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및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 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및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 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지난 9일 조선일보에 실린 조선칼럼 <청와대의 '짜파구리 헌정'이 보여준 것>이란 칼럼을 보고 깜작 놀랐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쓴 이 칼럼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며, 견강부회(牽强附會)이자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대통령 내외가 봉준호 감독 등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에 초청해 '짜파구리'를 깜작 대접한 것을 "문해력 부족"이라 꼬집는다.

문해력이란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 혹은 세상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을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파악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윤 교수가 문제 삼은 건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한 바로 그날 청와대에서 '희희낙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셰프가 만든 '짜파구리'를 먹었다는 것이었다.

윤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짜파구리의 영화 속 함의가 무엇이건 이를 먹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 오찬에서 그 영화의 감독에게 해당 메뉴를 제공하는 건 다른 문제다... 어안이 벙벙한 이 일은 행사 주최 측이 기생충이라는 영화, 그리고 거기 등장하는 짜파구리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문해력(literacy)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다."

이어서 윤 교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설명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선과 악,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정형화된 구분을 허문다. 영화 장면들은 겉보기에 선하고 순진하지만 차별 의식과 비정함으로 가득한 상위 계층의 행태를 비춘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을 상대로 문서 위조, 사기 행각을 서슴지 않고, 부자들이 가진 것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가난한 자들의 몰염치를 보여준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말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이 바보들아.'"

간단하게 말하자면 윤 교수의 주장은 '기생충'은 비정한 상위 계층과 몰염치한 가난한 자들을 동시에 보여 주었고, 영화 속 '짜파구리'가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상징물이며, '차별의식'과 '비정함' 혹은 '몰염치'로 가득한 자들이 그 영화의 함의도 모르고 '짜파구리'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문해력'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윤 교수의 칼럼은 우선 형식 논리에 어긋난다. 예단을 앞세우고 결론을 도출했다.

그의 칼럼은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사람들은 영화 '기생충'이 비판하는 대상 그 자체라는 전제하에 작성된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비판하는 영화 속 상징물로 식사를 하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윤 교수는 또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문해력 관점에서 이 정부의 불가사의했던 많은 일들이 설명된다. 상식을 벗어난 숱한 인사 실패,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 경제도 성장하게 된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 감상적 영화 한 편에 눈물을 흘린 탈원전 정서… 사례는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윤 교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실정(失政)을 편 청와대가 비판적 상징물인 '짜파구리'를 먹다니,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어?"

이게 바로 윤 교수의 문해력이다.

문해력이 세상을 이해하는 옳은 방법이라면 윤교수의 문해력은 편파성이 강한, 이해하기 힘든 '오해력'에 불과하다.

그날 청와대의 오찬은 영화사에 길이 기록될 쾌거를 이룬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축하하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먹었다. '짜파구리'는 영화 속 상징으로서의 음식이 아니라 축하연에 등장하는 '화제성' 음식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해독하는 것이 올바른 문해력이다. 

그날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고, 그 이후 확산 되었지만 당시의 시점에서는 그것까지 예상하여 행사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윤 교수도 그것은 인정하고 있다. 윤 교수는 그날 오찬 메뉴가 '짜파구리'가 아니라 한 연예인이 유행시킨 '유산슬'이었어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윤 교수는 칼럼을 이렇게 끝맺는다. 

하응백 문화에디터.

"그래서 분노와 탄식이 절로 새 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그토록 공격하던 이 정부의 재난 감수성이 이전 정부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분노, 아득하게 쌓여가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탄식이다... 이 비상한 시기,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이 '짜파구리 헌정 파티' 같은 감수성과 문해력에 이끌릴까 두렵다. 오직 과학과 팩트에 기반한 계획이 있기를 바란다. 침묵과 순응의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문해력을 앞세워 예단에 가득 찬 공격을 위한 공격, 비판을 위한 비판은 '과학과 팩트'가 아니다. 집권 세력의 정치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과학과 팩트'에 기반한 문해력이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문해력은 '차별의식'과 '비정함' 혹은 '몰염치'로 가득한 '오해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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