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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8-11 15:50 (화)
[China 석세스 스토리㉒] '중국판 워너 브러더스' 화이슝디의 왕중쥔
[China 석세스 스토리㉒] '중국판 워너 브러더스' 화이슝디의 왕중쥔
  • 전순기 기자
  • 승인 2020.02.06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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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쥔 화이슝디 회장의 최근 모습. [사진=화이슝디]
왕중쥔 화이슝디 회장의 최근 모습. [사진=화이슝디]

【뉴스퀘스트=전순기 기자】 중국 영화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미국과 쌍벽을 이룬다고 해도 좋다. 최근 들어 중국 영화계를 할리우드에 빚대 찰리우드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개인이나 기업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장이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아차 잘못 하다가는 쪽박을 찰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로라할 정도로 성공한 영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없을 수는 없다. 역시 업계 1위 기업을 대표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바로 중국판 워너 브러더스로 불리는 화이슝디(華誼兄弟)가 아닐까 싶다.

지난 1994년에 설립돼 26년 동안 초스피드로 성장, 현재 극강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솔직히 창업 26년 만에 업계 1위에 등극한 것은 엄청나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작가 류전윈(劉震雲. 왼쪽), 영화감독 펑샤오강(가운데)과 함께 토론을 하고 있는 왕중쥔 회장. 예술적 식견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진=화이슝디]
작가 류전윈(劉震雲. 왼쪽), 영화감독 펑샤오강(가운데)과 함께 토론을 하고 있는 왕중쥔 회장. 예술적 식견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진=화이슝디]

그러나 창업자가 중국 내에서는 비주류로 손꼽히는 만주족 사진기자 출신에 미국 유학파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얘기는 많이 달라져야 한다.

상당히 이색적인 성공 신화로 불려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주인공은 바로 왕중쥔(王中軍. 60) 회장이다.

그는 만주족이기는 하나 동포들의 집거지인 동북3성이 아닌 베이징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 아버지는 직업군인 출신이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이름에 쥔(軍)자가 붙었지 않나 보인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기질이 풍부했다고 한다. 특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하지만 그는 특기를 살리지 못했다. 1976년에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자의 반, 타의 반 군에 입대한 탓이었다.

제대 후에도 그의 인생은 비범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우선 1982년부터 3년 동안은 국영 출판사에서 어릴 때의 특기를 살려 미술 디자인과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그저 입에 풀칠만 했을 뿐이었다.

평범할 것 같았던 인생에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89년 떠난 미국 유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94년이었다.

뉴욕주립대학에서 대중미디어를 전공한 전문가답게 동생인 왕중레이(王中磊. 50)와 함께 광고회사인 화이슝다를 창업한 것이다.

이후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노는 곳이 비슷한 물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 제작한 것이 TV 드라마 『죄의 증거』, 『심리치료소』 등의 작품이었다.

98년에는 지금까지도 영화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희대의 명작 『메이완메이랴오(沒完沒了)』를 제작,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업계 투신 고작 4년 만에 불멸의 히트작을 냈으니 앞날이 훤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그렇기도 했다. 이후 22년 동안 별 다른 실패 없이 꽃길만 걸어왔으니까 말이다.

화이슝디는 2019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60억여 위안을 기록하고 있다. 직원은 무려 6000여 명을 자랑한다. 시가총액은 100억 위안을 넘고 있다.

그의 지분 가치도 30억 위안에 가깝다. 사업 영역은 26년 동안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과 투자, 배급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사업 등은 기본에 속한다.

또 테마파크, 세트장, 영화관 프랜차이즈 등의 사업도 지금은 주류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바일 게임, 뉴미디어,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주 업무로 하는 ‘인터넷 엔터’ 사업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전략 사업으로 쑥쑥 크고 있다. 화이슝디 산하에 자회사만 60여 개가 존재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 이 정도 되면 비주류인 그로서는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특별하지 않다.

무엇보다 예술적 감각이 탁월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매진한 것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여기에 미국에서 익힌 선진 사업 전략 역시 거론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그 특유의 타고난 천재적인 예술적 감각이 아닌가 보인다. 영화 분야에서는 웬만한 감독이나 평론가들보다 높은 경지에 있다는 평가가 자자하다. 이외에 마당발 같은 인맥 역시 꼽지 않으면 안 된다.

연예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재계, 정계, 체육계 등의 저명인사들의 상당수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중쥔 회장이 사회 저명 인사들과 끈끈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 가운데 팔짱 낀 이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오른쪽 두번째가 왕 회장. [사진=화이슝디]
왕중쥔 회장이 사회 저명 인사들과 끈끈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 가운데 팔짱 낀 이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오른쪽 두번째가 왕 회장. [사진=화이슝디]

특히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馬雲)과의 우정은 형제 이상이라고 한다. 그가 자금난으로 고생할 때마다 마윈이 손을 내밀었다면 어느 정도의 사이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는 리더십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영을 동생 왕중레이에게 맡겨놓고 대외 업무를 총괄해도 회사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인징메이(尹京美) 사장은 “그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하나 군인 집안에서 자랐다.

군대도 어린 나이에 갔다 왔다. 아마 이런 배경이 강력한 리더십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면서 그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제 막 60대에 접어들었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해야 한다.

그 역시 은퇴와는 담을 쌓은 듯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화이슝디가 진정한 의미의 중국판 워너 브러더스가 될 날도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