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멀리 흐릿한 부산과 쓰시마 섬 쪽으로 눈을 돌리니 서글프다.

7여년 전쟁으로 강토가 황폐화 되고 굶주린 백성들이 얼마나 유린당했던가?

당쟁, 탁상공론으로 형편없던 조정과 일본에 다녀온 사절단은 침범할 동향이 없다는 거짓 보고로 귀를 막고 눈을 가렸으니…….

한편, 일본에서는 항해술이 발달해 이미 유럽과 무역을 하였고 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기술을 배워 전쟁에 나섰다. 조선 관군은 허수아비였으나 민초들의 구국일념은 의병활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대항새바지에서 바라본 해안. [사진=김재준 시인]
대항새바지에서 바라본 해안. [사진=김재준 시인]
대항새바지에서 바라본 갈맷길 해안 곰솔. [사진=김재준 시인]
대항새바지에서 바라본 갈맷길 해안 곰솔. [사진=김재준 시인]

봉수대를 복원 해놨는데 옛 맛이라곤 하나도 없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거가대교 침매(沈埋)구간이 발아래 있고 관광 안내판은 큼직하다.

육소장망(六艘張網), 봉수대, 가덕등대, 척화비, 외양포 일본군포진지, 거가대교, 부산신항, 천성진성, 백옥포, 동백군락지, 두문지석묘, 갈맷길…….

옆에 선 등산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한 번 찍어주는 데 1만원인데요.”

“카드 할부 안 될까요?”

첨단 수준의 한국 산악구조 시스템

갑자기 헬기소리 요란하다.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거나 누가 다쳤는지 산 전체가 소음과 먼지로 야단스럽다. 우리나라 산악구조 시스템은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어디든 구조의 손길이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문제를 소홀히 하는 편이다.

산행 전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각자의 의무지만 리더는 대원의 등반경험, 복장, 위험요소 등을 점검하고 안전산행을 독려해야 한다.

일부 관광버스 등산은 술 취한 사람들이 뒤섞여 희희낙락 하며 쓰레기 투기, 음주 등으로 산행문화는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배도 고프고 어수선한데 일단의 산악회 깃발이 시끄럽다. 빨갛게 입술 바른 여자가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오빠라고 부르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산악사고 중 가장 빈번한 것이 음주다. 간단한 사고조차 스스로 수습하지 않고 119를 부르기 일쑤다. 선진국에서는 헬기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보험처리 되도록 한다.

산에 갈 줄만 알았지 기본적인 의무는 놓치지 않았는지 스스로 살펴 볼 일이다. 산 아래 내려가는데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땀 뻘뻘 흘리면서 올라온다.

시급을 다툴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얼마나 많은 국가적 손실인가?

거의 오후 2시 돼서 도시락이다.

좋은 자리 찾는다는 것이 하필 축축한 숲 속이지만 금강산(金剛山)보다 식후경(食後景)이 앞섰다. 2시 30분경 우리는 해덕사를 두고 지름길로 내려간다는 게 밀림이다.

덤불 많은 산길, 나뭇가지, 찔레에 할퀴고 꽃가루는 온 얼굴을 덮어 옷이며 가방이며 노랗다. 계곡 낀 산길은 기슭으로 나 있을 것인데…….

체력과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계곡으로 내려오다 다시 언덕으로 조금 올라 마침내 덤불 옆에 길. 굴피나무, 마가목을 만나면서 숲을 헤치고 내려오니 마침내 포구다.

“휴우~ 수고하셨습니다.”

3시 10분 대항어촌 마을, 가덕도 육소장망(六艘張網)은 전통 고기잡이 방법이다. 그물망으로 연결된 여섯 척 배가 숭어 떼 물목에 기다리다 산위의 망루에서 살핀다.

포위망에 들어올 쯤 신호를 보내 일제히 그물을 당겨 잡는데, 200년 넘은 방식이다. 숭어가 많이 잡히는 3~4월이 적기다.

