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지난 1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스퀘스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지난 1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스퀘스트]

【뉴스퀘스트=박민수 편집국장】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는 ‘키다리 아저씨’일까 아니면 ‘계륵’일까?

지난 2월 5일 출범한 준법위.

이재용 부회장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장의 권고로 만들어졌다.

서울고법 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재판 도중 ‘정치권력으로부터 또다시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가져오라’고 이례적으로 주문했다.

시민단체 등 일부 안티 삼성 인사들은 판결을 앞둔 ‘양형 줄이기용’이라며 폄훼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김지형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한 준법위는 출범 후 3차례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최근 준법위는 삼성이 수용하기 다소 부담스런 결정을 내렸다.

준법위는 이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직접 공개 사과하고 반성할 것을 권고했다.

또 이에 앞서 삼성의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할 것도 주문했다.

준법위는 삼성의 불미스러운 옛 일들이 대체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다는 판단이다.

그래서인지 준법위의 최근 행보는 삼성의 과거사 바로 잡기에 적극적이다.

준법위는 출범 당시 ‘협약을 체결한 삼성 그룹 7개 계열사들의 대외 후원금 지출 및 내부거래를 사전에 검토하고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 여부를 판단하고 의견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타 다른 거래에 대해서도 준법위가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가 있다고 인지하는 경우에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 외에 전체적인 준법감시 시스템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도 점검하고 개선사항을 권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앞으로 시장과 소통하며 투명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졌다.

그러나 최근 준법위의 활동방향과 권고 사항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일각에서는 준법위가 부여된 권한을 넘어 오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회귀형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취지와 달리 삼성의 과거 잘못을 지적하며 자꾸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이다.

준법위는 과거사 청산위원회가 아니라 출범 당시 밝혔듯 삼성의 경영활동이 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감시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삼성의 당면과제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의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준법위는 삼성의 과거사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준법위의 스탠스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놓고 말은 못하겠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다.

‘혹 떼려다 오히려 혹 붙인 것 아니냐’는 시니컬한 반응도 보인다.

사법부에서 판단할 일까지 친절하게도 준법위가 나서서 결론도 내리고 있다.

당연히 본래의 출범 목적인 위법 사안에 대한 예방기능 보다는 과거 경영 활동에서의 문제점을 끄집어내고 이를 자꾸 강조한다는 점에서 삼성으로서는 이만저만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향후 발생할 위법 활동을 예방해야 할 준법위가 출범 이전의 과거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은 7년 전 일임에도 노조와해와 관련된 준법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삼성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면 재발방지도 약속했다.

아무리 재판을 앞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삼성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준법위 사내 위촉 위원으로 활동중인 이인용 사장도 입장이 편치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준법위 위원은 진보적 판결로 평가받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비롯해 7명이다.

이들 가운데 이 사장은 다른 위원들과는 결이 판이하게 다른 삼성 내부 사람이다.

3차례 회의를 거치는 동안 위원들간에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온 회의 결과물이 최근 준법위가 삼성에 권고한 내용들이다.

삼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내용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이 사장으로서는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의견을 내더라도 나머지 위원들과의 생각이 다를 경우 진의가 그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심지어 이 사장의 의견 개진에 ‘삼성에서 왔다고 삼성 편을 들면 어떻하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사장은 준법위 회의에서 가급적 위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편으로 전해진다.

준법위원들의 생각과 주장이 너무 나간다 싶어도 이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기가 난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는 5월 법원 정기인사도 변수다.

삼성은 재판장의 훈수에 따라 부담과 오해를 무릅쓰고 준법위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막상 이를 주문한 판사가 법관 인사에서 교체될 경우 ‘닭 쫏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삼성의 가상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대목이다.

후임 재판장이 삼성의 가상한 노력과 성의를 얼마나 평가하고 이를 판결에 반영할지도 예측할 수 없다.

박민수 편집국장.
박민수 편집국장.

따라서 준법위가 삼성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될 지 아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신세가 될지는 재판결과에 따라 판명될 것으로 보인다.

준법위는 삼성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물론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반성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글로벌 삼성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사랑받는 기업,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준법위의 활동방향과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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