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짜기' 김홍도作,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리 짜기' 김홍도作,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자리 짜기>는 조선 후기의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그린 풍속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인《단원풍속도첩》에 포함되어 있는데 자리를 짜고 있는 아버지, 물레질을 하는 어머니, 글을 읽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부모들은 실을 잣거나 자리를 짜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며, 자식은 나무 가지 하나를 들고 문장을 짚어 가며 글을 읽고 있다.

넓은 깃에 짧은 고름이 달린 흰 저고리와 잔주름이 잡힌 담청색 치마를 입은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물레로 실을 뽑아내는 중이다.

그림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렇게 물레질을 통해 뽑아낸 실로 어머니는 옷감도 짰을 것으로 보인다.

실을 뽑거나 옷감을 짜는 일은 조선 시대에 여인들이 가족들을 위해 옷을 만들던 작업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했던 노동 가운데 하나였다.

고드랫돌을 앞뒤로 옮겨 가며 열심히 자리를 짜고 있는 아버지는 머리에 상자 모양의 사방관(四方冠)을 쓰고 있다.

사방관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평상시에도 예를 갖추기 위해 집안에서 썼던 관모인데, 사방관을 착용한 것으로 보아, 자리를 짜고 있는 아버지의 신분이 양반임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잠방이 형태의 상의만 입고, 아랫도리는 벌거벗은 채 나뭇가지로 책을 짚어가며 글을 읽고 있다.

아이의 차림새만 봐서는 그림 속 배경이 더운 계절이었는지, 아니면 글자를 읽을 정도로 다 큰 아이에게 조차 옷을 제대로 갖춰 입히지 못할 만큼 가난한 형편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든지 자식에게 글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아이가 성장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라 궁핍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라는 가족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양반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을 하여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그림 속 부모의 모습에서 관직에 나가지 못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조선 후기의 가난한 양반들의 사정을 알 수 있다.

토지와 노비가 없는 양반들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지만, 대부분은 육체적 노동을 기피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천한 일이라 여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반들이 호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자리 짜기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자리를 짜는 일은 실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양반의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김낙행(1708~1766)의 문집인 『구사당집(九思堂集)』에는 자신이 부인의 종용에 따라 자리 짜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마침내 자리 짜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 일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게 되더라도 분수에 맞는 일이니 괜찮겠다고 쓴 「직석설(織席設)」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관직에 나가지 못한 가난한 선비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시골 사람들의 농담에 이르기를 “시골 선비가 젊어서는 과거 문장을 익히다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풍월(風月)을 일삼고, 또 조금 늙으면 자리 짜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라고 하니, 이는 대개 천시하고 모욕하는 말이다. 선비다운 바른 풍모에서 멀어지고 품격에 손상됨은 자리 짜는 일이 가장 심하다. (···)

사람이 이렇게 일생을 마친다면 참으로 서글퍼할 만하다. 그러나 또한 그 분수를 따랐을 뿐이니, 느닷없이 비난하고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

이 일을 하여 나에게 보탬이 되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일없이 밥만 축내지 않음이 첫 번째이다. 쓸데없는 출입을 줄임이 두 번째이다. 한더위에 무덥고 땀 흘리는 것을 잊고, 대낮에 곤히 잠자지 않음이 세 번째이다. 마음은 근심 걱정에 묻혀 있지 않고, 말은 지리하게 늘어놓을 겨를이 없음이 네 번째이다. 완성이 되면, 정밀하게 짠 것은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거칠게 짠 것은 내 몸과 처자식에게 깔아 주며,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하게 해 주고 남은 것은 나처럼 빈궁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음이 다섯 번째이다.

- 김낙행, 직석설」, 『구사당집 』 8권, 한국고전번역종합 DB, http://db.itkc.or.kr/

이 작품 역시 <단원풍속도첩>에 들어있는 다른 풍속화처럼 배경이 그려져 있지 않아 인물들에게 보는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데,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에서 현장의 생생함이 전해진다.

김홍도는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이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여 자리를 짜는 광경을 묘사하였다.

백남주 큐레이터.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썹을 두 쌍으로 그렸는데, 이는 눈썹의 위치를 수정한 후 처음에 그린 것을 지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해 김씨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산수화·인물화·도석화·풍속화·영모화·화조화 등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력,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구사당집(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http://db.itkc.or.kr/)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조선 풍속사1-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강명관, 푸른역사, 2016)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이태호, 학고재, 1996)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 편(국립민속박물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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