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론 필립 드 로칠드사(社)의 6대손 이야기 (1)

와인 재벌가의 후계자 양성법과 6대손의 생각 엿보기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우리는 가장 싼 제품도, 가장 비싼 제품도 그 등급 안에서 최고를 만들려고 100년을 발버둥쳐왔다"

현재 이 와인 제국을 이끌고 있는 6대 총수인 필립 세레이 드 로칠드(Philippe Sereys de Rothschild) 회장이 자신의 가문이 최고의 지위를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필자도 배석했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천년 기업은 사업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계지만 최소한 100년이라도 기업을 유지하려면 어떤 후계자를 양성하느냐, 즉 후계자가 가진 철학과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의 적응력이 관건이 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를 통해 로칠드 가문의 후계자 양성법과 그의 철학과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2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필자는 그의 동생인 줄리앙(Julien de Beaumarchais de Rothschild) 남작과 약 8년 전인 2012년 5월의 칸 영화제에서 만나서 레드 카펫을 함께 밟은 추억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그 집안의 장남이면서 세계적인 와인 기업의 총수인 그의 철학이나 인품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도 있어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참석했었다.

그의 방한시 갈라 디너 행사를 위해 전시된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의 와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 컷을 찍었다. [사진=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그의 방한시 갈라 디너 행사를 위해 전시된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의 와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 컷을 찍었다. [사진=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우선 그의 개인 프로필을 통해 이 가문의 후계 양성 방법을 알아보자.

부유한 귀족 집안의 장남이니 당연히 대학 졸업 후 쉽게 가업을 물려받았을 것 같지 않은가?

대부분의 우리나라 재벌 기업처럼 실장 정도에서 출발하여 3~5년만에 임원을 거쳐 부회장으로 올라가서 2인자의 자리로 직행하는 코스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유명 배우인 자끄 세레이(Jacques Sereys)다. 젊었을 때 배우이기도 했던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인 필립 드 로칠드(Philippe de Rothschild, 1902~1988)의 와인 사업을 물려받아 회사의 회장직을 역임한 필립 드 로칠드(Philippine de Rothschild, 1933~2014)다. 그는 둘 사이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그랑프리 카 레이서, 극작가, 시인, 영화 연극 제작자이자 와이너리 병입(샤토 병입)제도를 최초로 만들고 1855년 제정된 61개의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의 와이너리들 중에서 유일하게 118년 만인 1973년에 2등급에서 1등급으로 변신한 그 유명한 샤토 무통 로칠드의 오너이자, 전세계에서 보르도 와인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는 무통 카데를 만든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이 그의 외할아버지인 것이다.

그런 집안의 장남인 그가 보르도(파리도 아니다)에서 경영학 전공으로 대학을 마친 후 미국 하바드 대학원에서 MBA를 한다.

그리고는 뉴욕의 유명 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2년간 근무한 후 프랑스로 돌아가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럽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에서 CFO로서 재무 분야의 경력을 쌓는다.

그후 에너지와 IT 분야의 회사를 설립하고 또한 신기술사업에 투자하는 금융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는 7대 조상인 네이든 마이어의 은행 설립의 DNA를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2012년에는 큰 자선기금(Hattemer Foundation)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15년에는 2014년에 작고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3남매가 ‘필립핀느 드 로칠드 회사 기금/기업재단(Philippine de Rothschild Corporate Foundation)’을 만들어 자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7년부터 그는 이 재단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이렇게 와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 사업만으로도 바쁜 와중에 가문이 샴페인 사업에 진출하는 데에 상당한 기여도 하고 와인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장남으로 가문 전체를 틈틈이 관장하기도 해왔다.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받아서 그런 지 할아버지처럼 다재다능한 면을 보인다고나 할까?

2014년 어머니가 작고하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와인 사업 분야는 맡아서 했으니 본인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오랜 기간 세상을 더 폭넓게 보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자기 가문의 메인 사업을 떠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후 다시 돌아와 가문 전체의 수장을 맡게 하는 이들의 승계 전략(?)에서 이 가문이 왜 로칠드 가문인지를 알게 해준다고나 할까?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상과는 달리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미소가 일품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회사의 와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상황에서 사진작가가 요구하는 표정이나 자세보다 더 굉장히 익살스럽게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자발적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해주는 것은 물론 인터뷰 내내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넘치며 젠틀한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스타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 그의 철학과 생각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자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았다.