80살 넘은 동백나무 군락지

인근 외양포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던 진지가 있다.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만들었는데 곡사포가 있었다. 러일전쟁 당시 발트함대가 가덕도 앞바다를 지나다 침몰했다고 한다.

바위 꼭대기 가덕도 등대도 일본 배들의 잦은 사고로 조선을 협박해 지은 것이다.

해안 암벽에는 80살 넘은 수천 그루 동백나무 군락지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 상록수로 해풍과 염기에 강하다.

우리나라 남부 해안과 일본 등지에 사는 키 작은 나무이지만 10미터 이상 자라는 것도 있고, 어긋나는 잎의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여리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1993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적한 바다마을의 낭만에 대한 기대는 파도처럼 쓸려가고 다리 펼 시간도 없이 걷는다. 길은 다시 계단으로, 산으로 또 올라간다.

군부대 막사였던 희망정까지 20분, 거의 4시경 길섶에서 쉬는데 다들 힘든 기색이다. 버스도 없고 돌아갈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 돼 버렸다.

피로가 겹쳐선지 한 사람은 다리 아프다 하고, 이럴 땐 근육을 풀어주는 스프레이 파스가 필요한데 준비에 소홀했다. 15분 더 내려가니 어음포(魚音浦) 계곡.

민가가 있었는지 바다가 환히 열려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 이곳으로 왜구들이 습격해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 멎는다.

고인 물을 마시긴 뭣하지만 비상용으로 물 한 병 채웠다. 4시 30분, 파도소리 해안 길을 지나며 표지판이 반갑다. 동선새바지2.6·대항새바지3킬로미터, 거의 중간지점으로 해안 길 반 정도 왔다.

해안가 염소들. [사진=김재준 시인]
해안가 염소들. [사진=김재준 시인]
눌차도 앞 매립예정지. [사진=김재준 시인]
눌차도 앞 매립예정지. [사진=김재준 시인]

4시 40분, 누렇다고 누릉능인가? 바닷가 갈매기 소리, 뒤에 걸어오던 일행은 소식 없고 파도소리만 철썩거린다. 나무 쉼터에서 큰 대자로 쭉 뻗었다.

“한 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행이다. 다시 언덕길 오르니 염소들이 돌아다니는데 방목했는지 땅 표면이 닳았고, 인기척에 놀란 염소 떼 산 아래로 내달려 흙먼지가 일어 뽀얗다.

외국에서는 일부러 급경사지 불에 타기 쉬운 마른 잎을 먹게 해 산불 위험요인을 없애는데 염소를 활용하지만 섬에서 풀어 키우는 염소들은 산림을 망가뜨려 빗물에 흙이 쓸리므로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나무껍질을 먹어치워 식물 종을 감소시키는가 하면 황폐하게 만든다.

5시 넘어 기도원 지나고, 비릿한 바람 맞으며 바닷길 걸어오는데, 어깨를 움츠린 모녀는 바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남편인 듯 낚시꾼만 줄을 던지며 신났다.

길 건너 눌차도, 산그늘 내려오니 어느덧 갯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바다 물 일하는 사람들이 정겹다 해도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행군이었다.

9시간 동안 16킬로미터 걸었다.

길 건너 홍가시나무를 바라보면서 오후 6시 5분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곧 사라질 마지막 남은 섬을 위해 한 장 찍었다.

세월 흐르면 자연은 기억하리.

탐방로

● 전체 16킬로미터, 9시간 정도

가덕수퍼·천가동사무소 → (30분)동선새바지 → (30분)육군용지 표석 → (15분)강금봉 → (45분)매봉 → (20분)응봉산→ (15분)갈림길→ (45분)어음포 감시초소 → (30분)연대봉 → (1시간 30분*점심·휴식 포함)해덕사 → (40분)대항어촌마을 → (20분)희망정 → (50분)어음포 → (25분)누릉능 → (30분)기도원 → (35분)동선새바지 → (20분)가덕수퍼·천가동사무소

* 뙤약볕에 10명이 느리게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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