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참여는 정부 감시보다 강력...궁극적 해결책은 ‘글로벌 연대’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현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히브리대 유발 하라리 교수(44)가 “한국은 전체주의적 감시가 아닌 자발적 감시로 코로나19에 대처한 사례”라며 서구 국가들에게 이를 배울 것을 촉구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라는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유발 하라리는 “우리 각자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제 잇속만 챙기는 정치가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대신, 과학적인 정보와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르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며 이와 같이 주장했다.

하라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아마도 우리 세대가 맞이한 가장 큰 위기”이며 “향후 몇 주 동안 세계가 내린 선택이 향후 몇 년간 이어질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 썼다.

코로나19가 덮친 엘살바도르에 3월 30일까지 전 국민 자택 격리령이 내려진 가운데, 22일 한 병사가 산살바도르 중심가를 순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가 덮친 엘살바도르에 3월 30일까지 전 국민 자택 격리령이 내려진 가운데, 22일 한 병사가 산살바도르 시 중심가를 순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민의 참여, 국가 감시망 대체할 수 있어"

지금은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빠져들고 유럽의 확진자가 타 지역을 압도하며 미국조차 폭발적인 감염자 확산세를 보이는 시점이다. 하라리는 인류 앞에 크게 두 종류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고 보았다.

그 첫 번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참여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두 번째는 국가 간 고립과 국제적 연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하라리가 보기에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 감시가 아닌 시민의 참여 또는 시민권의 강화(citizen empowerment), 그리고 국가 간 격리와 고립이 아닌 국제적 연대(global solidarity)의 강화다.

첫째 경우와 관련하여 얼핏 보면 시민의 참여보다 정부 시스템으로 국민을 감시하는 것이 방역에 효과적일 수 있다.

21세기는 국가가 전 국민을 상시 모니터링할 기술력이 확보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라리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정부가 개인의 스마트폰을 모니터링하고 수억대의 안면인식 카메라를 사용하며 주민의 체온 측정을 의무화시켜” 이동을 통제하고 그들의 동선과 접촉자를 파악해 방역 효과를 높였다.

이스라엘의 경우 벤자민 네타냐후 수상이 대테러대비 군사용 감시 기술을 코로나19 추적에 사용토록 하는 긴급 법령에 서명했다.

이 경우 국민들은 건강을 보장받는 대가로 일부 인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민주적 대의제가 확립된 국가의 국민들이 이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 정부의 야외 활동 자제 요청에도 대규모 군중이 해변가나 관광지에 몰려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거꾸로 국민들이 정부감시를 용인할 경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끝난 뒤 일부 정부들은 “중앙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에볼라 변종이 출현했기 때문에 생체 감시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비누를 쓰는데 경찰은 필요 없다"

이 문제와 관련 하라리는 “전체주의적 감시 대신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 몇 주 동안 한국 대만 및 싱가포르가 보여준 괄목할 만한 성공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 국가도 스마트폰 앱으로 주민을 추적하지만, 그보다는 광범위한 테스트와 투명한 정보공개, 시민들과의 협력에 크게 의존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비누로 손 씻기’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코로나19의 확산을 극적으로 억제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실행하려면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누를 쓰는 것은 국가나 경찰의 감시 때문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을 비누로 제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누를 쓰는 데는 제대로 된 인식만이 필요할 뿐, 외부 감시는필요 없다.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 부족이 낳은 치명적인 결과를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진지하게 다룬 바 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1492년)와 코르테스의 멕시코 상륙(1519) 사이 시기에 스페인인들이 카리브 제도를 정복해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들은 원주민을 노예 삼아 누구라도 약간이라도 저항하면 죽일 정도로 철권통치를 행했다. 

더 무서운 것이 정복자들이 범선에 싣고 온 바이러스였다. 정체불명의 그것으로 인해 “카리브해의 원주민 거의 모두가 20년 만에 사라졌다.” 

부릴 노예가 없어지자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인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인종청소는 얼마 뒤 아즈텍  제국에서도 일어났다. 

하라리는 “만일 아즈텍인과 잉카인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스페인의 정복에 좀 더 격렬하고도 성공적으로 저항했을 것”(사피엔스, 김영사, 412쪽)이라고 썼다.

나아가 하라리는 “CCTV나 휴대폰을 통한 정보 수집이 전체주의적 감시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민권이 충분히 강화된다면 역으로 시민이 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첨단 기기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야전병원의 텐트들. 미국의 비정부구호단체 '사마리탄스 퍼스(Samaritan's Purse)'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이 야전병원은 15동의 텐트와 60개의 병상을 구비하게 된다. [사진=크레모나 AF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야전병원의 텐트들. 미국의 비정부구호단체 '사마리탄스 퍼스(Samaritan's Purse)'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이 야전병원은 15동의 텐트와 60개의 병상을 구비하게 된다. [사진=크레모나 AFP/연합뉴스]

'국제적 연대'는 궁극적인 해결책

국경 봉쇄 효과와 관련해서는 대의제 정부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중이다.

하라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는 명백하게도 “글로벌 협력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필수적인데, “바이러스끼리는 정보를 교환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먼저 재난을 겪은 중국이 미국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오전에 밀라노에서 일한 의사가 저녁에 테헤란으로 날아가 방역을 도울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처음 취하는 정책을 두고 망설일 때 이미 이를 시행해 효과를 확인한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먼저 국가 간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경을 닫고 정보를 폐쇄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최근 주요 7개국 정상들이 긴급회의를 가졌지만 정보 공유를 주저하는 바람에 겨우 화상회의만 했을 뿐 공동 행동에 관련된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미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 독점권을 따내려고 메르켈 정부 몰래 독일 제약회사에 10억 달러를 제공하려다 갈등을 빚었다.

하라리에 따르면 이는 “동맹국을 저버리는 일이자 인류의 미래 대신 미국의 위대함에 매달린 추태”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이러한 행태에 분개한 나머지 “트럼프를 믿지 말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연대의 길을 택할 것인가?” 하고 하라리는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이것은 위기를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며, 반대로 “우리가 국제적인 연대를 선택한다면 그로써 코로나19를 포함한 미증유의 모든 감염병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비롯, ‘호모 데우스’ 및 ‘21 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의 베스트셀러로 국내에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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