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대비사(大悲寺) 절집에서 신록을 따라 40여 분 걸어갔다.

길옆에는 병꽃, 부지깽이, 우산나물, 산초……. 모든 식물들이 새 잎을 틔우고 있다.

바위 많은 계곡에 앉아 잠시 한숨 돌리고 집에서 가져온 물은 계곡물로 새로 채우는데 손이 시리고 가슴까지 시원하다.

대자대비(大慈大悲)1)로 오르는 산

지금부터 40분 더 올라야 하는 산이다. 바위 그늘에 감자 잎과 자리공을 섞은 듯한 검붉은 미치광이 꽃이 종 모양으로 밑을 보고 피었다.

4∼5월 꽃이 아래로 처져 피고 독성이 강해 나물로 알고 잘못 먹으면 사람이나 산짐승들이 미친 듯 눈동자가 풀려 발작해 정신을 잃는다.

미치광이풀, 어쩌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름을 얻었을까? 광대작약, 미친풀이라고도 한다. 가지과의 이 식물은 동낭탕(東莨菪)이라 해서 뿌리줄기를 약으로 쓴다.

신경통·관절염·간질·알코올수전증·종기·옴·버짐에 효과 있지만 주의해야 한다. 진통제 원료로 제약회사들이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멸종위기 식물이 됐다.

대비사와 병꽃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대비사와 병꽃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대비사와 병꽃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대비사와 병꽃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숨이 턱턱 차오른다.

땀은 비 오듯 하고 험한 바위산 입구부터 억장이 무너지는 산. 드디어 팔풍재 능선, 가슴이 탁 트인다.

눈앞에 멀리까지 펼쳐져 가릴 것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 영웅들이 다투어 세력을 과시하듯 군웅할거(群雄割據), 산마다 높이를 뽐내면서 먼 하늘 끝으로 치달았다.

산의 무리 가운데 억만건곤(億萬乾坤), 하늘과 땅 사이에 최고라고 억산이라 했던가?

억만금을 벌게 해 준다며 이산에 오르는 사람들마다 복권당첨과 사업번창을 빌기도 한다. 나의 소견으로는 운문산보다 더 용맹한 산이 억산이라고 여긴다.

운문산은 푸짐한 흙산(肉山)이요 억산은 우악스런 바위산(骨山)이다. 정상의 붉은 진달래 사이로 발아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뱀을 두 번씩이나 만났다.

그 옛날 이무기가 바위를 깨뜨렸으니 뱀이 많을 수밖에……. 산 아래 대비사 상좌(上佐)2)는 밤마다 홀린 듯 밖으로 나갔다 오면 몸이 싸늘해졌다. 불을 땠는데도 이를 수상히 여긴 스님이 뒤를 밟았더니 대비지(大悲池) 못에 상좌가 옷을 벗고 뛰어들자 이무기로 변했다.

놀란 스님이 “거기서 뭘 하느냐?”고 소리치자, “1년만 있으면 천 년을 채워 용이 되는데…….”라며 억산으로 도망치면서 꼬리로 봉우리를 내리쳐 바위산이 두 개로 갈라졌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석골사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스님보다 높았던 모양이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스님은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독룡(毒龍)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좌는 분통을 참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몸부림을 쳐서 바위가 쩍 갈라졌다고 한다.

대비사 원점까지 거의 4시간 걸어 내려오니 고즈넉한 절집 앞에 스님 둘이 밭에서 일한다. 속세를 잊을 수 있으니 어쩌면 참 행복하다 싶었다. 대비지는 그야말로 에메랄드 빛 연못이다. 오염되지 않은 산자락에서 물이 내려오니 맑을 수밖에……. 윗물이 맑으니 아래는 찬란하다.

석골사 계곡 물소리 따라서

석골사(石骨寺) 입구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길어졌다.

나뭇가지 아래 보이는 폭포수를 뒤로하고 절집으로 오르니 자주색 모란꽃과 빈 의자가 어울려서 아기자기한 마당이 정겹고 봄날의 나뭇잎도 여리다.

먼저 간 태아의 혼을 위해 신위3)를 놓고(先亡精胎中之哀魂靈駕) 재(齋)4)를 올리는 걸까?

석골사와 억산 오르는 길 아래 전망. [사진=김재준 시인]
석골사와 억산 오르는 길 아래 전망. [사진=김재준 시인]
석골사와 억산 오르는 길 아래 전망. [사진=김재준 시인]
석골사와 억산 오르는 길 아래 전망. [사진=김재준 시인]

지금도 찬성·반대가 있지만 새 생명의 절반이 빛을 못보고 사라지니 슬픈 일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영혼들과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을 받는다는 선악의 순리를 새기면서 산에 오른다. 오늘 하루라도 속세의 집착을 끊으려 산으로 간다. 맑고 깨끗한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절을 두고 오른쪽으로 가면 상운암, 운문산인데 우리는 억산으로 올라간다. 바위와 참나무들이 어울린 산길은 경사가 급하다.

뚝뚝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으면서 흥미로운 식물은 다시 보고, 적고, 사진기에 담는다.

턱잎(托葉)이 오랫동안 남는 덜꿩나무에 비해 심장모양 잎과 잎자루(葉柄)가 길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꽃말을 가진 흰 꽃, 산가막살나무는 확실히 알겠다.

명이나물(산마늘), 비비추 비슷한 은방울꽃은 독이 있어선지 손길을 타지 않고 나무 아래 빼곡히 자라고 있다.

잎이 비슷해서 잘못 먹으면 죽는다. 맹독성 독초, 한방에서 강심제로 극소량을 쓰지만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야생동물도 이 식물은 절대 먹지 않는다. 은방울꽃을 꽂아둔 꽃병의 물을 애완동물에게 먹이면 죽을 수도 있다.

5월경 하얀색 꽃이 아래로 처져 종처럼 피는데 아름다운 생김새와 향기가 좋아 웨딩부케, 향수의 원료로 비싸게 친다. 유럽에선 요정들이 밤의 축제를 하고 컵을 걸어놓고 갔는데 꽃이 되었다 한다.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주석>

1) 넓고 자비로운 부처나 보살의 마음.

2) 대를 이을 중. 또는 심부름 하는 중

3) 영혼의 자리(죽은 이의 사진이나 지방 따위).

4) 엄숙하게 올리는 여러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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