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뒤 원인규명에 수개월 걸려 국경차단 의미없어...지구촌 협력해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다. 펜데믹(세계적 유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인명 피해가 2002년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국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지구촌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가의 방역 능력과 리더십에만 기댈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국들이 방역에 실패하는 이유를 짚어 보고, 각국 경제 주체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살핀다. /편집자 주

사스와 코로나19의 공통 병인인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관측한 모습. 왕관 모양의 돌기체가 있어 코로나로 명명되었다. [사진=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위키피디아]
사스와 코로나19의 공통 병인인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관측한 모습. 왕관 모양의 돌기체가 있어 코로나로 명명되었다. [사진=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위키피디아]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지난 해 12월 31일 중국 관영 CCTV는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발생했다"고 보도한다. 당시 방송은 "역학조사 결과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보이며 전염 사례나 의료진 감염도 없다"며 별 것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정작 놀란 쪽은 서방 세계였다. 중국 당국이 지난 2002년 사스 발생 시 보인 태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중국, 매번 숨기려다 화 키워

지난 2002년 11월 16일로 돌아가 보자.

중국 남방 광둥성 포산시 한 병원에서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확인됐다. 당시는 중국 전역이 전날 폐막된 중국공산당대회 후속 작업으로 분주한 때여서 이 일은 묻혔다.

해를 넘겨 2003년 1월 27일 광둥성 보건국이 감염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상부의 공식 대응은 없었다. 중국 방역당국은 "해당 감염증이 인간 대 인간으로 전파된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답했다. 

1월 31일 한 환자가 치료받는 와중에 광저우 시내 병원을 감염시켰다. 2월 21일 그에게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산대 교수가 홍콩을 방문, 자신이 머문 메트로폴 호텔을 감염시켰다.

후일 최초의 사스 슈퍼 전파자와 전 세계적 사스 유행의 시발점으로 기록될 사건들이다.

중국 정부가 방관하는 사이 환자는 중국 남부를 휩쓸면서 동남아에 이어 서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2003년 3월 12일 WHO에서 파견된 감염증 전문가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가 베트남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냈고 이 소식이 세계에 타전되었다.

우르바니 박사는 병원체에 희생되었지만 이렇게 해서 사스 바이러스가 세상에 알려졌다.

외견상 인플루엔자와 닮았지만 사스는 주로 근거리 비말 감염으로 전염되면서 중증 폐렴을 동반해 전파율과 치사율이 모두 높았다.

당시 홍콩의 한 아파트 주민 전원이 사스에 감염되었는데 조사 결과 바이러스에 오염된 세탁물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중국 정부는 주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시키며 대응에 나섰고 4월 들어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이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7월경 사스는 진정되었지만 그동안 중국 본토에서 5300여명이 감염되고 39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계적으로 8069명이 감염되고 775명이 사망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대응은 코로나19 전파 과정에서 데자뷰처럼 반복되었다.

2월 2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방역마스크를 쓴 남자가 복(福) 자가 그려진 폐쇄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방역마스크를 쓴 남자가 복(福) 자가 그려진 폐쇄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우한 사태, 한발 늦은 국가 개입

2019년 12월 1일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보고되었고 12일 그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임이 확인되다.

하지만 우한시 정부는 춘제를 앞두고 개최되는 만인연(萬人宴) 행사를 막지 않았다. 18일 4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군데서 설맞이 식사를 하는 등 거리로 시장으로 몰려나와 축제를 즐겼다.

그 사이에도 환자는 계속 늘자, 해가 바뀐 2020년 1월 1일 WHO가 개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답변을 듣지 못했고 병원체도 확인하지 못했다. 

우한시가 감염 진원지로 알려진 화난수산시장을 폐쇄했지만 1월 5일 환자는 59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9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 날, 우한 당국이 "폐렴의 원인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발표했고 WHO도 "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의 변종"이라며 이를 확인했다.

1월 15일 우한시는 "아직까지 사람 간 전염 증거는 없다"는 짤막한 입장만을 내보냈고 안심한 중국인들은 최대 명절인 춘절을 맞아 수억 명의 대이동을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보도 통제가 한층 강화된 가운데 17일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MRC세계전염병분석센터 연구팀은 우한 시내에서만 1723명 이상이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20일 확진자는 198명으로 늘었고 그 범위가 베이징·선전 등 중국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그제야 중국 정부가 반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질병 확산을 통제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중국 보건당국은 "우한 폐렴의 사람과 사람 간의 전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고 다음날 미국에서도 첫 환자가 발생했으며 북한은 중국 여행객의 입국을 중단시켰다. 

1월 22일 인민일보는 중국 내 확진자가 547명으로 폭증 추세이며 이미 17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우한 봉쇄령을 내려, 도시를 드나드는 모든 교통편을 중지시키고 시민의 시외 이동을 금지했다. 첫 환자 발생 67일 만에 내려진 조치였다.

1월 27일 한 편의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저우센왕(周先旺) 우한시장이 중국 관영 CCTV의 뉴스채널에 출연했다.

앵커가 정보를 늦게 밝힌 이유를 묻자 그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우한 폐렴을 을류 전염병에서 갑류 전염병으로 확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사진=은행나무 출판사]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표지. [사진=은행나무 출판사]

◇ '꽌시 문화' 취약성 극복해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박욱주 교수는 중국이 사스나 조류독감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마저 피하지 못한 것을 두고 "전염병의 원인을 주로 자연으로부터 찾다 보니, 인간 대 인간 감염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을 한사코 부인하다 상황이 악화되어서야 인정하는 실수를 반복해왔다는 것이다. 

