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팔로리냐중고등학교 건설 현장을 찾은 일행들.
대건팔로리냐중고등학교 건설 현장을 찾은 일행들.

[글=이춘희 대건28봉사단장, 사진=이수형]

6. 팔로리냐 학교건립 현장(2020. 1. 20. 월)

04:30경, 이담이 설정해 둔 알람에 눈을 뜬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밖은 아직 캄캄한데,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밖에는 사업상 전화하는 진중득의 목소리가 바쁘다.

박득채와 김희수의 방은 아예 병원이다.

진중득과 김희수, 이수형이 돌아가며 박득채에게 몸을 맡긴다.

이담의 아침 명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밖에 나와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병원에 들러보니 우리 방에 비하면 이건 호텔이다. 신축한 방인가 보다.

계란프라이에 아프리칸 커피를 곁들인 아침식사는 단출하다.

아프리칸 커피는 커피에 우유를 태운 것이다.

그냥 밀크커피라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아프리칸 커피라 하는지 모르겠다.

밀가루를 구운 짜바티를 주문한 사람은 3명이다.

김 선생은 서빙하는 대로 먼저 나온 짜바티를 먹는다.

양이 많다며 아직 짜바티 나오기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몫도 곧 나올테니 괜찮다며 굳이 사양한다.

어쩔 수 없이 김 선생은 많아 보이는 짜바티를 꾸역꾸역 먹는다.

그러나 기다려도 나머지 2인분 짜바티는 나오지 않는다.

독촉하니 이미 다 나왔단다.

3인분 3장이 한 접시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것을 김 선생이 자기 몫으로 알고 혼자 먹은 것이다.

김 선생 고생했다.

정붕진이 살고 있는 굴루의 베터 월드(Better World) 사무소 입구.
정붕진이 살고 있는 굴루의 베터 월드(Better World) 사무소 입구.

오늘 일정은 정붕진이 살고 있는 굴루(Gulu)의 베터 월드(Better World) 사무소를 방문하고, 숙소인 아주마니(Adjumani)에 있는 호텔에 일단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고, 난민촌이 있는 팔로리냐(Palorinya)로 가서 학교 건립현장을 둘러본 후, 다시 아주마니로 돌아와 호텔에 투숙할 예정이다. 

건립현장에서는 교문현판 위치를 확정하고, 난민촌도 돌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학교로 가서 준공식 행사에 참석할 것이다.

07:30에 숙소를 출발하니 비교적 느긋하다.

굴루는 25만 인구의 비교적 큰 도시다.

관공서와 병원, 유치원 등이 밀집한, 비교적 안정된 지역에 베터 월드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넓은 마당과 사무실 건물은 철책으로 구분되어 있고, 마당에는 큰 개 두 마리가 잭 프룻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아래 매여 있다.

집안에는 우간다 지부장 정 목사의 사무실과 직원 사무실이 구분되어 있다.

정직원은 정 목사뿐이고, 단기계약직 2명에, 현지직원 4명이 일하고 있단다.

정붕진 목사가 살고 있는 글루(Gulu) 시의 메인 마켓 앞 시장.
정붕진 목사가 살고 있는 글루(Gulu) 시의 메인 마켓 앞 시장.

메인 아켓(main market) 앞은 넓고 혼잡하다.

남수단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2016년 개통되었는데, 40km를 더 가면 남수단 국경이란다.

그러나 팔로리냐는 어티악(Atiak)이란 마을에서 죄회전하여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한다.

먼지 가득하고 덜컹이는 도로변에는 군데군데 숯을 담은 자루더미가 늘어져 있고, 불이 났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산도 없고, 하천도 없고, 오직 평지만 이어질 뿐이다.

정 목사는 매주 1∽2회 난민촌을 오가는데 덜컹이는 충격으로 허리가 아파 한때 다리가 마비된 적도 있다고 한다.

겪어보니 충분히 이해된다.

