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난티나무는 잎 가장자리 잔 톱니를 자랑하고 녹색가지에 줄이 있는 건 산겨릅 나무인데 하얀 잎 뒷면은 아닌 것도 같다.

11시 40분 송계삼거리(동창교2.8킬로미터) 길로 팥배나무, 이렇게 멋진 것은 처음 봤다. 마치 다듬은 듯 가지런히 잘도 컸다.

구슬땀 흘려 영봉 오르면 발 아래 충주호

11시 50분 정상 바로 아래 신륵사갈림길(신륵사2.8·영봉0.8·덕주사4.1킬로미터). 산괴불주머니, 군락지를 이룬 고춧잎 닮은 고추나무 꽃이 흰빛 라일락처럼 피었다. 부풀어 오른 복주머니, 집게발같이 생긴 열매는 눈길을 붙잡는다.

“무슨 꽃입니까?”

사진을 찍는데 동전만한 이파리에 핀 흰 꽃을 묻는다.

“산조팝입니다.”

월악산 영봉과 근방의 장엄한 산들. [사진=김재준 시인]
월악산 영봉. [사진=김재준 시인]
월악산 근방의 장엄한 산들. [사진=김재준 시인]
월악산 근방의 장엄한 산들. [사진=김재준 시인]

영봉을 오르는 가파른 철 계단 옆으로 병꽃이 붉은 걸 보니 질 때가 된 것 같다.

붉은 색 병꽃도 있지만 대체로 처음에 흰색으로 피고 나중에 붉은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정상에 웬 층층나무인가?

계곡에 자란다는 생육의 특성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병꽃, 산목련, 당단풍이 무리지어 자라고 철쭉꽃은 이제 폈다.

딱총나무, 개승마 하얀 꽃도 길게 올라 와 한창이다. 12시 5분 보덕암(보덕암3.7·영봉0.3킬로미터) 갈림길 지나 꼭대기에 병꽃, 철쭉꽃이 활짝 폈는데 텐트치고 자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한다.

“지리산 비박 언제 할까?”

“지리산은 할 수 없어요.”

처음엔 비박을 비상숙박(非常宿泊)의 한자 풀이로 알았지만 주변을 감시하는 군사야영이다. 독일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하룻밤 지내는 일(biwak), 프랑스는 숙영지(bivouac), 스페인은 군사적 야영(vicaque)이고 우리말로는 “한데 잠, 산 야영”이다.

이 산 전체에 진딧물 피해가 심하다. 딱총나무 꽃 층층나무 이파리도 진딧물에 잎이 오그라져 죽어간다.

이상기온과 생태계 변화 조짐을 느낀다.

땀을 뻘뻘 흘리며 12시 20분쯤 정상 영봉(1097미터). 몇 해 만에 다시 오니 표지석도 새로 만들었다. 모든 것은 발아래 있고 충주호가 흐린데 제비봉을 묻는다.

“오른쪽입니다.”

꿩의다리·병꽃·진달래·딱총·미역줄·개옻·층층·조팝나무, 쇠물푸레나무도 하얀 꽃.

12시 40분 갈림길에서 보덕암 쪽으로 간다. 서어나무, 산수국, 관중, 도깨비부채, 큰앵초 붉은 꽃은 잘도 폈다. 마타리, 족도리풀, 사초, 우산나물, 둥굴레, 구슬붕이, 산괴불주머니…….

어떤 부부가 바위에 쉬는데 관광차로 온 사람들이 대뜸 “누님 언제 왔어요?”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천박이 아니라 패륜의 극치다.

배우자와 함께 있는 생면부지(生面不知) 낯선 여인에게 은근히 희롱하고……. 사람들 수준이 왜 이렇게 됐는지 비위가 틀릴 지경이다.

바위산, 영봉 아래 보이는 충주호. [사진=김재준 시인]
바위산. [사진=김재준 시인]
바위산, 영봉 아래 보이는 충주호. [사진=김재준 시인]
영봉 아래 보이는 충주호. [사진=김재준 시인]

<사진 013-014> 바위산, 영봉 아래 보이는 충주호. [사진=김재준 시인]

바윗길에 산조팝 하얀 꽃, 오후 1시 넘어 중봉 바위꼭대기에서 점심 먹는데 빗방울이 날린다. 서둘러 내려가는 길, 진딧물이 옷에 막 붙는다. 2시쯤 됐을까?

유람선 소리와 어우러져 경치는 한껏 좋다. 호수, 바위, 소나무, 빗방울…….

10분 내려서 하봉, 발아래 흰색 꽃 피운 쇠물푸레나무, 곧 6월이 시작인데 배낭을 짊어진 등에는 땀이 줄줄줄.

내리던 빗방울 그치고 해가 나서 번거롭지만 비옷은 다시 넣었다. 꼬리진달래에 눈길을 떼기 어렵지만 굵은 쇠물푸레나무는 10센티미터 되겠다.

산목련 꽃도 일행을 반겨준다. 바위와 돌은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였고 쪽동백, 산조팝……. 나무 이름 맞추기 하며 내려가는데 뻐꾸기, 새소리, 뱃소리도 멈췄다.

3시에 보덕암에 닿으니 주변이 어수선하다. 고광나무, 모감주나무를 바라보다 30분 걸었다. 내려가는 차에 신세를 졌지만 목적지까지 못가서 아쉬웠다.

송계 다리 건너 한참 지나서 버스정류장, 멀리 산자락을 휘감은 물빛이 아득하고 풀밭에 앉아 목을 축인다.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는다.

4시경 지나가는 승합차에 손을 흔들었더니 한수면 소재지, 동창교 지나 10분쯤 거리, 덕주사 입구에 내려준다.

하도 고마워서 성의 표시를 했더니 한사코 거절한다. 복 많이 받으시라고 고개를 숙인다. 6시 넘어 집에 도착해서 어수룩한 길라잡이와 한 잔 기울였다.

탐방로

● 정상까지 6.3킬로미터, 3시간 20분 정도

덕주골 → (20분)수경대 → (10분)덕주사 → (35분)마애불 → (25분)돌계단 → (25분)철계단 올라서 바위 → (40분)송계삼거리 → (10분)신륵사 갈림길 → (15분)보덕암 갈림길 → (15분)영봉

* 3명이 조금 빠르게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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