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강연하는 차오더왕 회장. [사진=푸야오유리]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강연하는 차오더왕 회장. [사진=푸야오유리]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일컬어진 중국은 지금은 글로벌 투자 대국으로 손꼽힌다.

차이나 머니가 흘러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저우추취(走出去. 자본의 해외 진출)라는 말도 생겨났다.

지난 세기 말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슷한 무렵 마치 미래를 예측하기라도 하듯 저우추취에 나선 기업이 있었다.

이 선구자적 기업이 바로 세계 2위의 자동차유리 생산 기업인 푸야오(福耀. 이하 푸야오)유리다.

또 이 푸야오를 이끌고 외자를 끌어오는 것이 애국이었던 당시만 해도 미친 짓에 가까운 저우추취를 실현한 인물이 창업자 차오더왕(曹德旺. 74) 회장이다.

때문에 한마디로 그를 표현하면 저우추취의 선구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향후 상당 기간 여타 기업인들과 다른 혜안을 가진 선각자로 평가받을 그는 1946년 푸젠(福建)성 푸칭(福淸)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손꼽히지만 원래 그의 집안은 자본가 계층이었다.

아버지가 국공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세기 40년대 말에 지금도 상하이(上海)에서 내로라하는 융안(永安)백화점의 주주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시국이 혼란했던 탓에 그의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한 후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오르는 선택을 했다.

만만치 않은 재산과 가족을 각각 배 한 대씩에 나눠 실은 채였다.

만약 이때 집안의 재산이 무사히 고향으로 옮겨졌다면 그의 인생은 아예 달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다른 길을 가도록 시련을 안겨줬다.

재산을 가득 실은 배가 그만 난파되면서 그의 가족이 거의 알거지가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간단치 않았다.

초등학교를 9살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그것도 채 다니지 못하고 졸업을 앞둔 14살에 중퇴를 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담배와 과일 장사, 자전거 수리와 버섯 재배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 생활은 그의 나이 30세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다 바로 이때 푸칭시 가오산(高山)진 소재의 유리 공장에 취업하면서 그의 인생 일대의 전기가 마련된다.

그는 그 공장에서 유리 제조업이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사업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이듬해에는 15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갈고 닦은 장사 기질을 발휘하는 거보를 내디뎠다.

지금 가치로 따질 경우 100만 위안(1억7000만 원) 정도 되는 거금을 투자, 유리공장을 세운 것이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수도 계량기용 유리 생산에 집중했던 사업은 그야말로 불이 나도록 잘 됐다.

그는 더 큰 꿈을 꾸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은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자동차용 유리 생산이었다.

그는 1985년 핀란드에서 관련 설비를 도입한 후 연구를 시작했다.

곧 자체 개발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사업은 대박이 났다.

그는 순식간에 대륙의 자동차용 유리 시장을 평정, 유리대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1996년에는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외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적으로 몇 단계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도 도래했다.

구세주는 프랑스의 글로벌 자동차유리 제조업체인 생고뱅이었다.

이렇게 해서 푸젠성에는 생고뱅과의 합작 기업인 완다(萬達)자동차유리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

그는 내친 김에 2001년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설비 투자라는 행보에도 나섰다.

2017년에는 다시 미국에 10억 달러를 투자,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현재 그의 푸야오유리는 2019년을 기준으로 연 매출액 250억 위안(元.4조25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순 이익도 매년 20억 위안 전후 올리고 있다.

업계 중국 1위, 세계 2위의 자동차 유리 전문 기업이라는 훈장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푸야오유리의 위상은 협력사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토종 자동차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차를 비롯한 폴크스바겐, GM, 포드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고객으로 있다.

공장에서의 차오더왕 회장. 70세가 넘었는데도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 [사진=푸야오유리]
공장에서의 차오더왕 회장. 70세가 넘었는데도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 [사진=푸야오유리]

일반인이라면 은퇴할 나이인 그의 성공 비결은 크게 대단할 것은 없다.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혜안을 꼽을 수 있다.

자동차 유리에 꽂힌 것이나 저우추취를 중국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한 것만 봐도 진짜 그렇다고 해도 좋다.

여기에 불교 신자다운 청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도 경영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이는 평생 사업을 하면서 뇌물 한 번 줘본 적이 없다는 그의 고백이 잘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누적 기부 액수가 무려 60억 위안을 바라보는 나눔의 정신은 더 말할 것이 없다.

2만5000여 명에 이르는 종업원들과 협력사 임직원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의 성공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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