도로변에는 우리나라 목사님이 운영한다는 교회 겸 학교도 보이고, 한인 선교사가 운영한다는 학교도 보인다.

일행들이 머룰리 학교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일행들이 머룰리 학교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점심을 해결하려니 마땅한 장소가 없다.

마침 도로변에 머룰리 학교(Muruli P7 School)이 보인다. 방학 중이라 건물 처마에 가스 불을 피우고 라면을 조리하려니 한 주민이 다가와 건물에서 하지 말고 마당 나무 아래서 하란다.

맞는 말이다.

둘러보니 학교는 미국인들이 세워준 것이다.

꼬마 녀석 둘이 멀리 학교 교실에서 관심을 표한다.

과자라도 하나 주려니 혹시 다른 애들이 몰려올지 모른다며 떠날 때 주잔다.

떠나면서 찾아보나 어디가고 없다.

1시간의 점심 식사는 컵라면과 김치찌개에 햇반 5개다.

아주마니(Adjumani)는 작은 국경 마을이다.

WFO(국제식량기구) 같은 UN기구도 보이고,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월드비전(World Vision) 같은 NGO 사무실 간판도 보인다.

호텔은 제법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짐 가방을 내리고, 손 여사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학교 현장으로 향한다.

작은 보트로 나일강을 건너는 일행들.
작은 보트로 나일강을 건너는 일행들.

배로 나일강을 건넌다.

큰 정기선을 타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작은 보트(택시)를 타기로 한다.

구명조끼도 없이 보트를 타고 그 넓은 나일강을 건너려니 자못 불안하다.

건너편에는 지프 두 대가 대기하고 있다.

지프에 분승하여 먼지 나는 시골길을 달린다.

도로변에는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물을 길어 가는 중인가 보다. TV에서 본 익숙한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다. 난민촌으로 향하는 길에는 산도 있고, 돌도 있다.

우간다는 난민에 대해 개방정책을 펴고 있는데, UN에 난민촌 지역을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는다고 한다.

UN이 도로 등 기반시설을 해 주고, 난민촌 사람들이 우간다 물 품을 소비해 주니 우간다로서는 이래저래 이익인 것 같다.

우간다에 거주하는 200여만 명의 난민 중에서 남수단인은 120여만 명이란다. 정붕진이 사역하는 부드리(Budri)난민촌에는 3300여 가구가 있다고 한다.

아주마니에서 3시간 여 걸려 도착한 팔로리냐에는 넓은 초등학교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돌아가니 중고등학교 공사현장이 보인다.

파로리냐로 가는 길에서 만난 물소 무리.
파로리냐로 가는 길에서 만난 물소 무리.

담장 없는 교문이 서 있고, 건물 4동이 나란히 두 줄로 들어서 있다.

행정실과 과학실이 각 1동, 강의실이 2동(교실 4개)이다.

많은 인부들이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건축자재들이 차지하고 있다.

내일까지 완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준공식 날짜가 내일로 잡히니 부랴부랴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준공식이 문제가 아니라 2월 초 개학 전까지는 마쳐야 할 텐데.

공사장에 기계 장비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하다 보니 진척이 어렵나 보다.

멀찍이 떨어진 나무 뒤로 화장실이 건립중이다. 너무 먼 것 아닌가?

교문에 모여 현판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논의한다.

'DagunPalorinyaSecondary School' 아래에 한글로 '대건팔로리냐중고등학교'라고 적혀있다.

부착해야 할 지점이 곡면이어서 부득이 교문을 좀 파내야 한다.

그러나 벽돌로 쌓은 교문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을 듯하다.

학교 현판을 부착하는 교문 다른 편에는 건립 취지문과 후원자 명단을 나란히 부착하기로 한다.

아직 공사 중이어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곧 완공될 것으로 보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정 목사 안내로 난민촌을 둘러보기로 한다.

프로골퍼 최경주의 후원으로 베터 월드가 건립한 초등학교를 둘러보니 제법 크다.

