이위안(碧桂園) 등의 경쟁업체에서 난리가 났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후 부동산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완커가 옳았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완커 브랜드는 더욱 신뢰를 높여갈 수 있었다.

그는 66세가 되던 2017년 젊음을 다 바친 완커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분이 없으니 완커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제약, 바이오 업체로 유명한 화다(華大)그룹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나 다른 대그룹의 창업자들과는 달리 재산은 많지 않다는 것이 측근의 전언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실패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적어도 중국인들 중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