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 꾸준히 역설..."한국, 재정투입 여력 있고 실효성도 높아"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가 19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출연해 "정부가 재정을 더 과감하게 확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그의 이전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8년 7월 24일 장하준 교수는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청포럼에서 '세계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복지국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라는 주제로 한국 경제 전반에 결친 혁신을 강조했다. 

이날 장 교수가 주장한 재정확대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한국 경제 처방전'을 요약하면 이렇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018년 7월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018년 7월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복지국가 목표로 경제민주화 추진해야

장 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위기에 접어들었지만 그 대안 체제는 여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성장을 위해 평등을 희생해도 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성장도, 평등도 담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1950년에서 1980년대 사이 국가개입주의의 시대에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1인당 기준으로 2.8~3%가량이었던데 비해, 1980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신자유주의시대의 성장률은 1.4% 부근이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7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조건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이래 성장 정체와 소득분배 악화라는 동일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1인당 소득기준으로 6%가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떨어졌다.
핵심적인 이유는 기업 투자 감소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세어지고 그들이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자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

금융시장 자유화로 은행들이 고위험의 기업금융 대신 소비자 금융에 집중하자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워졌다.

투자가 안 되면 산업구조의 고도화도 정체되기 마련이다.

한국 주력 산업들 대부분이 중저가시장에서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는데 조선과 철강, 자동차와 휴대전화에 이어 반도체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심지어 태양전지 등 일부 분야에서는 중국에게까지 밀리고 있다.

고용 불안은 그 귀결로서 가령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올라갔다.

공공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수준으로 2018년 당시 멕시코에 이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두 번째로 낮고 심지어 '신자유주의 모범생'으로 간주되는 칠레(11% 부근)보다도 낮았다. 

육아, 교육 보조가 미비하니 출산율은 당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장하준 교수는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지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사회 문제들을 풀기에 태부족"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산업정책의 부활과 복지국가의 획기적인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 산업, 대기업 참여 아래 중소기업 지원 확대

장 교수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산업구조가 정체되는 원인을 기업투자 부진과 더불어 신산업 개발이 더뎌진데에서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외환위기 이후 이렇다 할 산업정책이 거의 없었다고까지 말했다.

우선 대기업이 필요한 산업들이 있다.

반도체, 자동차 등 보호해야 할 기존 주력산업, 제약 등 새로 진출해야 할 기존 산업, AI나 신소재 신기술 분야 등이다.

많은 산업이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R&D)과 생산에 있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장 교수는 자신의 책 『개혁의 덫』(부·키)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재벌 체제의 장점을 인정"(162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장점이란 경영권의 중앙 집중, 대규모 자금 동원력, 위험 분산 능력 등이다.

다음으로 기계, 부품, 소재 산업 등 중소기업 중심 산업들이 있다.

장 교수에 따르면 가령 반도체는 세계 1위인데 반도체 만드는 기계는 80~90%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정부와 정부연구기관들이 기술력 향상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동도 필요하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고 투자를 통해 위험을 분담하며 기술지원도 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또한 금융시장 및 기업지배구조 정책들을 고쳐 장기 투자를 가능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는 단기주주의 입김을 줄이는 수단을 강구하고, 기업 지배구조도 장기주주, 노동자 등 장기적 이해당사자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장하준 저, 부키 간, 표지 일부.
'나쁜 사마리아인들: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장하준 저, 부키 간.

◇ 복지, 정부가 생산적 투자 앞장서야

"복지 정책은 모든 국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며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이라고 장 교수는 말했다.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와 같이 복지국가에 대한 편견이 많은 나라에서 이 문제를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그럼에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국익 차원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진보의 경우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보수의 경우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선별적 복지' 관점을 버리고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 "증세는 필수이며 누진소득세를 올리되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도 올려야 하며 세금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국가는 궁극적으로 성장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투자 여력이 있다면 적자재정도 감수해야 하며,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중이 낮아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에서 장 교수는 "문제들이 돌이킬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시작하자"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급함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진로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제언은 2007년도에 출간되고 2018년 개정판이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에서 자세하게 논의된 바 있다.

여기서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구약 성서에서 따온 이야기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2007년 판, 35쪽)을 뜻하는데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자에 비유된다.

이 책은 경제학 분야 서적으로는 드물게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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