급식하는 조리소도 넓다. 

방학 중이라 조용하다.

학교 뒤로 난민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코이카가 난민촌에 파 준 우물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코이카가 난민촌에 파 준 우물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뒷 언덕 위에는 베터 월드가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급수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구멍을 뚫어 높은 지대로 물을 끌어 올린 다음, 난민촌 12개 지점에 지하수를 공급한단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에도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난민촌 중앙 지점에서 어린이들이 모여 펌프질로 물을 푸고 있다.

어릴 적 고향집에 있던 펌프가 생각난다.

대부분 맨발이다.

박득채는 이 맨발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건강에 좋다고 하지나 않을까?

뒷산을 넘어 10km 정도 가면 남수단이라고 한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에서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떠올린다.

같은 지구상에 살면서 사람 사는 모습이 어찌 이리 다를까.

이 사람들의 잘못일까, 무슨 원죄가 있어서일까, 전생의 업보일까, 숙소로 돌아오는 마음이 무겁다.

수단은 원래 북쪽은 아랍계, 남쪽은 흑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집트와 영국이 남북을 분할 통치했다고 한다.

수단이 독립한 후에도 인종과 언어의 차이로 갈등이 심하다가 2011년 남수단이 독립하였으나 국제사회가 예상한 대로 곧 바로 종족 간 내전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정기선을 놓치고 다시 보트를 탄다.

불안감은 덜하다.

나일강에서 바라본 노을.
나일강에서 바라본 노을.

나일강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노을은 아름답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

진중득은 발이 불편한지 절뚝인다. 괜찮아야 할 텐데.

아주마니 호텔 (Adjumani Hotel)

호텔로 돌아와 방을 배정한다. 1인 1실이다.

손 여사는 이 호텔이 최근 건축되어 깨끗하다고 지인으로부터 추천 받았단다.

배정된 방은 모퉁이의 30호실이다.

비교적 넓고 깨끗하다.

모기장이 쳐져있는 것은 어느 호텔이나 똑 같다.

그런데 방 앞뒤로 출입문이 2개다.

왜지? 위험이 있을 때 도망가기 쉽도록 해 놓은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외진 방인데다가 옆방 28호에는 결코 나보다 용감하다고 할 수 없는 이수형이 있다. 별 도움이 못될 듯한데.

정 목사 부부가 묵는 방 앞마루에 모여 라면과 햇반으로 저녁을 준비한다.

김희수와 손 여사의 합동 작품이다.

망고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정 목사는 내일 준공식 행사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한다.

우간다에서는 우리와 달리 중요한 사람일수록 나중에 인사하는데, 후원자 대표로 마지막에 인사하란다.

인사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하고 통역하도록 할지, 어설프지만 직접 영어로 할지 갈등이 생긴다.

지금까지 대중들 앞에서 영어로 연설해 본 경험이 없어서 말이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회갑 된 나이에 무엇을 못하겠나.

어두운 길을 따라 방으로 오려니 혹여 뱀이라도 밟지 않을지 슬며시 걱정이다.

모기장 안에 작은 모기장을 치고, 에프 킬라 뿌리고, 모기향을 피우고 잠을 청한다.

‘앵’하는 모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새벽 4시.

전등불을 켜고 에프 킬라를 살포한 다음,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니 모기 한 마리는 모기장에 붙어있고, 한 마리는 침대 위에 앉아 있다.

날랜 장풍을 휘두르니 붉은 피가 손바닥과 침대보를 적신다.

이 붉은 피가 부디 내 몸에서 나간 것이 아니기를.

눈을 감고 온 몸의 신경을 모아 보아도 모기에 물린 감각은 없다.

집사람은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했다고 어제 카톡을 보냈던데 내 피는 아닐 거야.

한 바탕 설치고 나니 잠은 오지 않고, 충전을 하려해도 전압이 낮아 충전이 되지 않는다.

정원의 전등도 깜박깜박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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