성공의 요건으로 특수한 인간관계를 각별히 중시하는 특유의 '꽌시 문화'가 감염병에 대한 중국인의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샤먼대 이중톈 교수는 '단위'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직장이나 소속, 근무처를 뜻하는 단위라는 말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인들은 아는 사람끼지 만나면 "식사했냐" 하고 묻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면 "어느 단위에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 때 단위는 우선 '밥그릇'이다. 국영기업은 '철 그릇', 외자기업은 '금 그릇', 영세기업은 '질 그릇' 등의 식이다. 요컨대 좋은 단위일수록 나은 혜택이 보장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단위에 관심을 보인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라서 각급 지방정부는 상급 단위에 매우 의존적이며 일상적으로 금전, 물자, 원조를 요구한다.

상급 기관에서 조사가 나오면 "모두 경쟁하듯 울면서 하소연하는데,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이치를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더 크게 우는 사람에게 더 많은 '편의'가 제공된다."(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은행나무 출판사, 280쪽)

중국 사회가 이런 병폐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저우센왕 시장의 사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된 채 하선이 금지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일군의 노동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된 채 하선이 금지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주변에 일본의 노동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일본, 정권 연장 위해 '확진자 줄이기'

아베 정부는 이해하기 힘든 대처로 일본 국민을 감염 위협에 노출시키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일본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나왔다. 당시 확진자는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 남성으로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에 즉시 격리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인 랄프 바리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세계공중보건길링스스쿨 역학과 교수가 "이 감염자가 중국 화난수산물시장을 방문하지 않은 만큼, 사람 간 전염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해 파장이 컸다.

하지만 바리치 교수가 "사스에 비해 전염 확률이 낮아 확산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 말이 주류 언론에 널리 인용될 정도로 일본 사회의 경각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던 일본 사회를 단숨에 코로나19에 주목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일본을 출발한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했다가 1월 25일 홍콩에서 내린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2월 3일 총 3711명을 실은 이 배가 요코하마 항에 정박하여 선내 검진을 실시하여 10명의 양성 반응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밝혀진 확진자와 증상자를 제외한 모든 승객을 크루즈 객실 내에 머무르게 한 뒤 하선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가 의료진의 선내 진입을 막은 채 선별적인 진단만 허용한 데다 객실 서비스를 맡은 선원들에게 방호복을 지급하지 않는 등 방역까지 소홀히 한 탓에 선상 감염자는 날마다 늘어났다. 

"프린세스호를 바이러스 배양 접시로 만들었다"는 비난 속에서도 아베 정부는 28일간 하선을 막았다. 그 결과 하선이 완료된 3월 1일 선내 감염자 705명 사망자 6명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하선시에도 별도 격리 조치 없이 승객들을 귀가시켜 그들 중 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를 두고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이 "물 위에 고립시켜 버린다"는 의미의 미즈기와(水際) 정책이라는 매뉴얼로 대응했다고 비난했다. 외침 저지를 위해 사용된 군사 정책을 자국민에게 적용했다고 본 것이다.

아베 정부의 이상한 태도는 이후 방역 정책에서 거듭 나타났다. 올림픽 연기에 따른 재선 실패를 우려해 확진자를 의도적으로 줄이려 한다는 CNN의 의혹 제기가 그중 하나다.

5일(미국동부 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는 실제 감염자 규모의 극히 일부만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일본 내 일일 확진자 수가 30명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는 아베 정부가 고의적으로 검사량을 제한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확진자가 전국에 걸쳐 1천 명을 넘어 방역 실패라는 비난이 들끓자, 아베 정부는 돌연 사실상 입국 금지 조치를 의미하는 한중 입국 제한 조치를 취했다.

아베 정부의 노림수가 무엇이건 진실을 은폐하는 이와 같은 시도는 결국 국가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 피해가 자국민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애써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거주민 수백만 명에 대한 강제 검역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밀라노 중앙역에서 방역 마스크를 한 시민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북부 거주민 수백만 명에 대한 강제 검역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밀라노 중앙역에서 방역 마스크를 한 시민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탈리아, 형식적 대처로 '아노미' 내몰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확진자 수에서 한국을 앞지르며 무서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지난 8일 인구의 4분의 1에 적용되는 이동 중지 조치가 취해졌다.

이탈리아도 초기에는 다른 유럽 국가 못지않게 코로나19에 강력하게 대응했다. 1월 말 자국에서 첫 중국인 관광객 확진자가 나오자 중국 직항 노선을 전면 중단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과한 혐오를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문제는 서방 주요 7개국 중 처음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동참할 정도로 이탈리아 경제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이다.

섬유산업의 중심지인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8만명이 거주하는 것을 비롯 32만명의 중국인이 이탈리아 전역과 국내외를 오가며 경제활동에 종사한다.

이 때문에 중국 발 항공노선 봉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친 동양인 혐오로 방역 기피를 심화시켰다. 

그 결과 최초 확진자를 비롯한 슈퍼전파자의 감염 경로 추적에 대부분 실패했다.

국가의 판단 착오와 리더십 부재로 국민들이 아노미 상황으로 내몰리기에 이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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