Q. 한국은 처음 방문인가?

A. 공식적으로는 처음이다. 비공식으로 이번처럼 1박 2일로 한번 짧게 다녀간 적이 있기는 하다.

Q. 세계적인 최고 수준의 유명 와인 기업으로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A. 세계에서 스트롱(strong) 포지션을 달성하기도 어렵지만 그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우리는 1853년 고고조 할아버지(나다니엘 남작)가 와이너리를 구매한 이후 지금까지 6대째인데 '디테일에 고민하면서 고품질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미지를 지켜오고 있다.

* 필자의 생각 : 겸손하게 그리고 금융계통의 경력자라 그런 지 세계 최고라는 표현 대신에 스트롱 포지션이라는 용어로 살짝 외교적(?)인 수사로 바꾸어서 받는다. ‘같은 의미를 이렇게 겸손하게 품격있게 전하는구나’라고 감탄이 절로 난다.

Q. 요즘 내추럴 와인이 유행인데 그에 대한 생각은?

A. 어느 와인이든 중요한 두 가지 컨셉이 있다. 하나는 클린(Clean)이고 다른 하나는 투명성(transparent) 이다. 우리가 노력해서 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낸 것처럼 그들도 경쟁을 통해 언젠가는 좋은 와인을 만들 것이라고 본다.

* 필자의 주석 및 생각 : 내추럴 와인은 21세기에 들어 포도재배는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양조는 최대한 인위적인 인간의 간섭은 배제하면서 만든 와인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19,20세기 이전의 와인 제조방식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와인의 최대 약점은 매년 동일한 수준의 맛과 향이 나는 와인을 생산하기가 쉽지 않아 빈티지별로 품질의 편차가 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내추럴 와인에 대해 ‘말도 안되는 넌센스’라는 한마디로 정리한 유명 컬트 와인 생산자(그는 실제로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보다 더 내추럴 와인스럽게 만들면서도 절대 내추럴 와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도 있다.

필립은 같은 의미의 말을 에둘러서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클린과 투명한 와인은 결국 농법과 양조과정 전반에서, 그리고 그 결과물인 와인의 품질면에서 자신과 남에게 정직한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 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와인 자체가 클린하고 투명한 것을 넘어서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아직은 멀었다’는 간접적인 의미일 것이다.

Q. 이번 방한 목적 중의 하나가 칠레 자회사가 만든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의 완전한 혁신을 소개하기 위한 것도 포함된다고 들었다. 여기서 혁신은 무엇인가?

A. 칠레는 떼루아가 좋다.

에스쿠도 로호는 알마비바(Almaviva) 합작 성공 직후 발견한 아주 좋은 와이너리이다. 그런데 그 떼루아를 아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오퍼스 원(Opus One)은 50년, 에스쿠도 로호는 20년 걸린 작품이다.

현지의 떼루아를 잘 반영하여 해당 품종의 특성을 극대화시켜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인데 이것이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연구 개발하여 경험이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 필자의 주석 및 생각 : 알마비바는 바론 필립 드 로칠드사와 칠레 최대 규모의 콘차이 토로 사가 합작하여 만든 칠레 최고의 프리미엄 와인 중의 하나이고 오퍼스 원은 이 가문과 미국 와인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가 합작하여 만든 미국 최초의 컬트 와인이다. 그리고 에스쿠도 로호는 이 가문이 칠레에 직접 투자하여 생산하는 와인인데 이 에스쿠도 로호는 20년만인 2018 빈티지부터는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고품질 와인이 되었다. 신대륙(New World) 칠레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프렌치 스타일의 칠레만의 맛과 향의 신세계를 여는 혁신적인 에스쿠도 로호를 만든 것이다.

Q. 좋은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A. 아주 좋은 질문이지만 또한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우선 좋은 떼루아(와인이 만들어지는 토양, 기후 조건들을 통틀어 일컫는다)를 발견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와인은 과학과 예술의 조화의 결과물이고 경험과 실험 및 탐험(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잘 융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좋은 와인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려면 사업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거기에 걸맞는 어느 정도 충분한 생산량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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