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성 소재의 HNA그룹 본사 전경. [사진=HNA그룹]
하이난성 소재의 HNA그룹 본사 전경. [사진=HNA그룹]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 기업들은 대체로 빚에 대한 불감증이 있다.

빚을 끌어 모으는 실력이 바로 기업인들의 경영 능력의 지표가 될 정도라고 해도 좋다.

빚에 관한 한 공룡에 가까운 부동산 기업들을 포함한 중국 대기업들의 평균 부채 비율이 기본 500% 전후에 이르는 것은 다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마불사라는 말은 잘 통했다.

중국 당국이 공룡 기업들이 쓰러질 경우에 직면할 충격파를 우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도록 방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중앙 정부 자체가 빚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더 이상 차입으로 연명하려는 기업들을 수수방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과감하게 손을 떼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고도 있다.

지난해 과도한 부채로 쓰러진 부동산 기업만 최소 1000여 개 이상에 이르는 현실만 살펴봐도 이 사실은 잘 알 수 있다.

최근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에서 더 나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에 따른 타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항공복합기업 하이항(海航. HNA)그룹이 곧 당할 횡액만 봐도 분명해진다.

조만간 본사 소재지인 하이난(海南)성에 인수돼 공중분해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인수된 이후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주력 기업인 하이난항공 등이 매각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실상 해체된다고 보면 된다.

왕젠 전 회장. 부채 차입을 통한 경영 위기에 부담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진=HNA그룹]
왕젠 전 회장. 부채 차입을 통한 경영 위기에 부담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진=HNA그룹]

중국 재계 정보에 밝은 소식통의 4일 전언에 따르면 HNA그룹은 1993년 민항국의 직원이었던 왕젠(王健)과 천펑(陳峰)이 회사를 뛰쳐나와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고의 성을 울렸다.

출발은 별 볼 일이 없었다.

고작 여객기 4대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후 HNA그룹은 막대한 차입을 통한 소위 규모의 경영을 통해 엄청나게 몸집을 키웠다.

이로 인해 왕젠과 천펑은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4위 민영 항공사인 하이난항공을 포함, 톈진(天津), 홍콩항공 등 14개 항공사와 약 9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사업도 항공 외에 부동산, 호텔, 물류 등의 분야로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2019년 말을 기준으로 총 자산만 1조2300억 위안(元. 209조 원)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부채도 빛의 속도로 폭발했다.

심하게 말하면 빅뱅이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았다.

2020년 2월 기준의 순 부채만 7500억 위안에 이르게 됐다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표준으로 할 때 60% 대인 부채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자산 속에 들어 있는 빚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이를 자산에서 제외할 경우 국제 표준의 부채 비율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400% 전후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영 상태가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좋지 않나 보인다.

하기야 그랬으니 최근 들어 직원들 임금도 밀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나중 회장으로까지 셀프 승진한 왕젠이 2018년 7월 프랑스의 한 관광지에서 실족사한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비관한 나머지 사고를 가장한 자살이라는 설이 아직도 파다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주력 업종인 항공 사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치명타를 입은 것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쳤다.

파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지난 달 중순까지만 해도 중앙 정부가 인수, 구조조정한 후 주력 기업을 매각하는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흘러나온 바 있다. 그

러나 최종적으로 인수 주체는 하이난성 정부로 최종 확정됐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HNA의 부채 규모가 엄청난 만큼 구조조정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완전 빈껍데기는 아닌 만큼 구조조정이 잘 이뤄진다면 주력 기업들은 나름 상당히 매력적 매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곧 파산에 직면할 것으로 보이는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베이다팡정(北大方正)과 이번 HNA 사태에 비춰볼 때 이제 중국에서 대마불사라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될 듯하다.

앞으로는 대기업의 도산이나 파산이 급증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중국 재계의 유행어가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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