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잘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
여러 가지 일을 다 잘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연예인을 하면서 사업을 병행하는 케이스도 없지 않다.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수십 개나 운영하는 자칭 경영의 귀재 황샤오밍(黃曉明. 43) 같은 이가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여성 중에서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확실하게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마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양미(楊冪. 34) 겸 엔터 회사 CEO가 아닐까 싶다.
데뷔 초기 한때 엑스트라 역을 전전했으나 각고의 노력으로 톱스타로 올라선 다음 지금은 당당하게 자싱(嘉行)미디어라는 엔터업체까지 경영하고 있으니 이렇게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1986년 베이징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양미는 2005년 명문 베이징영화학원 연기과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성공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해야 한다.
비록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아주 평범한 성적으로 들어간 학교 자체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천하의 예능 영재들이 우글거리는 스타들의 산실이었던 탓이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어릴 때와는 달리 뛰어난 비주얼이라는 장점도 없었다.
끼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왜 연기과에 지원했는지 동급생들이 기가 막혀 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내려 온다면 더 이상 설명은 사족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역 배우 경험을 발판 삼아 동기들보다는 빨리 2학년 때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촬영장에서는 늘 주연만 꿰차던 학교 선배 류이페이(劉亦菲)의 가방을 열심히 들어줬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에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정말 각고의 노력 끝에 주연을 따낸 드라마 ‘왕소군(王昭君)’의 대히트로 일거에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2012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양미공작실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녀의 사업가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유명 엔터 업체인 환루이스지(歡瑞世紀)와 합작으로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소시대(小時代)’ 등을 제작,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자신을 얻은 그녀는 아예 홀로서기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2014년 3월에는 자신의 매니저로 활동한 자오뤄야오(趙若堯), 쩡자(曾嘉) 등과 함께 300만 위안(元. 5억1000만 원)을 공동 출자, 진짜 하이닝자싱톈샤(海寧嘉行天下)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7개월 후에는 양미공작실의 이름을 자싱미디어로 바꾸기에 이른다.
이후 수년 동안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는 배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로 불리기를 더 원하는 그녀는 처음부터 사업을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동료들인 스타들을 대거 자신의 회사에 영입, 매니지먼트 사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현재 소속 연예인들의 면모는 정말 간단치 않다.
위구르족 출신의 대세 배우 디리러바(迪麗熱巴. 28)를 비롯해 중견 배우인 가오웨이광(高偉光. 37) 등 약 10여 명에 이른다.
양보다 질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녀의 회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영화 제작과 연예인들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한 지가 고작 6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잘 하는 것에 전력투구하는 양미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는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명 엔터 겸 게임 회사인 완메이스제(完美世界)가 그녀의 자싱미디어에 최근 5억 위안(元. 710억 원)을 투자, 지분 10%를 보유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자싱미디어의 가치가 최소한 50억 위안 이상이라는 얘기가 된다.
조만간 증시에 상장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경우 자싱미디어는 업계 1위 회사인 화이슝디(華誼兄弟)에 못지않은 업계의 거목으로 크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까 여겨진다.
톱스타와 경영인의 양수겸장 여걸 양미의 존재는 이제 업계에서는 부인 못할 현실이 됐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