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전포동 전포초등학교 교정에 활짝 핀 벚꽃 뒤로 선생님들이 제작한 '너희는 학교의 봄이야 보고 싶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이 학교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돼 학교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학교 3곳에 현수막을 부착했다. [사진=연합뉴스]
부산 전포동 전포초등학교 교정에 활짝 핀 벚꽃 뒤로 선생님들이 제작한 '너희는 학교의 봄이야 보고 싶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이 학교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돼 학교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학교 3곳에 현수막을 부착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성우제 在캐나다 작가】 고교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반장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담임은 “등교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3교시쯤 교실 문이 열리더니 사고를 당했다던 반장이 불쑥 들어섰다.

피묻은 거즈를 얼굴에 붙인 채였다. 수업을 하던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향해 그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병원 가서 열 바늘 이상 꿰맸다. 오늘은 병원에서 지내라고 했는데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에 왔다.”

그 말을 듣고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박수를 쳤다. 이후 몇 주 동안 반장의 얼굴에 붙어 있던 거즈는 영광의 표지였다.

돌이켜보면 다치거나 아파도 결석하지 않는 분위기는 고교시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개근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결석은 물론 지각이나 조퇴를 안 하면 학년 개근상을 주었다. 졸업식 때는 초등 6년 개근상, 중고등 각각 3년 개근상도 있었다. 12년 개근을 하면 그랜드슬램이었다.

우등상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상이었다.

개근은 학교 바깥에서도 중요시하던 일이었다. 폭우로 시냇물이 불어나면 아침 일찍 동네 청년들이 나와 아이들을 업고 물을 건넜다.

그렇게 해서 학교에 가면 마치 큰일이나 해낸 듯 뿌듯했다.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열은 개근에 대한 맹종과 통했다.

감기 정도의 병으로 결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면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마스크는 환자의 표징이 아니라 개근에 대한 의지와 잘 산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오면 아이들은 부러워했다.

마스크와 비슷한 것으로는 안대가 있었다.

여름철에는 결막염이 크게 유행했었다. 전염이 잘 되는 눈병이었다.

아이들은 흰자위가 붉게 흐려지고 눈물이 줄줄 흘러도 학교에 갔다. 그때 하얀색 안대를 하고 있으면 그 또한 마스크처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 개근이 좋은 것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캐나다에 살러와서였다.

이곳 초등학교는 악천후가 아닌 한 점심 식사과 오전 오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반드시 실외로 내보내 놀게 한다.

어느날 큰 아이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학교 선생님한테 “바깥에 나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편지를 써보냈다.

아이는 하교하면서 선생님이 쓴 편지를 들고 왔다.

“감기기운이 있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마세요.”

우리 아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작은 문화충격이었다. 그러나 금세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곳 문화가 그렇다.

개근은 장려할 일이 아니고 개근상이라는 것도 물론 없다. 몸이 아픈데도 개근하려고 무리를 하면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마스크를 하거나 안대를 하고 등교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마스크는 병원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니, 병원 바깥에서 마스크를 쓰면 당연히 이상하게 바라본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마스크 대란'이 일어 났어도, 이곳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북미의 의료 전문가들이 “건강한 일반인은 마스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한 것도 한몫 했겠지만, 병원 밖에서 마스크를 접해 본 적이 없으니 일반인들은 당연히 마스크를 멀리했다.

병원 바깥에서 마스크를 쓰면 병 걸린 환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북미에서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마스크 착용문화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코로나19가 글로벌 팬데믹이 되고 난 후, 서구에서도 한국식 마스크 착용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환자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마스크를 쓰고 활동하면 전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아닌게아니라 무증상 환자로 인한 전염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마스크 착용밖에 없다.

토론토에 사는 나 또한 마스크에 집착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으나, 지금은 반성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가장 지나치게 대응하는 것이 역병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명났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BBC와 미국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매체에 “일반인도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기사로 올라왔다.

성우제 재 캐나다 작가.

무증상 환자의 감염을 막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서구에서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 잡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 사람들이 ‘국민 유니폼'처럼 착용한 마스크를 꼽고 있는 것이다.

감기에 걸렸는데도 마스크를 하고라도 등교하면 칭찬하던 문화, 바로 그 개근상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마스크에 거부감이 없던 문화(물론 최근의 미세먼지도 여기에 크게 한몫했다)가 한국이 코로나19를 잡아가는 일등국이 되게 하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

그렇다고 개근상 문화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프면 학교나 일터에 가지 말고 쉬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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