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가덕도 들어가는 입구에서 관광버스를 만났는데 아래위로 털썩거린다.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 안에서 흔들어대는 아줌마들, 쿵쾅거리는 뽕짝소리…….

요즘은 남자, 여자, 아줌마,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용감한 아줌마들 덕택에 우리는 역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뽕짝과 막춤을 천박하고 저급한 “날라리 딴따라”로 평가절하 해도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억눌린 민초들의 불만이 표출된 필연적 문화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천가동 율리 마을 300살 팽나무

가덕도는 부산에서 제일 큰 섬으로 20킬로 제곱미터, 해안선 36킬로미터 정도다. 조선 중종 때 가덕진(加德鎭)이 설치되었다.

한때 창원군에 있다가 1989년 부산 강서구로 편입되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하고 가덕도 등대, 척화비, 봉수대, 동백군락지 등이 있다.

9시경 천가동사무소 근처 가덕수퍼에서 출발, 갯벌 매립지 논둑길을 따라 걷는다. 해당화·비파·백당나무 꽃은 마을입구에서부터 유혹했다.

갯냄새에 실려 오는 해당화를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일행인 사오십 대 꽃들과 녹음방초(綠陰芳草) 우열을 겨뤘다.

가덕도 해당화.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해당화.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동선 새바지 포구.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동선 새바지 포구. [사진=김재준 시인]

천가동 율리 마을에 300살 팽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항만공사로 2010년 3월, 60여 킬로미터 뱃길 따라 부산해운대로 끌려갔다.

두 척의 바지선·대형 트레일러·굴착기·크레인, 공무원·경찰·공사관계자 등 50여 명, 약 2억2000만 원짜리 대공사였다.

부산에 도착한 뒤 깜깜 밤중에 왕복 8차선 도로를 통제하고 육교, 전신주 피해 아슬아슬하게 옮긴 심야작전이었다.

“최장 해상이동 기네스북 등재”는 별개로 치더라도 굳이 바다 건너까지 옮겨야 했을까? 신목(神木)을 몰아낸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강제 이주당한 나무는 잘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9시 40분, 동선새바지 포구에서 산을 오른다.

여기서 어음포 감시초소까지 3.5킬로미터 거리다. 입구를 지키는 감시원에게 새바지를 물었더니. 샛바람을 막는 뜻이라 한다. 가덕도에는 두 곳의 새바지가 있는데 동선새바지, 대항새바지다.

동풍은 샛바람, 서풍은 하늬바람, 남풍은 마파람, 북풍은 된(뒷)바람이지만 오늘은 꽃바람이다. 5월 초순, 산은 정말 이맘때 최고다.

산천에는 기화이초(奇花異草) 만발하고 나무마다 새순을 틔우고 있으니,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봄날 아니던가?

산길에는 우람한 해송과 고사리, 둥굴레, 산철쭉, 청미래 덩굴, 참나무류, 오리나무들이 시원한 바다를 향해 자란다.

10시 넘어 육군용지 팻말에서 잠시 휴식이다.

11시 10분, 매봉의 바위산 너머로 멀리 을숙도, 부산항이 흐릿하고 다대포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마지막 줄기를 바라본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숨 막히도록 핀 꽃은 배꽃을 닮았고 가을의 검붉은 열매는 팥을 닮았다 해서 팥배나무다.

꽃 너머 보이는 부산항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 자라는 장미과 큰 나무로 열매는 감당(甘棠), 만성피로에 좋고 재질이 단단해서 가구, 공예품으로 쓴다.

가지 끝에 달린 앙증맞은 열매는 눈 내리는 겨울까지 새들을 부른다. 마치 섬 전체가 오월의 꽃 잔치다. 덜꿩·쇠물푸레·산철쭉·사스레피나무, 산괴불주머니·광대나물…….

11시 30분 응봉산(314미터)을 내려 쪽동백·생강·국수·소사나무, 마삭줄 바윗길 지난다. 이맘때면 어느 곳이든 쇠물푸레 하얀 꽃이 절정이리라.

땀을 닦으며 나무 아래 걷는데 벌레들이 줄을 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떤 놈은 급강하 한다. 그냥 지나치면 옷에 달라붙거나 모자 위로 몇 마리 스멀스멀 기어간다. 나도 그들에겐 적이었나 보다.

애벌레들은 외부 공격의 낌새가 있으면 투명한 실을 토해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시 줄을 타고 올라가거나 매달려 있기도 한다.

이른 봄에 나오는 대부분 나비목 애벌레들이 비단실 끝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것도 생존전략이다.

벌레의 방적돌기(spinneret, 紡績突起)에서 나온 액체는 가늘지만 질긴 가닥이 된다. 실을 만드는 방적돌기는 애벌레만의 특징이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애벌레가 어른벌레 되기 전에 휴식기간이 필요한데 외부공격을 피해 나뭇가지에 실을 붙여 놓고 허공에 매달리는 것이다.

팥배나무꽃 바위섬 멀리 부산항. [사진=김재준 시인]
팥배나무꽃 바위섬 멀리 부산항. [사진=김재준 시인]

임진왜란을 처음 알린 연대봉 봉수대

12시 30분경 어음포 산불감시초소에 어디서 온 것인지 차들이 먼저 와 있고 사람도 많다.

일행들은 힘 드는 기색이지만 돌아가는 시간이 아득해서 재촉하며 올라간다. 오후 1시경 연대봉(烟臺峯 459미터) 정상이다.

“시원한 아이스케키~”

어릴 적 소풍 때 들어본 소리, 바위산 위로 햇살이 따갑다.

저 넓은 바다. 부산, 거제, 진해……. 남해의 섬들도 저마다의 물결을 만들고 지나가는 배들은 하얀 물보라를 그려준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 봉수대에서 1592년 음력 4월 13일 침략하는 왜군 수백 척을 처음 감영에 보고한다.

그러나 경상좌수영군은 곧바로 무너졌고 14일 왜군 선발대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성과 동래성을 공격, 부사 송상현은 끝까지 항전하다 죽는다.

동래를 함락시킨 4월 18일 2군단 가토오 키요마사(加藤淸正) 2만여 병력은 부산에, 구로다 나카마사(黑田長政) 3군단 1만여 병력이 다대포, 김해로 침공하였다.

왜적은 1·2·3군으로 나뉘어 속전속결 북진하였고, 후방 부대는 도공, 부녀자,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조선인은 규슈에서 상당수가 마카오, 인도, 이탈리아 등지로 팔려가기도 했다.

연대봉과 봉수대.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연대봉.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봉수대. [사진=김재준 시인]
가덕도 봉수대. [사진=김재준 시인]

1987년경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의 한복 입은 조선인 그림 “안토니오 꼬레아”가 상징적인 사건이다. 왜구에 납치되어 이탈리아로 팔려간 조선 소년이라는 것. 후손들이 이탈리아 실라(Sila)산 기슭 알비(Albi) 마을에 산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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